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요 굿파트너”...노조가 사모펀드에 상을 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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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의 기자I 2026.01.27 06:30:05

[기업을 살린 사모펀드들] ①
사모펀드에 팔렸던 위기의 ''동양매직''
대기업도 사고 싶어하는 회사로 변모
사모펀드에 상패 건넨 노동조합 "고마웠다 굿파트너"

국내 시장에서 사모펀드는 구조조정과 고용 불안의 상징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부정적 사건이 잇따르며 시선이 차가워졌지만, 실제로는 기업을 살리고 키워낸 사례가 많습니다.

이데일리는 사모펀드가 인력 감축 대신 성장에 투자하며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사례를 집중 조명했습니다. 사모펀드에 인수됐다는 이유로 우려와 오해를 받았으나, 체질개선에 성공한 기업 사례를 통해 사모펀드의 전문 경영인 영입과 글로벌 확장, 고용 확대가 어떻게 실적 개선과 성장으로 이어졌는지를 살펴봤습니다.

이를 통해 투자 방식과 경영 전략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을 짚으며, 사모펀드를 둘러싼 편견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성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송승현 기자] 2016년 11월 28일. 노동조합이 사모펀드(PEF)에 상을 줬다. 그것도 회사를 인수했다가 몇년이 지나 다시 팔고 떠나는 사모펀드에게. 노동자들이 만든 상패에 적힌 문구는 "함께 했던 시간동안 뜨거운 열정으로 회사와 노동조합 발전을 위해 노력해줘서 고마웠다. 귀사(사모펀드)가 더 높이 도약의 기회로 나아가길 바란다"였다.

사모펀드는 한국 노동자들에게 여전히 두려운 이름이다. 인수 이후 비용을 줄이고, 사람을 내보내고, 회사를 ‘정리’한 뒤 떠나는 자본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다. 그런 사모펀드에게 노동조합이 상을 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은 동양매직이라는 회사가 국내 사모펀드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글랜우드PE)-농협은행 PE(현 NH투자증권 PE)에 매각된 이후 겪은 변화를 돌아보게 만든다.

동양매직(SK인텔릭스와 나비엔매직의 전신)에서 일했던 한 근로자는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회사가 글랜우드라는 사모펀드에 팔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눈앞이 캄캄했다. 당연히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경영에 참여한 그 사모펀드는 우리 밀린 임금을 먼저 줬고, 회사 빚부터 갚기 시작했다”



멈춰 있었던 동양매직...망하지는 않았지만, 꺼진 성장엔진



글랜우드가 NH농협은행 PE와 함께 컨소시엄을 이뤄 동양매직을 인수한 지난 2014년, 회사는 겉으로는 돌아가고 있었다. 공장은 멈추지 않았고, 제품은 팔렸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시간도, 전략도 멈춰 있었다. 모기업인 동양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신규 투자와 채용이 사실상 중단됐고, 중장기 전략을 논의할 여유도 사라졌다.

동양매직은 렌탈 사업을 하고 있었지만, 회사의 중심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제조가 본업이었고, 렌탈은 부수적인 영역에 가까웠다. 문제는 제조와 렌탈이 공존하는 구조에서 현금 흐름이 점점 불안정해졌다는 점이었다. 렌탈은 돈이 늦게 들어오고, 제조는 당장 비용이 나간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회사는 고금리 차입과 매각렌탈채권에 의존하고 있었다. 렌탈로 발생할 미래 수익을 앞당겨 현금화하는 방식이었다. 당장은 숨을 돌릴 수 있을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남는 것은 이자 부담과 얇아진 현금 흐름뿐인 방식이다.

직원들이 느낀 위기는 재무제표가 아니라 분위기에서 먼저 왔다. “올해는 넘기겠지”라는 말이 오갔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줄어들었다. 회사는 숨은 쉬고 있었지만, 빨리 달릴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보통 사모펀드가 하지 않는 선택..."사람을 자르지 않는다"



글랜우드가 인수 직후 가장 먼저 손댄 것은 동양매직에 쌓인 빚이었다. 동양매직은 모기업 동양의 법정관리 여파로 각종 우발채무와 지급보증, 고금리 차입에 묶여 있었다. 회사가 벌어들이는 현금의 상당 부분이 이자 비용으로 빠져나가는 구조였다. 이 상태로는 어떤 변화도 지속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인수 직후 유상증자를 단행해 자금을 투입했고, 고금리 차입부터 정리했다. 저축은행과 캐피탈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던 차입 구조는 글랜우드의 인수 파트너로 함께 들어온 NH농협은행을 중심으로 우량 대출로 재편됐다. 가중평균 차입 이자율은 2013년 말 10.1%에서 2014년 말 7.5%로 낮아졌고, 2015년에는 3%대까지 떨어졌다. 연 14%가 넘는 금리로 묶여 있던 300억 원 규모의 매각렌탈채권도 전액 상환했다. 미래 현금을 앞당겨 쓰는 방식에서 벗어나, 회사가 스스로 숨을 쉴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재무 구조 정리는 곧바로 현장으로 이어졌다. 글랜우드는 인수 이후 미지급 상태였던 통상임금을 지급했다. 회사가 어려워 미뤄왔던 문제를 가장 먼저 해결한 것이다. 이후 조직을 손봤다. 기존의 혼재된 구조를 가전, 렌탈, 서비스로 명확히 나누고, 서비스 자회사에 흩어져 있던 MC 조직과 콜센터를 본사로 통합했다. 제조와 판매, 서비스가 각자 움직이던 회사를 하나의 방향으로 묶는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의 인력이 소속을 옮겨야 했고, 내부 반발도 적지 않았다. 렌탈 사업이 계획만큼 성장하지 못할 경우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글랜우드는 이 변화의 과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구조조정은 선택지에 두지 않았고, 변화의 방향과 이유를 현장과 공유하는 방식을 택했다. 노조와의 소통을 이어가며 조직 개편과 사업 전환의 취지를 설명했고, 사람을 줄이지 않고 회사를 바꾸겠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변화의 속도와 방식에 대한 이견은 있었지만, 회사가 단기 성과를 위해 현장을 희생시키지는 않겠다는 메시지는 일관되게 전달됐다.

인수 이후 글랜우드가 잇따라 보여준 경영 결정들이, 회사 내부의 공기를 바꿨다. 동양매직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버티는 회사가 아니라, 다시 한 번 성장의 방향을 설정해보려는 회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현장에서도 변화는 ‘정리’가 아니라 ‘전환’이라는 공감대가 서서히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멈춰있던 회사'에서 대기업도 사고싶어하는 회사로



구조와 재무가 정리되자, 동양매직이 어떤 회사가 될 것인지도 선명해졌다. 글랜우드는 동양매직을 단순한 주방가전 제조사가 아니라, 렌탈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만드는 회사로 재정의했다. 당시 렌탈 사업은 회사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음에도, 렌탈 시장을 유망하게 본 글랜우드는 이 작은 조직에 회사의 미래를 걸었다.

선택은 명확했다. 고가 전략이 아니라 가성비였다. 경쟁사들이 월 3만~5만 원대 프리미엄 렌탈에 집중하던 시기, 동양매직은 월 9,800원 정수기 같은 제품을 내놨다. 기능을 최소화하고 가격을 낮췄다. 1인 가구와 오피스텔 거주자처럼 ‘물만 깨끗하면 충분한’ 고객을 겨냥한 전략이었다. 단기간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계정을 빠르게 늘릴 수 있는 길이었다.

이 전략은 렌탈 사업의 성격을 바꿨다. 한 대를 팔아 큰 이익을 남기는 구조가 아니라, 많은 계정을 통해 예측 가능한 현금 흐름을 쌓는 구조였다. 렌탈 계정 수는 인수 전 53만 계정 수준에서 매각 시점에는 85만 계정으로 늘었다. 60%에 가까운 증가였다. 회사의 매출 구조도 점차 일회성 판매보다 반복 수익 중심으로 이동했다.

렌탈 계정이 늘어나자, 회사 내부의 풍경도 달라졌다. 계정을 관리하고 고객과 접점을 유지할 사람이 필요해졌다. 글랜우드는 이 지점에서 인력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늘렸다. MC 조직을 확대했고, 콜센터와 서비스 인력도 보강했다. 배송·설치·A/S를 외주에 맡기기보다 회사 안으로 끌어들여, 고객 불만과 서비스 품질을 직접 관리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렌탈 비즈니스에서 고객 경험이 곧 해약률과 수금률로 이어진다는 판단에서였다. 그 결과는 지표로 나타났다. MC 인원은 2013년 544명에서 2015년에는 2100명까지 늘었다. 해약률은 0.95%에서 0.68%로 낮아졌고, 수금률은 89.2%에서 92.2%로 올라갔다. 렌탈 자산의 질이 함께 개선됐다는 의미였다.

이 변화는 고용으로 이어졌다. 글랜우드-NH컨소시엄 인수 당시 1898명이던 임직원 수는 재매각 시점이던 2016년에는 3890명으로 늘었다. 신규 채용의 상당수는 경력단절 여성과 신입 사원이었다. 회사는 더 많은 사람을 필요로 했고, 그 선택은 곧바로 성과로 돌아왔다. EBITDA는 연평균 6.9%씩 증가했다. 동양매직은 ‘사람을 줄이며 버티는 회사’가 아니라, ‘사람을 늘리며 커지는 회사’로 변모했다. 이 과정에서 동양매직은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고용노동부가 선정한 '2015년 고용창출 100대 우수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제품 전략에서도 같은 흐름이 이어졌다. 수익성이 낮은 제품군은 과감히 정리했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신제품 개발에 투자했다. 업계 최초로 IoT 기능을 탑재한 직수형 정수기가 이 시기에 나왔다. 가전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와 데이터가 결합된 플랫폼으로 설계되기 시작했다. 이 변화가 SK그룹이 동양매직에 주목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성장한 동양매직은 지난 2016년 11월 SK네트웍스 품에 안겼다. 2024년 SK매직 가전사업부가 분할돼 경동그룹에 매각된 뒤 현재 'SK인텔릭스'로 사명을 변경,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모펀드의 다른 얼굴



취재를 마무리하며 다시 떠오른 것은, 동양매직 노동조합 관계자가 했던 말이었다. “우리 회사를 산 사모펀드에게 상을 줬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엔 낯설게 들렸지만, 동양매직이 거쳐온 시간을 따라가다 보니 설명이 필요 없는 문장이 됐다.

글랜우드PE 사무실 한켠에는 여러 개의 상패가 놓여있다. 이 사모펀드가 인수했던 회사들, 그리고 그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남긴, 숫자와 계약서로는 남지 않는 평가다. 회사를 사고 떠난 투자자에게 남은 것이 수익만은 아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모펀드를 둘러싼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으로 기울어 있지만, 이 상패들은 그 인식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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