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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쌈장·콩·페이커까지… 광고로 보는 게임의 역사

김무연 기자I 2020.08.08 10:00:00

지상파서 PC방 전원 내릴 정도로 게임 ‘사회악’ 취급
이기석, 1999년 코넷 광고 나오며 프로게이머 알려
홍진호, 게이머들만 알던 문화 바탕으로 CF까지 찍어
이상혁, 세계적 명성에 보수적인 식품업체도 러브콜

게임 폭력성을 실험한 보도 중 한 장면(사진=MBC 뉴스데스크 캡처)
[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어, 어, 어? 뭐야! 보스 깨고 있었는데!”, “아, 미치겠다. 내가 진짜”

이제는 일종의 밈(인터넷 유행 요소)로 남아버린 공중파 뉴스의 한 장면이다. 게임이 미치는 폭력성을 실험한다는 이유로 PC방의 전원을 내린 뒤 게이머들의 반응을 살핀 것이다. 공중파에서 무리한 실험을 할 정도로 사회에는 ‘게임은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악’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시대는 점점 게임에 열광하고 있다. 프로게이머들은 이제 수 십 억원의 연봉을 보장받으며 마이클 조던 못지 않은 전세계적인 스타로 각광 받는다. 시대의 아이콘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다는 광고의 흐름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에서 게임이 가지는 위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볼 수 있다.

이기석이 출연한 코넷 광고(사진=유튜브 캡쳐)


◇ 프로게이머로 첫 광고 출연, ‘코넷 ID 쌈장’ 이기석,

1999년 한 인터넷 기간망 TV 광고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 잡았다.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한 낯선 인물이 절벽 위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만세를 하듯 팔을 펼치자 그 위로 3D 그래픽으로 그려진 거대한 우주 함선이 지나가는 광고였다. 바로 국내에서 프로게이머가 처음으로 CF 모델로 등장한 KT의 ‘코넷’ 광고다. 당시 모델은 스타크래프트 세계 챔피언 ‘쌈장’ 이기석이었다.

이기석은 신주영, 국기봉 등과 1세대 프로게이머로 불리는 인물이다. ‘스타크래프트’가 PC방이란 새로운 문화 공간을 만들어 내면서 학생들 사이에서 이기석의 명성도 순식간에 올라갔다. 특히 당시 iTV에서 진행하던 스타크래프트 대회에 참여하거나 해설을 도맡으며 인지도를 높였다.

이기석의 광고 출연으로 대중들은 비로소 프로게이머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특히 프로게이머의 이름과 더불어 게임을 할 때 사용하는 ‘ID’의 존재감도 함께 커졌다. 이에 힘입어 이기석은 KBS에서 방송한 ‘밀레니엄 슈퍼내각’이란 프로그램에서 차세대 ‘사이버 국방장관’으로 지명되기도 했다. 그와 함께 이름을 올린 사람이 바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다.

이기석은 이런 유명세를 바탕으로 당시 최고의 TV 토크쇼로 꼽혔던 ‘김혜수의 플러스 유’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프로게이머의 전망을 밝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한때 등장했다 사라진 수많은 특이 직업군 중 하나로만 여겨졌다. 실제로 2000년 대 초반 IT 버블로 게임단을 후원하던 기업들이 줄도산하면서 프로게이머의 입지도 크게 줄어들었다.

홍진호가 출연한 트윅스 광고(사진=이노레드 공식 블로그)


◇ 홍진호, 콩·2인자 이미지로 광고와 예능 섭렵

위기에 처한 프로 게임 업계를 일으켜 세운 것은 ‘황제’ 임요환이다. 임요환 이상의 실력을 가진 게이머들이 다수 등장했고 이를 추종하는 팬덤도 다양하지만 프로 게임이 현재의 기틀을 임요환이 마련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임요환은 압도적인 게임 실력과 연예인 같은 멋진 외모로 수많은 사람들의 우상이 됐지만, 그의 인기는 라이벌과의 격전을 거치며 더욱 상승했다. 당대 임요환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프로게이머는 ‘폭풍저그’라는 이명으로 알려진 홍진호다.

홍진호는 여러 프로 리그에서 항상 우승자로 꼽히던 실력파 선수였다. 문제는 결승전에서 임요환이란 벽을 넘지 못했단 점이다. 팬들은 만년 2위에 그친 그를 조롱하기 위해 홍씨 성과 발음이 유사한 ‘콩’이란 단어로 부르기 시작했다. 현재 인터넷 상에서 콩은 곧 2인자를 뜻한다. 또 홍진호 관련 기사나 게시글에는 항상 2라는 숫자가 도배가 되는 게 암묵적인 룰로 자리 잡았다.

처음에 그를 비아냥거릴 목적으로 탄생한 콩과 2인자의 이미지는 곧 인터넷의 주요 밈으로 자리잡았다. 홍진호도 프로게이어 은퇴 후 자신을 놀리던 대중을 받아들이고 콩과 2인자 기믹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그는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며 예능인으로서의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유행에 민감한 광고 업계도 이를 놓치지 않았다. 초코바 ‘트윅스’를 생산하는 미국의 마즈(Mars)사는 트윅스 내용물이 2개라는 점에 착안해 2014년 홍진호를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 해당 광고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프로 게임 업계에서 나온 문화가 더 이상 그들만이 즐기는 서브컬쳐가 아니라 주요 문화로 올라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롯데제과 ‘월드콘’의 모델인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 (자료=롯데제과)


◇ ‘세체미’ 페이커 이상혁, 보수적인 제과 업계도 Pick

2010년으로 접어 들면서 게임 문화의 주도권은 스타크래프트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LoL, 롤)로 옮겨졌다. LoL은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북미, 남미, 유럽 등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기는 최고의 게임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LoL 세계 대회는 웬만한 스포츠 국제 대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지난 시즌 롤드컵 결승전은 동시 시청자 수가 4400만 명을 넘길 정도다. LoL 프로게이머 중 상위권에 안착한 선수들은 연간 수십 억원의 연봉을 기록하며 최고의 스타로 대우받고 있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프로게이머 구단 T1 소속의 이상혁이다. 이름보다는 ‘페이커’(Faker)라는 ID로 더 잘 알려졌다. 2013년 18세의 나이로 데뷔한 이상혁은 데뷔 이래 지금까지 LoL 최고의 선수로 꼽힌다. 비록 시즌마다 부침이 있지만 여전히 이상혁은 ‘세체미’(세계 최고의 미드 라이너)로 불린다. 이미 업계에서는 ‘살아 있는 전설’로 취급받으며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의 명성은 보수성으로 따지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식품 업계조차 움직였다. 롯데제과는 지난 5월 월드콘 모델로 이상혁을 발탁했다. 그간 월드콘과 월드컵의 발음이 유사해 축구 선수를 모델로 기용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롯데제과는 아이스크림 1위의 아성을 더욱 공고히 하고 젊은 층과의 교감을 강화하기 위해 페이커를 월드콘의 모델로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롯데제과는 e-스포츠 마케팅 강화 차원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 대회 후원사로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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