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공매도 연구 권위자인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악플은 각오하고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 교수는 그간 공매도의 순기능을 꾸준히 강조해온 대표적인 학자로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무수히 많은 비판과 악플을 받았다. 그동안 오롯이 받아낸 악플이 아플 법도 했으나 이 교수는 공매도 정책, 특히 시장조성자에 대한 규제로 인한 걱정이 앞선다며 크게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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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공매도 규제는 두 차례 연장을 거쳐 오는 1년 2개월만인 오는 5월부터 코스피200, 코스닥150 등 350개 우량 종목에 한해 재개된다. 그는 1년 이상 공매도를 금지한 것도 나아가 우량종목에 대해서만 허용키로 한 것도 모두 잘못된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1년 이상 공매도 금지는 너무 길었다. 실기했다”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급격한 가격변화에 노출되기 쉬운 종목은 삼성전자 같은 대형주가 아니라 소형주인데 이들에 대한 공매도는 언제 풀릴 지 알 수도 없다는 거다. 위험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공매도의 가격 안정성 역할이 더욱 필요한 소형주가 제외돼 뒤늦게 뛰어든 투자자가 손실을 볼 가능성이 커졌단 얘기다.
그가 특히 우려한 것은 시장조성자에 대해 △미니코스피200 선물·옵션 공매도 금지 △업틱룰(공매도 시 시장가격 밑으로는 호가를 낼 수 없도록 하는 것) 적용 △증권거래세 면제 축소 등 규제를 강화한 것이다. 시장조성자란 한국거래소와 계약을 맺고 거래부진 종목의 매수·매도를 제시하며 유동성을 공급하는 증권사를 뜻한다. 시장조성자는 선물을 매수하면서 헤지(위험회피)를 위해 현물을 매도하는 전략을 쓰는데 이때 공매도가 활용된다.
이 교수는 “호가가 촘촘하게 제시되고 유동성이 좋을수록 주식시장은 변동성이 적어지는데 그 역할을 시장조성자가 한다”며 “시장조성자가 할 수밖에 없는 공매도를 규제하면 결국은 시장조성자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완전 코미디 같은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어떤 증권사가 굳이 거래세를 내면서 시장조성 역할을 하겠나.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주식시장이 변동성이 커지고 안정성이 없어지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투자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물론 영국·홍콩·프랑스·이탈리아 모두 시장조성자에게 거래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 “공매도 규제해 주가 상승?…美 어떻게 설명하나”
공매도 반대하는 이들은 코스피 지수가 사상 최초로 3000을 넘어서는 등 국내 증시가 박스권을 넘어선 동력이 공매도 규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단 한 번도 공매도를 금지하지 않았던 미국 주식 시장의 급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고 반문했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공매도를 금지하고 있는 시장은 한국과 인도네시아뿐이며, 잠시 공매도를 규제했던 프랑스, 대만 등은 조기종료 하는 등 일찌감치 재개했다.
그는 “한국 주식시장의 일별 거래량 대비 공매도 비율은 코스피 5%, 코스닥 2%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40%가 넘는다”며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국 시장은 공매도 자체가 많지 않는데 왜 이렇게 민감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공매도 규제 덕분에 주가가 상승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그냥 공매도 금지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무차입 공매도에 대한 처벌에는 찬성했으나 유기징역을 못박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는 다소 아쉬움을 표했다. 종전 무차입 공매도 적발 시 과태료만 부과됐으나 4월부터 시행되는 개정안에는 1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손실액의 3~5배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으로 처벌받는다. 그는 “무차입 공매도라고 해도 단순 실수인지 아니면 고의적인지는 구분돼야 한다. 실수로 한 무차입 공매도에 유기징역 처벌은 해외와 비교해 과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른바 외국인·기관 대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개인의 공매도 시장 참여를 늘려야 한다는 데는 동의했으나 자격 요건을 제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일반 주식은 아무리 떨어져도 0원이기에 손실은 제한적이고 이익은 무한대지만, 공매도는 주가가 끝없이 오르면 무한대의 손실을 입을 수 있어 위험한 투자”라며 “관련 지식을 갖춘 개인만 선별적으로 공매도를 할 수 있도록 자격증을 발급하는 형태로 운영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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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인터뷰에서 “공매도는 죄가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 미공개 정보 이용 등 부정한 방법을 사용할 때 그 수단으로 공매도가 이용되는 것이 문제일 뿐 공매도 자체를 비난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2016년 한미약품 사태 역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것이 잘못이지 공매도 제도의 문제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매도를 좋아하는 투자자는 없다. 한국 뿐 아니고 언제 어디서나 그렇다”며 “그러니 투자자들이 공매도에 갖는 적개심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이걸 달래려고 여론에 맞추려 하면 안된다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또 가격이 오르면 따라 사는 ‘단기적 추격매수’ 스타일의 투자는 공매도를 만날 수밖에 없기 장기투자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어차피 회사의 펀더멘털이 좋지 않다면 공매도가 없어도 주가가 떨어지지 않겠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적정주가가 1만원인 주식이 공매도로 인해 2만원에서 떨어지는 것과 공매도 없이 7만원까지 치솟았다가 1만원으로 하락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투자자에게 큰 손실인가”라고 되물었다.
1년 이상 공매도가 없었기 때문에 증시에 거품이 있다고 봐야하느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이어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면서도 “거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오랫동안 공매도를 금지하게 되면 거품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규제에 따른 역기능이 계속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치권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전문가에게 맡겨야 할 공매도 문제에 표를 의식한 당과 정치인 달려들면서 왜곡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공매도 문제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집단은 금융위원회다. 당정이 금융위를 멋대로 흔들면 그만큼 자본시장만 망가지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서점가에서 주식관련 책이 불티나게 팔리는 요즘 이 교수의 저서 <이것이 공매도다>는 2019년 8월 1쇄 발행 후 무려 1년 6개월이 넘은 지난달 초에 2쇄를 찍었다. 공매도에 대한 뜨거운 관심치고는 저조한(?) 성과다. 이 교수는 “2쇄가 나온 지도 몰랐다. 그나마 책을 쓴 뒤 공매도를 폐지하자는 분들이 조금은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라 감사한 마음”이라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