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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유관중 올림픽' 고집하다 정치 생명 위기 맞은 스가 총리

김보겸 기자I 2021.07.08 18:31:48

日정부, 12일부터 도쿄에 긴급사태 4차 선포
스가, 그간 코로나19 심각성 경고에 귀 막아와
긴급사태 선포로 인한 손실이 올림픽 중단보다 커
도쿄도의회 선거서 '불통 리더십' 초라한 성적표

스가 총리가 7일 총리관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AFP)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이러다 긴급사태 발령할 수도 있겠다.”

지난 7일 늦은 오후. 일본 도쿄에서만 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920명에 달한다는 보고에 자민당 내부에선 이런 탄식이 나왔다. 한 시간 뒤 스가 요시히데 총리 주재로 관저에서 각료회의가 시작됐다.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논의가 이어졌고, 결국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을 약 2주 앞둔 8일 네 번째 긴급사태 발령을 결정했다. 긴급사태는 오는 12일부터 내달 22일까지 6주간 발효된다. 도쿄올림픽 전 기간이 포함된다.

그간 측근들은 스가 총리에게 긴급사태 필요성을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고 일본 주간지 겐다이 비즈니스는 전했다. 그나마 외부 인사인 오미 시게루 코로나19 대책 분과회 회장만이 최근 어용 지식인 역할을 벗어던지고 “올림픽을 중단하라”고 직언했지만, 그뿐이었다. 자민당 내부에선 이미 스가 총리의 심기를 거슬러선 안 된다는 분위기가 만연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을 유관중으로 개최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달 21일부터 도쿄에 긴급사태를 해제하고 한 단계 아래인 중점조치를 발령했다(사진=AFP)
스가에겐 계획이 있었다

스가 총리에겐 계획이 있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긴급사태를 발령 중이던 도쿄에 한 단계 낮은 중점조치를 적용하자는 것. 관객을 제한하는 한이 있더라도 유관중으로 올림픽을 열어 축제 분위기를 형성하자는 의도였다.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인 7월 말부터 8월 초쯤이면 백신 접종률도 올라올테니 감염을 통제하는 선에서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토대로 올 하반기 예정된 총선에서 승리한다는 셈법도 깔려 있었다.

목표에 눈이 멀어서일까. 스가 총리는 코로나19 감염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귀를 닫았다. 한 정부 관계자는 겐다이 비즈니스에 “스가 총리에게 직접 진언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총리는 보좌관과만 말할 뿐, 자신 뜻에 반하는 의견을 들으면 격노하기 때문에 아무도 나서지 못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한국의 질병관리청장에 해당하는 후생노동상의 호소도 스가 총리에겐 닿지 않았다. 코로나19 감염세가 위기라는 보고에 분노한 스가 총리가 보고서를 책상 위에 던져버릴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이 상황을 지켜본 한 관계자는 “다무라 노리히사 후생노동상은 정신적으로 상당히 궁지에 몰려 심신이 지친 상태”라고 귀띔했다.

스가 총리의 불통 리더십에 대한 폭로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 관저 직원은 “스가 총리는 일부 외부 전문가들의 말은 듣지만, 제 식구는 전혀 믿지 못한다. 부하는 무능하거나 배신자만 있다고 생각한다”며 “주위에선 그런 총리 태도에 질려서 아무 말도 못 하게 된다. 모든 게 악순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 오다이바 인근 공원에 도쿄올림픽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사진=AFP)
올림픽 열어도 적자, 안 열어도 적자

그 사이 도쿄의 감염상황은 예상보다 나빠졌다. 이미 지난주부터 도쿄는 일본 감염상황 분류 중 가장 높은 ‘4단계’에 접어들었다. 긴급사태 선포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무관중 올림픽은 당장 티켓값 손실만 9300억원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작년 말 주최 측은 올림픽 티켓 수입으로 900억엔(약 9295억원)을 예상했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 위험으로 국내 관중을 한 명도 받지 못할 경우 올림픽 수익의 한 축을 담당하는 티켓 수입이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이는 예상되는 손실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미 일본 국민들 사이에선 유관중이냐, 무관중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며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도쿄올림픽을 개최하는 것 자체가 적자를 낳는다는 우려다. 애초 작년 열릴 예정이던 올림픽을 1년 연기함에 따라 대회 비용은 145억달러(약 16조6242억원)에서 250억달러(28조6625억원)로 증가한 상황이다.

올림픽을 열어도 문제, 안 열어도 문제이지만 개최를 중단하는 편이 그나마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줄스 보이코프 미국 퍼시픽대 정치학과 교수는 “올림픽은 일본에 적자를 가져올 것”이라며 “중지하면 입장료나 방영권 등의 수입을 얻지 못하지만, 개최하더라도 코로나19 감염이 확대되면 대책 비용이 늘어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꼬집었다.

노무라 종합연구소 역시 지난 5월 보고서에서 “올림픽을 중단할 경우 손실이 1조8000억엔(약 18조5700억원)에 달할 것”이라면서도 “긴급사태 1회 선언에 따른 예상 손실은 6조4000억엔(약 66조7801억원), 2회 때는 6조3000억엔”이라고 밝혔다. 무리하게 긴급사태를 선포하면서까지 올림픽을 개최하기보다는 중단하는 쪽이 싸게 먹힐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경찰이 지난달 23일 도쿄에서 올림픽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제지하고 있다(사진=AFP)
선거 패배한 자민당, 원인은 모순 탓?

이런 우려에 귀를 닫고 유관중 개최를 고집해온 스가 정권은 최근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 4일 일본 총선의 전초전 성격을 띤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자민당이 연립정당인 공명당과 합쳐도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서다.

패배 원인으로 내부에선 미숙한 코로나19 대처와 민심을 거스르는 도쿄올림픽 강행을 꼽는다. 자민당 내부 관계자는 자민당이 고전한 이유에 대해 “벌써 네 번째 긴급사태 선언에 세상은 이미 질렸다”며 “무엇보다 긴급사태를 선포하면서 도쿄올림픽은 예정대로 개최한다는 모순이 (국민의) 자숙 분위기를 해쳤다”고 설명했다.

불통 리더십의 수명은 1년을 넘기지 못할 전망이다. 자민당 내에선 스가 교체론이 나오고 있다. 자민당 실세이자 스가를 총리로 만드는 데 1등 공신인 ‘킹메이커’,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은 벌써부터 ‘포스트 스가’를 물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니카이파 관계자는 “총리가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만큼 인기가 있는 것이 중요한데, 지지율이 폭락한 스가 총리는 손쉽게 내쳐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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