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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수도를 한양으로 정할 때 북악을 주산으로 하고, 뒤로 뻗은 삼각산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았다. 일화로는 무학대사가 조선의 수도 후보지를 찾아서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삼각산에 올랐다고 한다. 백운대에서 만경대를 거쳐 서남쪽의 비봉에 이르러 비석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는 ‘무학이 길을 잘못 들어 여기에 이른다’는 글귀가 써 있었다. 그 길로 방향을 바꾸어 내려가 정한 궁의 터가 지금의 경복궁이라고 한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면서 ‘우뚝 솟은 뫼는 하늘까지 솟았네. 한양의 지세는 하늘을 열어 이룩한 땅. 굳건한 큰 대륙은 삼각산을 떠받쳤고’라는 시를 읊었다. 병자호란 때 중국으로 끌려간 김상헌은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라고 삼각산을 언급하기도 한다.
지금의 북한산이라는 명칭은 일제강점기 행정구역과 지명을 개편하면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에서 북한산 명칭을 일제 잔재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렇게만 보기 어렵다. 신라의 24대 왕 진흥왕은 북한산 비봉에 순수비를 세웠는데, 정확한 명칭은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다. 삼국시대부터 북한산이라 불린 것이다.
북한산 명칭은 1983년 ‘북한산국립공원’이 지정되면서 공식 명칭으로 인정됐다. 그러면서 삼각산이라는 이름은 공식 문서에서 설 자리를 잃어갔다.
서울 강북구에 있는 행정동 삼각산동은 잊혀가는 삼각산의 이름을 찾을 수 있는 지명이다. 이 지역은 주민 99%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게 특징이다. 미아 뉴타운이 들어서면서 대대적인 주거정비사업이 이뤄진 결과다. 대표적으로 SK북한산시티(3830세대), 두산위브트레지움(1370세대), 래미안트레베라1(1247세대)·2차(1330세대), 아이원(1344세대)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