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의 발달로 접근할 수 있는 미디어가 확대되고 정보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리고 새로운 미디어는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숙명아래 무차별적인 정보를 쏟아낸다. 정보가 너무 많아 오히려 판단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살고 있다. 좀 더 단순하게 살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지만 이런 질문조차도 복잡함을 더한다. 그러면 이런 복잡한 세상에서 어떻게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영국의 작은 마을 오컴(Ockham)에서 출생한 논리학자 윌리엄(William)의 주장에서 유래된 ‘오컴의 면도날’에서 실마리를 풀어보고자 한다. 윌리엄은 어떤 사실을 설명하는데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여러 가지 가설이 있을 때 가정의 개수가 가장 적은 가설을 채택해야 본질을 잘 볼 수 있다고 주장하고, 불필요한 가정들은 면도날로 잘라내듯이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단순성의 원칙 또는 논리 절약의 원칙이라고 하기도 한다.
복잡함을 이겨내는 좋은 조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윌리엄(1285년~1349년)은 복잡하게 살아가는 현대의 사람이 아니라 중세말기 14세기의 철학자이자 논리학자이다. 중세시기에도 복잡함 때문에 고민을 했던 것이 틀림이 없다. 그가 말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것과 불필요한 존재와 가정을 버려야 한다는 점은 좋은 힌트가 된다.
불필요한 가정을 면도칼로 잘라내고 단순화해야 본질이 보인다는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복잡함을 더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반대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소위 말하는 안 되는 100가지 이유를 더하고, 슬쩍 그럴듯한 논리를 펼치면서 혼란을 가중시킨다. 근본적인 목적은 별로 관심이 없고 적극 참여한다는 미명 아래 애매한 의견을 더함으로써 본질을 흐린다. 여기서 핵심은 그들은 분명히 다른 목적이 있다는데 있다. 근본적인 목적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어떤 조직의 논쟁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관찰해보면 분명히 이런 사람들이 있다. 제발 쓸데없는 가정이나 논쟁을 하지 말자고 아무리 설득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세상에 갑론을박하는 논쟁 중에 과연 얼마나 원래 취지나 목적에 부합한 논쟁을 하고 있는가? 반대를 위한 반대 또는 핵심에서 벗어난 반대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볼 때이다. 우리는 이런 핵심에서 벗어난 논란에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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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분명히 이루고자 하는 목적과는 상관없이 논쟁에 논쟁만 한다. 이런 논쟁으로 원래의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든다.
의혹과 의심을 촉발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기가 힘들어 진다. 최근 회자되는 뉴스들을 보면 본질은 어디에 있는지 찾기 어렵고 가정에 가정을 더하여 문제가 실타래처럼 꼬인 경우가 많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원하는 목적을 선명하게 하고 그곳에 집중해야 한다. 누구를 위해서 수많은 의혹을 제기하고 반대에 반대를 하는 것인가? 분명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다.
영업을 잘 하는 사람들을 보면 문제를 선명하게 알고 있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잘 찾는 사람들이다. 말 많은 사람, 특히 이유가 많은 사람치고 영업 실적이 좋은 사람은 없다. 목적달성이 절박하지 않고, 문제를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이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정확히 안다면 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고객은 통상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한두 가지를 얻고 싶어 한다. 무엇을 원하는가를 정확히 안다면 아무리 복잡한 실타래도 술술 풀린다.
우리의 삶도 비슷하다. 무엇을 원하는가를 정확히 알면 그렇게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 그리고 안 되는 100가지 이유를 이야기하면서 주변에서 딴지 거는 사람들은 멀리해야 한다. 진정한 목적 달성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다.
뉴턴은 “진리는 항상 단순함에서 찾아 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