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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의 IT세상]사물인터넷 시대의 로그인

최은영 기자I 2020.02.27 05:00:00
[김지현 IT 칼럼니스트]지난 10년간 집주소도, 회사도, 자동차도,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바뀌었고 싸이월드, 네이버 검색, 다음지도, 네이트온도 사용하지 않거나 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20년 넘게 여전히 사용하는 것이 있다. 이메일 주소와 휴대폰 번호이다. 10년간 변치 않았던 이메일 주소는 명함에 아
로 새겨져 있고, 10년 전부터 나를 아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 이메일 주소로 연락을 해온다. 그런 이메일 주소를 바꿀 수가 없다.

이메일이 오래도록 살아남은 이유는 그 이메일 주소를 타인이 기억하고 기록해놓았기 때문이다. 내가 사용하는 것은 내가 바꾸면 그만이지만, 나를 아는 그들의 기록을 내가 다 바꾸기는 역부족이다. 또한 그 이메일 주소는 사람들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사이트도 기억한다. 회원 가입 시에 기본으로 물어보고 기록하는 것이 이메일 주소다. 그렇기에 이메일 주소는 쉽게 바꾸기 어렵다.

그렇게 남들이 기억하는 내 디지털 아이덴티티(정체성)는 이메일 주소 외에 휴대폰 번호가 있다. 또한 모바일용 애플리케이션(앱)은 대부분 휴대폰 번호로 회원가입을 한다. 스마트폰 메신저의 등장은 이메일의 사용 빈도를 떨어뜨린 것 뿐 아니라 디지털 아이덴티티로 이메일이 가진 지배력을 퇴색시켰다. 이제 이메일 주소가 아닌 휴대폰 번호가 온라인상의 각종 계정에 기록되고, 메시지도 이메일 주소가 아닌 휴대폰 번호와 연동된 메신저로 보내어진다. 굳이 상대는 이메일 주소를 기억하지 않아도 메신저에 자동으로 뜬 친구 목록을 선택해서 보내면 된다. 외우기도 심지어 타이핑하기도 어려운 주소를 더 이상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이메일은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메일 주소는 명함에 기록되고 절대 바뀌지 않을 믿음 속에서 유지되고 있다. 그런 이메일 아이덴티티조차 점령하기 위해 카카오는 지난해 11월 메신저 내에 이메일 서비스를 론칭했다. 기존의 이메일과 달리 웹이나 이메일 앱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카카오톡 메신저 내에서만 이용 가능하다. 앞으로 확장해가겠지만 그만큼 이메일 주소가 갖는 고유한 가치가 있다 보니 휴대폰 번호와 함께 이메일 주소를 주요 디지털 아이덴티티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통합된 디지털 인증은 이미 페이스북과 구글이 가지고 있다. 지메일 계정을 이용해 구글의 모든 서비스 즉 캘린더, 행아웃, 듀오, 구글밋 등 더 나아가 외부 서비스들을 이용할 수 있다. 지메일 주소만 알면 메일을 넘어 전화 통화와 메신저 그리고 서비스 사용이 가능하다. 페이스북 역시 페이스북 아이디를 이용해서 메신저와 인스타그램 등의 다양한 페이스북 내부, 외부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보여주는 친구 목록을 통해서 그들과 연결할 수 있다. 더 이상 메일 주소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디지털 인증의 장악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디지털에 로그인하기 위한 계정을 지배하면 이메일 주소가 그랬던 것처럼 사용자들에게 잊힐 가능성이 줄어든다. 또한 그 계정을 중심으로 모든 로그인이 필요한 서비스들을 연결할 수 있어 그 계정 사용자에 대한 다양한 로그 데이터를 수집해 서비스 개선이나 데이터 기반의 비즈니스에 활용할 수 있다. 메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의 온라인 서비스를 넘어 스마트워치, 스마트폰 그리고 집 대문과 가전기기, 자동차 등의 하드웨어에 이어 은행과 백화점, 스타벅스 등의 오프라인 거점에 로그인할 때 이 인증을 이용하게 하면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된다. 즉 사물 인터넷 시대의 디지털 로그인, 인증을 둘러싼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그래픽=이데일리DB)
애플와치는 그런 훌륭한 디지털 인증의 수단으로서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애플 제품들을 사용할 때 아이디, 암호를 키보드로 입력하거나 지문이나 얼굴을 들이밀지 않고 손목에 찬 애플와치가 인증 수단으로 사용되면 훨씬 인증의 속도는 빨라진다. 늘 손목에 차고 있기에 이것만큼 신뢰할 수 있는 ‘나’임을 보증해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애플와치를 차고 맥북, 아이맥을 켜면 별도의 인증 확인창이 뜨지도 않고 바로 로그인이 된다. 애플와치를 차고 자동차 문을 열고, 집 현관문을 열고, 현금 자동 입출금기(ATM)에서 현금을 뽑고, 편의점에서 결제를 할 수 있다면 오프라인 곳곳에서 훌륭한 아이덴티티의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위챗, 카카오가 메신저의 로그인 아이디를 기반으로 각종 앱을 연동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제는 인공지능 어시스턴트(AI Assistant)를 활용해 각종 전자기기 그리고 금융 서비스의 인증을 통합하고 있다. 그렇게 카카오 계정으로 연결 가능한 서비스들이 늘어가면서 카카오 플랫폼에 쌓이게 되는 로그 데이터는 카카오에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 시장을 둘러싼 전쟁에서 카카오, 네이버 그리고 구글, 페이스북 등의 인터넷 기업과 통신사인 SKT와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애플 등이 경쟁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얼굴을 주요 인증 수단으로 삼아 금융거래와 공공 서비스 운영에 활용하고 있다. 별도의 스마트폰이나 카드 없이도 얼굴만으로 결제를 하고 ATM에서 돈을 인출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5년 전부터 CCTV에 얼굴 인식 기술을 도입해서 시민들의 얼굴을 녹화해 범죄를 저지르거나 교통신호를 위반한 시민을 색출하는데 이용하고 있다. 이렇게 축적된 기술 기반으로 얼굴 인식률이 높아졌고 이 기술은 인증 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얼굴 인식과 인증은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지만 얼굴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기반 기술은 같다.

아이디와 비밀번호 기반의 전통적인 온라인 인증이 이제 지문과 얼굴 등의 생체인식으로 확대되고 있다. 더욱 편리하고 빠르며 안전한 인증 수단은 향후 사물 인터넷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5년이 지나도 여전히 디지털 주민등록증의 역할을 할 계정이 어느 회사의 것이 되고, 이 계정에 연결하기 위한 인증수단을 어느 기업이 지배하게 될지 앞으로 지켜보자. 거기에 새로운 사업 기회와 혁신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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