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순용 의학전문기자] “심리적 아픔(심장 통증)과 칼에 베인 고통, 우리 뇌에겐 똑같은 통증입니다.”
부천세종병원 우은송 과장(정신건강의학과)은 “뇌는 감정과 신체를 구분하지 않는다. 신체적 외상을 비롯해 극한 스트레스, 결별, 사별 등 심리적 부분까지 모두 ‘물리적 통증’으로 처리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심장은 단순한 펌프가 아니라 예민한 ‘신경·감정 기관’”이라며 “심장은 자율신경계와 감정 회로에 의해 실시간으로 제어되는 민감한 수신기인데, 감정적 스트레스는 즉각적인 물리적 반응으로 번역되는 만큼,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심장이 아프다고 느끼는 건 당연한 증상”이라고 강조했다.
감정적 스트레스는 뇌의 특정 신경회로를 거치면서 실제적인 신체 통증으로 나타나게 된다. 어디를 다쳤을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와 우리가 마음이 아플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같다는 뇌과학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심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심장(가슴) 통증을 신경·감정적으로 접근해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 과장은 “과거에는 심장 통증이 스트레스받아서 신경성으로 아픈 것, 실제 신체적 이상은 없다며 이른바 가짜 통증으로 치부해왔다”며 “그러나 진실은 스트레스 자체는 기분만 건드리는 게 아니라 뇌 감정회로, 자율신경계 등을 건드리기 때문에 심장박동이나 호흡, 근육 긴장, 통증 조절 시스템까지 영향을 준다. 그래서 심장이 아프고 숨이 차고, 소화도 안되고, 여기저기 아프다고 표현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심장과 뇌의 연결 이해하기
뇌를 살펴보면, 뇌 안쪽 ‘편도체’가 공포 및 불안을 담당한다. 위험을 느끼는 순간 편도체가 바로 반응해 빠르게 심장을 뛰게 하고 근육 긴장도도 올리고 우리를 도망치게 준비를 시킨다. 이른바 가속을 내는 엑셀 역할이다.
브레이크 역할은 뇌 앞쪽 ‘복내측 전전두피질’이 담당한다. 여기서 안전하다고 판단하면 편도체로 신호를 보내 공포 및 불안반응을 조절하게 된다.
이 과정은 정상적인 감정 조절이다. 단순히 공포를 그냥 지우는 게 아닌, 편도체 내의 특정 세포를 활성화해 공포 출력을 물리적으로 잠재우는 새로운 (소멸)학습이다.
문제는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면 이 엑셀과 브레이크에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브레이크 고장이 문제인데, 억제 신호가 약해지다 보니 뇌가 항상 전투준비 상태에 놓여 작은 자극에도 숨이 막히거나 심장이 떨리거나 근육 긴장도가 올라가게 된다. 이 경우 환자는 점점 더 신체 신호에 예민하게 되고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된다.
뇌의 섬엽(Insula)이 과잉 각성할 때도 문제가 된다. 뇌가 신체 내부 신호에 지나치게 예민해진 상태를 말하는데, 이 경우 심인성 흉통이 생길 수 있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안전한 심장박동에도 놀라 신경 신호를 증폭, ‘생명 위협’으로 오역해 극심한 흉통을 생성하는 것이다.
사회적 화합을 위해 감정을 억누를 때도 신체의 변화가 생긴다.
억지로 감정을 억누를 때 뇌의 사령탑 역할을 하는 전두엽의 인지적 업무 부하가 급증하는데, 이 과부화는 자율신경계의 비상 신호로 변환돼 가슴 답답함, 심장 두근거림, 안면 열감 등의 물리적인 순환기 증상으로 표출된다. 이런 상태의 대표적인 예가 ‘화병’이다.
◇ 심리적 가슴 통증의 치료 방법
환자가 느끼는 가슴 통증은 꾀병이나 거짓이 아니다. “검사 결과가 다 정상인데, 왜 이리 유난이냐”가 아닌, “이 사람은 과활성화돼 있구나, 치료받아야겠구나”로 이해해야 한다. 비난은 물리적 독과 다름없다.
오히려 환자의 편도체를 자극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쏟아내게 하고 심장의 고통을 악화시킨다. 무엇보다 실재를 인정하는 게 첫 번째 해독제다.
세로토닌 등 신경전달물질이 불균형 상태면 먼저 약물을 통해 안정시키는 게 필요하다. 대표적인 게 세르토닌이 재흡수 돼 사라지는 걸 줄이게 하는 SSRI(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 약물이다.
이 약물은 항우울제 혹은, 세로토닌만 조절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단순한 안정제에 그치는 게 아닌, 뇌의 신경영양인자(BDNF) 분비를 촉진해 스트레스로 쪼그라든 해마와 전전두피질의 신경세포 연결을 물리적으로 다시 자라게 하는 등 뇌 회복을 돕는다.
뇌에서 척수로 내려가는 ‘하행성 통증 조절 경로’의 필터를 촘촘하게 만들어 물리적인 고통 수치를 낮추는 SNRI(Serotonin-Norepinephrine Noradrenaline Reuptake Inhibitor) 약물도 유용하게 쓰인다.
우 과장은 “약물 효과 발현까지 통상 4주가 걸리니 그때까지 충분히 기다리는 게 필요하다”며 “간혹 증상이 재발하기도 하는데, 이건 실패가 아닌 신체 센서가 잠시 예민해진 상태임을 명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어느 정도 안정되면 비약물적 치료로 완치로 향해간다. 비약물적 치료의 핵심은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 뇌가 학습하게 하는 것이다.
인지행동치료(CBT)라 일컫는데, 훈련을 통해 심박수가 올라가는 상황에서도 “나는 안전하다”는 새로운 데이터를 뇌에 입력해 파멸적 공포 해석을 교정하는 것이다.
이 같은 치료를 위해서는 먼저 철저한 신체 검진이 필요하다. 가슴 답답함 등 증상의 원인이 심장 질환이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정신건강 치료에만 몰두하다 신체 건강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생활 속에서 카페인과 알코올 섭취를 피하는 습관을 들이고, 호흡 자체에 집중하는 복식호흡과 근육 이완법도 병행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부천세종병원 우은송 과장(정신건강의학과)은 “심리적인 이유로 생기는 심장(가슴) 통증은 결코 모호한 병이 아니다. 우리 몸의 가장 정교한 두 기관인 뇌와 심장의 통신 회로에 잠시 과부하가 걸린 상태”라며 “적절한 약물로 회로의 열을 식히고, 훈련을 통해 센서를 재조정하면 환자의 가슴은 분명 반드시 다시 평온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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