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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꾼 간송, 도봉산 자락 집 한 채로 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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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운 기자I 2015.09.15 06:16:10

서울 방학동 '간송 고택' 개관
전 재산 털어 문화재 수집한
간송 전형필 자취 남은 유일한 가옥
2012년 등록문화재 등재
7억원 들여 전면 재보수
시민문화공간으로 개방

서울 도봉구 방학동 ‘간송 고택’이 1년 6개월여의 전면 보수공사를 마치고 지난 11일 일반에 공개됐다. 간송 고택은 100여년 역사를 지닌 건축적 가치와 간송 전형필의 자취가 남아 있는 전통가옥으로 평가받아 2012년 등록문화재 제521호에 등재됐다(사진=김용운 기자).


생전의 간송 전형필(사진=간송미술문화재단)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이번 개관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속에서 우리 문화유산을 지켰던 간송의 삶과 정신을 기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11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 149-18. 인근 주민들이 도봉산 원통사로 가는 등산로 초입에 ‘간송 전형필 고택 개관 축하’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2013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보수정비공사를 시작한 간송 전형필(1906~1962) 고택이 1년 6개월간의 공사를 마치고 마침내 복원 첫 모습을 공개하는 날이었다.

간송은 ‘민족문화유산의 수호자’라는 말로도 모자랄 만큼 우리 민족의 문화재 보호에 획을 그은 위인이다. 1906년 서울 종로에서 중추원의관 전영기의 차남으로 출생한 간송은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30년 와세다대 법과대학을 졸업할 만큼 엘리트였다.

간송은 ‘10만 지기’ 대지주였던 가문의 부를 누리며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였던 춘곡 고희동의 소개로 만난 위창 오세창과 교유하며 문화재 수집에 뛰어든다.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위창은 간송에게 민족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평소 민족적 자긍심이 남달랐던 간송 역시 문화재 수집에 사명감을 느꼈다. 간송은 이후 집안의 전답을 팔아 대한제국 말기 혼란한 틈을 타 유출되던 문화재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간송이 수집한 대표적인 문화재로는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해 국보 제135호인 ‘혜원전신첩’ 및 국보제 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국보 제73호인 ‘금동삼존불감’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방학동의 간송 고택은 간송의 양아버지이자 큰아버지인 전명기 때 지은 전통 한옥으로 1890~1900년대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명기는 북한산과 도봉산, 창동 일대의 대규모 농장과 경기 북부, 황해도에서 오는 소출을 관리하기 위해 도봉산 자락 방학동에 한옥을 지었다. 간송은 전명기가 사망한 후 한옥 부근에 묘소를 세우고 제사가 있거나 양주군의 농장을 방문할 때 자주 이곳에 들렀다고 한다. 현재 간송의 자취가 남아 있는 가옥으로 유일한 곳이다.

간송 고택이 그간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데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대문과 담의 일부가 소실되는 등 피해를 입은 간송 고택은 휴전 이후 종로 4가의 본가와 보화각(성북동 간송미술관)의 피해 복구로 수리가 지연됐다. 그러다가 간송이 타계한 후 종로 4가의 본가가 매매되고 철거되면서 거기서부터 나온 자재를 활용해 1962~1963년에 부분적인 수리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후 간송 유족들이 간송 소장품에 대한 분류작업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재실로만 쓴 간송 고택에 대한 복원과 활용에 대해서는 적극 나서지를 못했던 것이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 ‘간송 고택’ 내부. 본채 규모는 93㎡(약 29평)다. 간송 고택은 100여년 역사를 지닌 건축적 가치와 간송의 자취가 남아 있는 전통 가옥으로 평가받아 2012년 등록문화재 제521호에 등재됐다(사진=김용운 기자).


2000년대 들어 간송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해지면서 방학동 간송 고택에 대해 눈을 돌리게 됐다. 마침내 2012년 12월 간송 고택은 100여년 역사를 지닌 전통 한옥으로서의 건축적 가치와 간송의 자취가 남아 있는 것을 평가받아 본채 1동, 협문 2개, 굴뚝, 담장 등 부속시설 1식이 등록문화재 제521호로 등재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도봉구와 간송미술재단이 협력해 문화재청으로부터 예산을 확보했고 주변 일대 공원화와 복원공사를 진행했다. 이번 복원에는 문화재청과 서울시 예산 7억원이 들었다.

간송 고택의 부지면적은 8036㎡(약 2431평), 본채는 93㎡(약 29평)다. 본채는 1900년대 지은 성북동의 이태준 가옥(현 수연산방)과 형태가 유사하다. ‘ㄱ’자형 고택은 창문에 창호지 대신 유리를 대었고 처마에는 양철수로를 달아 낙수가 한곳으로 떨어지도록 하는 등 근대 한옥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겉보기엔 넓지 않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짜임새가 있고 한옥 특유의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본채 뒷동산에는 전명기와 간송의 묘가 있다.

도봉구는 간송미술문화재단과 협력해 지역주민과 시민을 위한 열린 문화공간으로 간송 고택을 개방할 계획이다. 문화재청 문화유산 체험교육 프로그램인 ‘생생문화재 사업’ ‘도봉 역사문화 탐방길’ 등을 마련했다. 간송의 장손자인 전인건 간송미술문화재단 사무국장은 “간송 고택을 한국전쟁 이전의 원형대로 복원해 굉장히 기쁘다”며 “앞으로 간송의 문화적 자긍심을 되새기고 시민들이 재충전할 수 있는 문화명소로 재탄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긴송 고택과 간송의 장손자인 전인건 간송미술문화재단 사무국장(사진=김용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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