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대출을 받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인 건 마찬가지다. 지난 23일 서울 동대문구 모 은행 지점 대출창구에서 기자와 만난 이명준(가명, 42세)씨는 피 말리는 두달을 보냈다고 했다. 건설 안전용품 사업을 하고 있는 이씨는 지역 신용보증재단에 대출을 신청한 게 두달 전인데, 이제야 대출이 이뤄졌다. 그는 주변 지인들에게 급한 돈을 빌리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 씨는 신용보증재단에 수십번 전화하고, 직접 방문한 것도 수차례다. 그럴 때 마다 ‘대출 서류가 미비해서’, ‘조금만 기다려달라’라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대출이 나왔으니 망정이지, 정말 힘든 시간이었어요..” 이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출 보증 업무를 하는 재단이나 공단 측도 할 말은 있다. 기존 소상공인 대출 처리도 밀리는 마당에, 코로나19 피해 대출 신청까지 물밀듯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의 보증업무 인력은 80여명. 이들이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대출 보증 업무 건수는 500여건이지만 이들이 매일 받는 신청 건수는 2000건 이상이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은 이달 초 계약직원 50명을 긴급히 늘렸다. 최근에도 50명의 직원을 또 채용했다. 다음달에도 50여명을 더 채용한다는 계획이다. 경영지원실 직원들까지 업무 지원에 나서고 은행 창구 직원들까지 일손을 거들고 있다.
하지만 서울신용보증재단 측은 새로 채용된 직원들이 대출 보증심사 업무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지금의 적체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빨라야 다음달 초중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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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구 직원이 대출 상담 1건을 처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40~50분 정도다. 대출에 필요한 자격 요건을 확인하고 대출 서류에 사인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대출 창구 직원 4명이 쉬지 않고 일하면 하루 최대 50명 정도 상담이 가능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기존 영업점 업무는 뒤로 밀릴 수 밖에 없다.
대출 신청이 얼마만큼 몰렸는지 묻자 해당 지점의 부지점장은 지점 금고 내부를 보여줬다. 금고 안에는 미처 처리되지 못한 대출 서류가 쌓여 있었다. 부지점장은 “1000건 이상 밀려있다”고 말했다. 전 직원이 달려들어 처리한다고 해도 한 달 이상 걸릴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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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에서는 대출 신청 절차를 간소화한 이후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부실·허위 대출 발생 가능성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코로나 긴급자금 대출을 받아 외제차를 샀다’는 식의 얘기들도 나온다. 집행된 대출 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재단이나 은행 입장에서는 알 길이 없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재단이나 은행 입장에서 대출 절차를 무작정 간소화하기 힘들다”면서 “정말 긴급한 분 아니면 (대출을) 기다려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