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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서울의 봄’은 26년에 걸쳐 다섯 개의 영화 작업을 함께한 김성수 감독과 주연 배우 정우성의 필모그래피에 뜻깊은 족적을 남길 작품으로 이목이 집중된다. ‘서울의 봄’이 두 사람 각자의 모든 에너지와 26년간 쌓은 협업 시너지를 한 번에 응축한 마스터피스란 평가다. 오랜 기간 여러 굵직한 작품들을 작업했지만, 아직까지 ‘천만 타이틀’을 보유하지 못한 이들의 첫 ‘천만 감독’, ‘천만 배우’ 수식어를 ‘서울의 봄이 만들어줄 가능성이 높다. 전두광으로 분한 황정민의 강렬한 변신이 ’서울의 봄‘을 향한 관심을 1차적으로 견인했다면, 영화를 보고 난 뒤 ’서울의 봄‘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캐릭터는 두 사람이 빚어낸 각색된 인물 ’이태신‘에서 발휘된다는 반응도 나온다. 정우성을 청춘의 아이콘으로 끌어올린 ’비트‘부터 정의와 상실의 아이콘 이태신을 낳은 ’서울의 봄‘까지. ’충무로 부부‘ 김성수 감독과 정우성의 26년, 신뢰의 협업으로 탄생한 ’이태신‘이란 캐릭터의 의미를 되짚어봤다.
정우성과 김성수 감독의 인연은 각별하다. 이정재와 정우성의 ’청담부부‘를 위협할(?) ’충무로 부부‘라는 농담 섞인 수식어도 나올 정도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7년 개봉한 영화 ’비트‘로 거슬러올라간다. 김성수 감독은 박광수 감독의 연출부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 뒤, 이병헌 주연의 1995년작 ’런어웨이‘로 입봉했다. 김성수 감독의 입봉작은 그렇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2년 후 선보인 ’비트‘와 1999년 개봉한 ’태양은 없다‘가 연달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감독으로서 인지도를 갖추게 된다. 이 두 작품은 신인 배우가 주인공인 캐스팅, 청춘의 고뇌와 방황을 비극적 서사와 스타일리시한 연출로 풀어낸 세련된 감각이 호평을 낳으며 동시대 젊은 관객들을 강력히 사로잡았다. 특히 ’태양은 없다‘는 약 30년이 지난 현재 충무로를 대표하는 톱배우 절친 정우성과 이정재를 배출했다.
정우성은 김성수 감독의 초기작 ’비트‘의 주인공을 시작으로 ’태양은 없다‘, ’무사‘, ’아수라‘, 최근 개봉한 ’서울의 봄‘까지 26년간 총 다섯 개의 작품을 함께했다. 김성수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청춘 누아르 액션에서 무협 액션, 정치 누아르 등 다양한 장르와 세계관으로 확장되는 과정에 정우성이 늘 함께였다.
한국 영화 청춘물 장르를 대표하는 ’비트‘는 당대 흥행에 성공함은 물론, 2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한국 영화사에 의미있는 족적을 남긴 명작으로 꼽힌다. 당시 신인이던 정우성의 첫 스크린 주연작으로, 정우성은 이 작품을 통해 반항아와 청춘의 아이콘으로 90년대~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톱스타로 떠올랐다. 지금의 김성수 감독을 있게 한 주요작으로도 평가된다. 동명의 만화가 원작으로, 주인공 민(정우성 분)을 중심으로 친구 환규(임창정 분), 태수(유오성 분) 등을 등장인물로 내세워 10대들의 위태롭고 혼란스러운 정서를 누아르 액션 장르로 녹였다. 폭력으로 얼룩진 10대의 기억과 복수, 세 인물의 극단적 변화를 그렸다. “난 꿈이 없었어”란 주인공 민의 대사, 민이 두 손을 놓고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도로를 달리는 장면 등이 정우성의 뛰어난 비주얼, 목소리와 시너지를 내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여성팬은 물론, ’비트‘의 정우성을 동경하는 10대, 20대 남성팬들도 생겨났다. 그 당시 정우성을 보며 영화배우의 꿈을 키운 후배들도 적지 않다.
이후 ’무사‘와 ’아수라‘ 등은 정우성이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출연을 결정할 정도로 김성수 감독과의 신뢰가 두터워졌다. 2001년작 ’무사‘는 당시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무협 액션 장르로 주목받았다. 대규모 해외 로케, 당시 기준으로 크게 힘을 줬던 특수효과, 정교한 더미(인체 모형 인형) 제작 등 기술력과 스케일에 큰 공을 들였다. 한국영화 액션 역사의 산증인인 정두홍 무술감독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역동적인 액션신들, 김성수 감독의 집요한 연출 스타일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러닝타임 대부분에 등장하는 웰메이드 액션 시퀀스, 고려 사신을 지키는 호위무사로 변신한 정우성의 연기 변신, 대부분의 액션을 직접 소화하낸 배우들의 노고와 열연이 재평가받고 있다.
김성수 감독과 정우성의 네 번째 협업물인 ’아수라‘(2016)는 김성수 감독의 독하고 집요한 연출 스타일과 정우성의 열연에 정점을 찍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정우성은 ’서울의 봄‘ 인터뷰에서 김성수 감독에 대해 “감독님을 좋아하지만 현장에선 진짜 화가 날 때가 많다”며 “’아수라‘ 때 감독님이 뛰어다니다 발목이 부러졌는데 그때 좋아서 박수쳤던 사람이 나”라고 회상한 바 있다. 그럼에도 늘 이번이 마지막인 것처럼 작업하는 김성수 감독의 성실함과 집요함을 존경한다고도 덧붙였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정우성의 연기는 ’아수라‘ 때가 최고였고, 그 신뢰관계가 감독과 배우의 특별한 케미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런 점에서 ’서울의 봄‘ 이태신은 두 사람이 오랜기간 영화적 동료로서 쌓은 신뢰를 꽃피운 캐릭터라고 입을 모은다. ’이태신‘의 탄생은 12.12 군사반란 당시 수도를 지켰던 실존인물 장태완 장군이 단서가 됐지만, 성격 등 구체적 캐릭터성은 실존인물과 완전히 다르다. 이태신이야말로 김성수 감독의 각색력, 정우성과의 케미로 새롭게 탄생한 매력적 캐릭터란 평가다. 악역을 미화하고, 반란군의 승리만 조명하는 것을 우려한 김성수 감독이 원래 시나리오에선 적은 비중이었던 이태신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웠다. 전두광 위주였던 시나리오를 악역 ‘전두광’과 반란에 맞서 본분을 지키려 한 군인 ‘이태신’의 일대일 대결 구도로 쉽게 재구성한 것.
실존 인물 대신 배우 정우성의 정의롭고 선한 평소 성격을 참고, 이태신을 불같은 성정의 전두광과 정반대인 ‘물’같은 캐릭터로 표현했다. 오동진 평론가는 “장태완 장군은 사실 역사적 평가가 그렇게 멋지기만 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정우성의 멋진 느낌으로 ‘이태신’이란 캐릭터를 윤색한 것”이라며 “그 윤색을 두 사람이 서로간의 신뢰로 함께 성공적으로 해낸 셈”이라고 설명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역시 “‘서울의 봄’은 김성수 감독이 12.12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잘 드러난다는 점이 좋은 매력인데, 정우성이 이태신 역할을 맡은 게 크게 작용했다”며 “이 역사를 왜 어떻게 영화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이 잘 맞았기에 영화가 더 빛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의 봄’이 1000만 관객을 달성하면 김성수 감독과 정우성의 첫 1000만 영화가 된다. 이전까지 두 사람의 협업 흥행기록은 ‘아수라’(260만 명)가 최다였다. 두 사람의 시너지로 700만 돌파에 힘입어 1000만 한풀이까지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두 사람의 존재는 서로에게 어떤 의미일까. 정우성은 이렇게 답했다. “스승이자, 형, 동료, 저에게 배우를 뛰어넘어 영화인이 될 수 있는 동기부여를 주신 분이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그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