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명품들의 전쟁터
루이 뷔통, 펜디, 겔랑, 지방시, 셀린느, 크리스찬 디오르…… 이 낯익은 브랜드 이름들은 디자이너이자 창업자들의 이름들이다.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은 의외로 그리 많지 않다. 또 이 브랜드들을 포함해 태그 호이어, 쇼메 같은 시계와 보석 브랜드 등 60개가 넘는 유명 브랜드들을 모두 한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더욱 드물다. 대충 아는 이들이 있다고 해도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파리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라면 이 두 가지 사실을 조금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여행의 흥미를 위해서라도.
60개가 넘는 유명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LVMH 그룹은 2007년 한 해에만 165억 유로의 매출과 20억 유로의 순익을 냈다. 이 결과는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1,800개의 매장에서 거둔 것이다. 순이익은 어림잡아 한화로 약 3조 7천억 원 정도 되는 규모이며 2년 전인 2005년 대비 약 7억 유로 성장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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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아르노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는 프랑스 명문 그랑 제콜인 에콜 폴리테크니크 출신의 사업가이다. 국방부 소속인 이 고등교육기관은 프랑스 대혁명 와중인 1794년에 설립된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다. 교장도 현역 군장성이 맡고 있는데, 이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의 생존을 책임지는 전략과 각종 기술 교육을 시킨다. 졸업생들은 프랑스 관계와 중요 기업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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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오페라 가와 몽테뉴 가의 화려한 쇼윈도 뒤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며, 최후의 승자는 아르노였다.
20년 동안 60여 개의 세계적 브랜드를 먹어 치운 아르노와 비교할 수 있는 인물은 프랑스 역사상 나폴레옹 밖에 없다. 전격전의 명수 나폴레옹도 유럽을 그렇게 함락시켰다. 아르노를 나폴레옹과 비교를 하는 것은 과장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르노를 아는 이들은 그가 나폴레옹보다 훨씬 냉정하고 단호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속전속결의 전술에만 있지 않다. 두 사람 모두 지독하게 예술을 사랑했다. 나폴레옹은 도시를 점령할 때마다 박물관과 왕궁에 있는 회화와 조각 작품들을 프랑스로 실어 날랐다. 1815년 나폴레옹이 백일천하를 끝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후에 열린 빈 회의를 통해 대부분 다시 반환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루브르 박물관에는 당시의 작품들이 꽤 남아있다. 아르노 역시 엄청난 기금을 투자해 현대 미술을 사들이고 있으며, 메세나를 통해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있다.
두 사람은 왜 이렇게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전쟁과 예술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일까? 나폴레옹에게 예술은 보잘것없는 자신의 출신을 은폐하고 신격화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였다. 자크 루이 다비드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나폴레옹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제우스와 동일시하는 그림을 헤아릴 수 없이 그렸다. 나폴레옹 자신도 제우스를 나타내는 상징인 독수리를 자신의 상징으로 삼았다. 아르노도 돈과 전략과 배짱을 걸고 벌어지는 명품 전쟁에서 예술을 강력한 무기이자 방패로 삼았다. 예술 작품 구매는 그 자체로 투자이기도 하지만, 기업 이미지를 지키는 더할 수 없이 좋은 포장지이기도 하다.
펜디나 태그 호이어, 루이 뷔통의 옷과 가방 그리고 시계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다. 예쁘다. 갖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선과 색은 충분히 아름다워서 그 욕망을 진정한 것으로 느끼게 한다. 이런 욕망은 예술 작품 앞에서나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소비자들은 지갑을 연다. “상품이 아니라 작품을 산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방 하나와 재킷 하나가 어떻게 몇 백만 원을 호가할 수 있는가? 그 이상 가는 것들도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산다. 주저 없이. 비쌀수록 더 사고 희귀할수록 더 산다. 신제품이 언제 나오느냐 물어보기도 한다. 파리의 명품 부티크에 가면 동양인들은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산다. 대신 줄을 서 주는 알바까지 생겼다고 한다.
가방, 옷, 향수만이 아니다. LVMH는 주류사업에도 손을 대고 있다, 샴페인, 꼬냑, 보드카, 포도주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을 유통시키는 백화점과 이 모든 사업 영역을 홍보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제지와 언론까지 소유하고 있다. 베르나르 아르노가 나폴레옹보다 훨씬 뛰어난 지략과 냉정함을 갖춘 정복자라는 사실이 실감 있게 다가온다.
파리, 아르노의 독무대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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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꼽아야 할 그룹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리치몬트Richemont(불어명은 리슈몽)이다.
까르띠에, 랑셀, 몽블랑, 던힐, 피아제 등이 리치몬트 그룹의 브랜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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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탕 백화점 이외에 통신판매 회사였던 르두트Redoute를 거느리고 있고 2007년에 약 9억 유로 정도의 순익을 냈다.
프랑스에서 살았던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프나크와 콩포라마를 들러 물건을 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매장이 많고 물건도 다양하다. 물론 산하에 언론사도 있고 축구 구단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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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루이 뷔통, 샤넬에 앞서 파리와 프랑스를 먼저 보아야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한 옷맵시는 내되 눈에 띄면 못써. 품위가 있어야 해. 저속한 것은 금물이야. 의복은 인격의 표시이니까. 프랑스의 고관대작들과 세련된 상류사회 양반들은 이 점에 있어 아주 탁월하단 말이야.”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대사다. 1600년에 공연된 연극이니 지금부터 400여 년 전부터 이미 프랑스는 “품위 있는 옷 맵시”에서 단연 유럽 최고의 나라였음을 알 수 있다.
“옷만 깨끗하게 입고 온다면, 평민들도 모두 궁에 입장시켜라.”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0km 정도 떨어져 있는 베르사유 궁으로 천도를 한 다음 태양왕 루이 14세가 발표한 칙령에 있는 말이다. 사생활의 역사를 집요하게 파헤친 한 20세기 프랑스 역사가는 베르사유 궁에서 에티켓과 예절의 모든 것이 우아함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쓴 바 있다. 우아함, 즉 엘레강스는 이후 모든 유럽 궁정의 모방하는 모델이 되었고 자연히 유럽의 왕실에서는 불어를 배워야만 했다. 이런 역사는 18세기에 최고조에 달했다. 루이 15세의 애첩인 퐁파두르Marquise de Pompadour와 뒤바리 부인Madame du Barry이 어떤 드레스를 입고 어떤 음식을 먹으며 누구와 만났는지는 국가의 중대사로 간주되었다. 이 두 여인은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들을 후원했다. 자연히 이 애첩들 밑에는 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이 모였으며, 이렇게 해서 로코코라는 장식적이고 여성 취향인 사조가 태어났다.
19세기 들어 대혁명이라는 비극을 맛본 프랑스였지만, 귀부인과 이미 탄생한 재벌 마담들이 여는 살롱을 중심으로 에티켓과 모드, 절제된 언어와 예술 후원은 계속되었다. 모든 문인과 예술가들이 살롱을 드나들었다. <카르멘>을 쓴 소설가 메리메Mérimée는 그의 중편 소설 <일르의 비너스>에서 파리에서 800km나 떨어진 스페인 국경지대에서도 시골 부르주아들이 파리에서 발간되는 주르날 데 모드라는 잡지를 구독하고 있었다고 쓴 적이 있다. 시골 청년 알퐁스는 파리에서 온 신사의 은으로 만든 시계줄과 양복만 뚫어져라 쳐다보면 결혼식에 입을 옷 생각만 한다. 프랑스는 이런 나라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면 남북전쟁 직후 모든 미국 여인들이 프랑스에서 만든 모자에 넋을 읽는 장면이 나온다.
파리는 이런 도시였다. 프랑스 최고의 소설가인 발자크Balzac의 <고리오 영감>을 보면 주인공인 20살의 법대생 라스티냐크는 시골에서 돈이 올라오자마자 양복점으로 달려가 옷부터 맞춘다.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파리에서 의상은 살아남기 위해 배워야 하고 입어야 하는 생존 도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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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랜 전통에서 샤넬이 나왔고 입생로랑이 나올 수 있었다. 샹젤리제에서 센느 강 유람선 바토 무슈의 선착장이 있는 알마 광장까지 펼쳐진 긴 대로가 패션 거리인 몽테뉴 가인데, 크리스찬 디오르, 샤넬, 아르마니, 루이 뷔통, 푸치, 돌체 앤 가바나, 로에베, 셀린느, 에스카다, 클로에, 보테가 베네타, 니나 리찌, 막스 마라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명품 부티크들이 자리잡고 있다. 몽테뉴 가 한가운데에는 파리 특급 호텔인 플라자 아테네가 있다. 세련된 디자인,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마케팅 기술 등도 눈여겨볼 요소들이지만, 무엇보다 응용 예술의 한 분야인 럭셔리 산업이 순수 미술과 맺고 있는 프랑스만의 깊은 전통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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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명품 시장은 갈수록 예술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예술을 응용하거나 제품에 적용하는 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옷과 구두가 그 자체로 작품이 되어야만 한다. 즉 아름다운 선을 뽑아내고 매혹적인 색을 만들어 내는 악마성이 깃들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파리를 거닐며 이 악마에 매혹 당한 여인들은 영화의 주인공이 된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악마는 파리를 입는다.
여행·문화·예술 포탈 레 바캉스(www.lesvacances.co.kr) 대표 정장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