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학교수회 "로스쿨·변호사시험 제도 재검토 필요"

성주원 기자I 2024.09.06 14:22:34

창립 60주년 기념식서 선언문 발표
"로스쿨, ''다양한 법 분야 전문가'' 양성해야"
"학부 법학은 민주시민 양성 역할…지원 필요"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한국법학교수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아 법학의 위기 극복과 미래 발전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했다. 6일 ‘한국법학교수회 창립 60주년 기념식 및 학술대회’에서 공개된 이번 선언문은 법학의 현 위기 상황을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한국법학교수회 창립 60주년 기념식 및 학술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선언문은 법학이 처한 위기 상황부터 지적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체제 출범 이후 법학이 단순히 법조인 자격시험을 위한 기술적 지식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심화됐고, 이로 인해 법학의 학문적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법학과 폐지, 법학 전공 학생 및 교원 수 감소, 법학 논문 수 감소 등의 현상을 언급하며 “법학의 삶과 죽음이 갈리는 시간”이라고 현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한국법학교수회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언문을 통해 주요 방안들을 제시했다. 먼저, 법학의 지속과 발전을 위한 사회적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기초법학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로스쿨 교육과정의 재검토 필요성도 제기했으며, 학부 법학의 중요성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변호사시험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법학교수회는 또 로스쿨 교육과정이 ‘다양한 법 분야의 전문가’ 양성이라는 본연의 목표에 맞게 재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학부 법학이 법적 소양을 갖춘 민주시민 양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를 위한 제도적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변호사시험에 대해서는 법학교육의 목표를 반영해야 하며, 현 제도가 이에 부합하는지 면밀히 평가하고 필요하다면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언문은 “법학의 미래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법학계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한국법학교수회는 이번 선언을 통해 법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다음은 한국법학교수회 60주년 선언문 전문이다.

<한국법학교수회 60주년 선언문>

하나.

법학은 인류의 유원한 학문사에서 각별한 지위에 있다. 근대 학문의 발전을 추동한 대학 교육의 중심에는 법학이 있었다. 이것은 법학이 사회의 정의로운 운영을 위해 필수적인 법의 원리와 작동을 규명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100여 년 전 서구의 법체계를 받아들인 우리는, 우리 현실에 적합한 법학의 모습을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그 결과 우리 법학은 지금의 수준을 성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법학을 단지 법조인 자격시험을 위한 기술적 지식으로 여기는 세간의 깊은 오해도 존재한다. 이러한 인식은 법학전문대학원 체제의 출범 이후 더욱 커져 왔다. 그와 동시에 학문 체계의 일원으로서 법학이 온당히 누려야 할 지위도 흔들리고 있다. 여러 법학과들이 폐지됨에 따라, 법학전공 학생과 교원의 수가 급감했고, 그에 따라 법학논문의 수도 줄었다. 이것은 개별 법학 분과를 초월한 전반적인 현상이지만, 법의 근본문제와 배후원리를 탐구하는 기초법학의 두드러진 퇴조는 특히 뼈아픈 징후가 아닐 수 없다.

법학의 환경은 이처럼 빠르게 악화되었으나, 우리 사회의 대응은 부진하다. 우리는 이 상황을 ‘법학의 위기’로 규정해 경각심을 촉구했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이제는 ‘위기’라는 말로도 충분하지 않다. 지금, 우리는 실로 법학의 삶과 죽음이 갈리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막연한 기대로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법학의 사명을 함께 되새기고, 법학이 미래를 희망하기 위해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힘주어 말하려 한다.

둘.

우리는 법학이 추구하는 목표를 다음과 같이 확인한다.

첫째, 법학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실현에 복무한다. 우리 사회는 자유롭고 평등한 법적 인격체들의 결사체로서, 자의와 폭력이 아닌, 정당한 법의 지배를 추구한다. 이를 추진하는 법학은 민주적 법치국가의 이념을 실천하는 수단이다.

둘째, 법학은 정의의 실현에 헌신한다. 법학은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하고, 이를 보장함으로써 사회를 정의롭게 만든다. 이해관계를 공정하게 조정하고, 갈등을 해결하며, 권력과 강자의 횡포를 방지해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법학의 중차대한 과제이다.

셋째, 법학은 비판정신을 구현한다. 법학은 법이념과 법원리에 입각해 현행법에 대한 비판의 근거를 제공하고, 이로써 사회 전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돕는다.

넷째, 법학은 이론과 실무의 균형을 추구한다. 실무 없는 이론은 자족적이기 쉽고, 이론 없는 실무는 맹목적이기 쉽다. 양자를 통합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법학은 주어진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없다. 법학전문대학원 설립 이후 실무 교육의 비중이 늘었지만, 실무적 역량은 충분한 이론적 토대 위에서 꽃피울 수 있다.

다섯째, 법학은 자신의 이념과 원리를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교육을 필요로 한다. 이 교육은, 학문 연구에 매진할 ‘법학자’, 분쟁의 실무적 해결에 기여할 ‘법조인’, 법적 소양을 갖춘 ‘민주시민’을 포괄적으로 양성하는 전문적 과정이다. 특히 학문 후속 세대의 양성은 법학의 지속과 발전을 위한 주춧돌이다.

여섯째, 법학교육은 문제의 새로움을 포착하는 ‘분별력’과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추론력’을 함양하는 과정이다. 사회와 법의 구조적 변동은 늘 새로운 법적 문제를 수반한다. 법학교육의 성공 여부는, 이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법학자와 법조인, 그리고 민주시민을 올곧게 양성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법적 추론력은 법의 원리를 충실히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법적 지식은, 반복된 주입이 아니라, 법의 원리에 기초한 추론의 결과로서 습득되어야 한다.

셋.

우리는 법학이 당면한 난관을 넘어서기 위해 다음 사항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첫째, 법학의 지속과 발전을 위한 사회적 차원의 논의가 있어야 한다. 법학의 위기는 현행 법학전문대학원이나 변호사시험 같은 제도의 문제로 초래되었고, 법학의 쇠퇴는 법학이 수행해 온 기능을 해쳐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 이 상황을 단지 법학자들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기초법학을 위한 특별한 관심이 요구된다. 실무나 자격시험에서 즉각적인 효용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우리는 기초법학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기초법학의 뒷받침이 없는 법학의 발전이란 주춧돌 없이 집을 짓는 일과 같다. 기초법학의 발전을 위한 제도적 대책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법학전문대학원 교육과정은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본연의 목표에 맞게 재검토되어야 한다. 변호사시험 과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법학 분과는 각각의 사회적 기능과 교육적 필요성을 가진다. 우리가 원하는 ‘다양한 법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힘은 ‘다양한 법 분야의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넷째, 학부 법학의 중요성이 재조명되어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 체제 이후 학부 법학의 지위는 계속 약화되어 왔다. 그러나 법학교육의 공급이 큰 폭으로 축소된 현재, 학부 법학의 독자적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학부 법학은 법적 소양을 갖춘 민주시민의 양성을 위해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 역할은 우리 법치주의의 발전을 위한 소중한 자원이다.

다섯째, 변호사시험은 법조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지식과 능력을 가늠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법학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법학교육의 목표를 실현하는 데 변호사시험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변호사시험 제도는 법학교육의 목표를 반영한 것이어야 한다. 합격률을 포함하여, 기존 시험제도가 법학교육의 목표에 부합하는지를 면밀히 평가하고,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

넷.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울려 퍼진 이 선언이 법학의 새로운 희망과 도약을 위한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법학의 미래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법학이 앞으로도 여전히 자신의 학문적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는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24. 9. 6.

한국법학교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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