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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후보 3인방 '아베어천가'에 속터지는 日유권자들[김보겸의 일본in]

김보겸 기자I 2021.09.12 08:59:39

차기 총리 후보 3인방, 아베 의식하는 모습
기시다·사나에는 "아베노믹스 계승할 것"
과거 아베 저격한 고노도 비판 수위 조절
"왜 실패한 정책 또 들고오나" 유권자들 반발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사진=AFP)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차기 일본 총리직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이 일제히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의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누가 새로운 총리로 오르든 아베 전 총리의 그림자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아베 전 정부 때 실패한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이들의 모습에 유권자들 불만이 거세다.

‘여자 아베’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사진=AFP)
아베 의식하는 총리 후보 3인방

가장 노골적으로 아베 계승을 외치는 건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이다.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그는 ‘여자 리틀 아베’라 불린다. 출마를 선언한 지난 8일 그는 ‘사나에노믹스’를 주창했다. 아베 전 내각의 대규모 경기완화 정책인 아베노믹스를 따른 것이다. 금융완화, 빠른 재정지출, 대담한 위기 관리 투자 및 성장 등 ‘3개의 화살’을 그대로 본 따 사실상 아베 전 총리를 계승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여자 아베’ 사나에에 질세라 온건 보수로 분류되는 기시다 후미오 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도 나섰다. 지난달 가장 먼저 출마를 선언한 그는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3개의 화살을 언급했다.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며 아베노믹스의 성장전략 3개 원칙을 견지하겠다고 밝히면서다. 그는 30조엔(약 316조4000만원) 규모의 재정정책을 펴 경제적 피해를 메꿔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고노 다로 행정개혁상 (사진=AFP)
과거 아베노믹스를 맹비난한 고노 다로 행정개혁상도 아베 전 총리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다. 한 때 자민당 당론과 맞지 않는 주장도 거침없이 쏟아내는 등 ‘공기를 읽지 않는(구키요메나이)’ 정치인으로도 불린 그였다. 자민당 행정개혁 추진본부 본부장으로 활동하던 지난 2017년에는 “대규모 금융완화에 따른 리스크를 국민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며 총대를 메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0일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기자회견에선 아베노믹스에 대한 비판 수위를 한층 낮췄다. 아베노믹스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기업 부문은 엄청난 이익을 거둘 수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노동자 임금 상승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정도로 언급하면서다. 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재정정책 확대를 부인하지 않았다는 점도 보수층을 의식해 비판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이다.

도쿄에 긴급사태가 발령된 지난달 4일 영업 중인 이자카야(사진=AFP)
후보 3인방 아베 의식 왜?

총리 후보 3인방이 아베 전 총리의 눈치를 보는 이유로는 먼저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지지율이 폭락한 건 보수층이 등을 돌린 탓이라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점이 꼽힌다. 스가 정권이 1년만에 퇴장하게 된 건 당초 ‘아베 계승자’로서 기대한 스가 정권이 보수파가 이상적으로 느끼는 아베의 국가관을 되풀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자주 찾아 참배한 아베 전 총리와 달리 스가 총리는 총리직에 오른 이후 신사에 직접 들러 참배한 적이 없다. 이를 두고 스가 총리가 극우 유권자들을 실망시켰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또한 일본에서 중소 자영업자들이 주로 보수 성향을 띤다는 점도 지지율 하락 요인으로 지목된다. 코로나19 대응책으로 도쿄 등 수도권에 실시한 긴급사태 선언 때 밤 8시까지로 영업을 제한하고 주류 판매를 자제해달라 요청하는 등 음식점에 지나치게 엄격한 방역수칙을 적용해 스가 총리의 인기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아베 전 총리가 여전히 자민당 총재 선거의 막후 주역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도 후보들로 하여금 그를 의식하게 만들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당내 최대 파벌이자 계파인 호소다파(96명)에 아직까지도 영향력이 강하다. 뿐만 아니라 아베 총리가 ‘3번째 총리’로 출마할 가능성도 여전하다.

일본 재무성 관료가 2000엔 지폐를 확인하고 있다(사진=AFP)
“실패한 정책 왜 또 들고오나” 불만

하지만 보수 일변도로 우향우한 차기 총리 후보 3인방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아베노믹스를 실시하며 2% 인플레와 경제성장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는데도 또다시 실패한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실망이다.

당시 아베 전 총리는 2년 안에 인플레 2%를 달성해 소비를 활성화하고, 노동자 임금을 올려 경제성장 선순환을 이루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8년이 지난 지금까지 돈 찍어냈지만 지난달 기준 물가상승률은 0.2%에 불과하며, 경제성장도 기대에 못 미쳤다.

헛발질한 정책에 쓴 비용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정부가 발행해 일본은행이 사들인 국채는 아베노믹스 이전의 4배인 500조엔을 넘는다. 아사히신문 계열 주간지 론자는 지난 11일 지진이나 화산폭발 등 자연재해로 국채가격이 폭락하면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재정이 급격히 나빠진 신흥국에서 흔히 나타나는 경제 위기의 전형적 패턴이 일본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국채가 폭락하면 가장 먼저 일본은행 재무제표가 나빠져 신용도가 추락한다. 엔화 가치는 폭락하고 해외 수입품 가격은 폭등한다. 이는 단기간에 급격한 인플레를 유발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은행은 급하게 금리를 올린다. 일본 경제활동에는 제동이 걸려 또다시 불황에 빠진다는 것이다.

‘아베노믹스는 사기노믹스’라는 불만이 나올 정도로 유권자 여론도 싸늘하다. 많은 서민들에게 아베노믹스가 약속한 성장의 과실은 그림의 떡이었다는 지적이다. “주식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의 연금 재원을 쏟아부었다”는 불만도 나온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원성이 자자한 가운데 “엉터리 정책을 계승하는 후보는 차기 총리 자격이 없다”는 유권자들의 불만, 차기 총리 후보 3인방은 모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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