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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결과 깬돌을 사용해 네 벽을 쌓아 만든 무덤방은 길이 2.9m, 폭 2.3m 크기로 방 안에서는 시신과 부장품을 안치한 공간이 5곳 확인됐다.
방의 가장 안쪽인 북쪽 벽에 붙여 폭 76㎝, 높이 15㎝의 시신받침을 만들고 그 위에 금귀걸이 한 쌍을 착용한 시신을 안치한 것이 최초(1차) 매장이었다. 주변에서는 미늘쇠, 철제 낫, 운모 등 부장품도 함께 출토됐다. 시신받침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 무덤방의 바닥에는 자갈돌을 깔았다.
이후 2·3차 매장은 1차 시신받침의 남쪽에 붙여 1차보다 높은 31㎝ 높이에 폭 78㎝, 폭 79㎝의 시신받침을 각각 만들어 시신과 부장품을 안치했다.
4차 매장은 3차 시신받침 남쪽에 붙여 폭 70㎝, 높이 31㎝의 시신받침을 만든 뒤 공간이 좁아 널길까지 확장해 이뤄졌다.
2~4차 매장에서는 금동제 허리띠 장식, 철제 손칼, 미늘쇠, 쇠도끼, 병(甁) 등이 부장품으로 출토됐는데 여러 차례 이뤄진 매장으로 인해 흐트러진 채 출토됐다.
5차 매장은 이전 매장과 달리 남북 방향으로 긴 부장 공간을 만들었다. 동쪽 벽에 붙여 폭 50㎝, 높이 20㎝로 만들었다. 남쪽으로 굽다리접시 등 토기류를 부장했고 좁은 공간 때문에 시신 안치는 기존 2~4차 시신받침을 재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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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방의 천정이나 방을 덮은 봉토는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무덤 방 주변으로 돌려져 있는 2개의 석렬(石烈)을 통해 안에서 밖으로 확장하면서 봉토를 쌓는 ‘양파형 성토법’으로 축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방식은 우리나라의 경주 용강동 고분군, 황성동 고분군, 방내리 고분군 및 일본의 효고현 미다니(箕谷) 고분군, 아이치현 젠다나(膳棚) 고분군, 나가노현 오오무로(大室) 고분군 등에서 돌방무덤의 봉토를 쌓을 때 사용했다.
출토 유물로 미루어 보아 돌방무덤은 6세기 중·후엽 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돌방무덤은 쪽샘지구 1300여 기의 무덤 중 최초이며 대릉원 일원 전체에서도 7기에 불과하다.
연구소는 “이번 조사를 통해 6세기 이후 신라 지배층의 무덤 형태가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돌방무덤으로 변화하는 모습, 나아가 당시 사회 집단 또는 계층별 무덤군의 장소 선정이나 장례 방식 등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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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덤의 반경 20m 내에서는 크기가 비슷한 덧널무덤이 무리 지어 있는데 반해, 동쪽에서는 5세기에 만들어진 지름 10m 이상의 돌무지덧널무덤이 무리 지어 있었다. 쪽샘지구 무덤군이 시기별, 계층별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밝힐 수 있는 자료다.
연구소는 30일 오후 3시 경주 쪽샘유적 발굴조사 현장에서 이번 공동 발굴조사의 성과와 출토 유물을 공개한다. 행사는 별도 신청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더 자세한 사항은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로 문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