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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많으면 회의가"…한술 더 뜨는 日정치인 막말[김보겸의 일본in]

김보겸 기자I 2021.12.13 07:50:26

"잘 듣는 게 내 장점" 기시다 자화자찬부터
아소 다로 "온난화 덕분에 홋카이도 쌀 맛있어져"
'여성 비하' 구설수로 사퇴한 모리 전 회장 1위

일본 도쿄의 도쿄타워 앞으로 새떼가 지나가고 있다(사진=AFP)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2년째 접어든 코로나19 사화, 백신 확보 소동, 1년 미뤄진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 중의원 선거에 총리 교체까지…

유난히 다사다난한 2021년을 보낸 일본. 그만큼 정치인들의 말실수도 주목된다. 일본 주간지 뉴스포스트세븐은 12일 ‘실소를 일으키는 정치인 발언’ 10개를 꼽았다. 말(言)은 모든 화근의 원인이지만 정치인들에 있어서는 말이 전부라는 설명이다. 현재 총리와 전 총리 모두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기시다 총리의 “내 장점은 잘 듣는 것” 발언이 2021년 실소를 일으키는 정치인 발언 톱10에 포함됐다(사진=AFP)
먼저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자화자찬이 실소 발언으로 꼽혔다. 그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지난 9월 일성은 “내 특기는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듣는 것”이었다.

칼럼니스트 이시하라 소이치로는 “당시만 하더라도 기대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지금 다시 보니 실소를 금하지 못하겠다”며 “‘제대로’라는 말은 기시다 총리의 말버릇인데, 잘 할 마음이 없는 경우에 자주 쓰인다”고 설명했다. 총리로서 가진 목표나 방향성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기시다 총리의 무색무취 리더십을 향한 비판과도 일맥상통한다.

관방장관 시절부터 총리에 올라서도 정부를 향한 비판에 “그런 지적은 당치 않다”는 태도로 일관한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도 최악의 발언자로 꼽혔다(사진=AFP)
기시다 총리의 전임자이자 1년 만에 직을 내려놓은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도 ‘실소 발언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런 지적은 당치 않다”는 발언이다. 이 역시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이 출범하고 관방장관으로 일하던 시절부터 이어진 그의 말버릇이다.

기자회견 때마다 정부 입장을 묻거나 행정에 대한 지적을 받을 때면 그는 입버릇처럼 “그런 지적은 맞지 않다”고 했다. 이를 두고 일본 정부의 ‘입’ 역할을 하는 관방장관의 답변이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에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국민의 이해를 얻겠다는 태도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관방장관 시절 습관은 총리가 된 뒤에도 이어졌고 결국 2021년 실소 발언의 불명예를 안았다.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전 간사장은 스가 총리가 자신을 교체하려 한다는 소식에 “임명권자라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총리에게는 당 인사권이 있다.(사진=AFP)
스가 전 총리와 대립각을 세운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전 간사장도 구설수에 올랐다. 스가 전 총리가 지난 8월 그를 교체하겠다는 소식에 무려 TV 인터뷰(!)에서 불만을 가감없이 드러내면서다.

토사구팽의 심정이었을까. 지난해 8월 아베 전 총리가 건강상 이유로 사퇴하자 가장 먼저 스가를 지지하며 ‘킹메이커’ 역할을 한 그다. 하지만 코로나19의 미흡한 대처로 스가 전 총리 지지율이 20%대로 뚝 떨어지자 니카이가 물갈이 타깃이 됐다. 역대 최장인 5년간 간사장을 역임해 ‘자민당 2인자’로 통하는 그를 교체해 인적 쇄신을 보여주겠다는 전략으로서다.

이후 자신의 교체론이 솔솔 흘러나오자 니카이 전 간사장은 TV 인터뷰에서 “(스가가) 그만두라 할 자격이 있는가. 임명권자라 생각하면 오산이다”라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실제로 일본 총리는 각료 임명권과 당 인사권을 모두 쥐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어 ‘스가 총리와 대등한 관계라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등하지도 뭣도 아니지만 (스가가) 건방지게 말하지 않나”라며 버럭하며 진행자를 당황케 했다. 다만 이후에는 “스가 총리와 사이가 나쁜 게 아니다”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가운데)는 “온난화 덕분에 홋카이도산 쌀이 맛있어졌다”고 발언해 구설수에 올랐다(사진=AFP)
이외에도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의 “온난화 덕분에 쌀이 맛있어졌다” 발언도 논란을 일으켰다. 아소 부총재는 지난 10월25일 홋카이도 삿포로시 거리연설에서 “지구온난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홋카이도 온도가 2도 오르면서 홋카이도산 쌀이 맛있어졌고 수출도 잘 된다”고 했다. 해당 발언 이후 “홋카이도 쌀은 험한 기후에 적응하도록 수십 년에 걸친 노력을 한 덕분에 맛있어진 것이지 온난화 덕분이 아니다”라는 반박부터 “일본 정부의 탈탄소 대책 추진을 역행하는 발언”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여성이 많으면 의사 결정이 느려진다”며 여성 비하 발언을 한 모리 도쿄올림픽 조직위 전 회장이 지난 2월12일 사퇴를 발표하고 있다(사진=AFP)
올해 최악의 발언 1위는 모리 요시로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전 회장의 여성 비하가 꼽혔다. 올해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림픽의 해를 상징한다는 의미에서다. “여성이 많으면 의사 결정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발언으로, 결국 사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지난 2월3일 일본올림픽위원회(JOC)가 여성 이사를 늘리는 방침에 대해 그는 “여성은 경쟁의식이 강하다. 누군가 손을 들면 자신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여성 이사를 늘릴 경우에는 발언 시간도 어느 정도 규제해야 한다. (회의가) 좀처럼 끝나지 않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입헌민주당에선 “차별을 물리치고 연대와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상호 이해하는 올림픽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당 안팎에서도 “다양성과 조화를 중시해야 하는 조직위 수장으로서 부적절하다”, “스포츠계 흐름을 역행한다”며 사퇴 압박이 일었고 결국 열흘도 못 버틴 모리 전 회장은 백기를 들었다.

뉴스포스트세븐은 2021년 일본 정치인들의 실소 발언을 전하며 이렇게 마무리했다.

“처음에는 실소 발언 목록을 정치인으로 좁힐 생각이 없었는데 순식간에 정치인만으로 10개가 채워져 버렸다. 2022년에도 여러 정치인이 여러 가지 실소 발언을 해 줄 것이다. 정말 믿음직스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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