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기후부 장관-경기 하남 주민들 2차 간담회
주거밀집지역에 ‘50만볼트 변환소 첫 신설’ 쟁점
정부·한전 “에너지고속도로 0순위 국정과제 추진”
주민 “아이들 1만명 사는 곳, 사람 우선 정책 필요”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정부와 경기도 하남시 주민들이 만나 동서울변전소 증설 갈등의 대책을 논한다. 정부는 국정과제 ‘에너지 고속도로’(전력망 건설 국책사업)의 0순위 단계인 동서울변전소 증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4만명이 거주하는 주거밀집지역에 초고압 설비 설치에 반대하며 대체 부지를 요구하고 있어 중재안이나 대안이 모색될지 주목된다.
13일 이데일리 취재 결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시 서초구 한강홍수통제소에서 감일동 주민 등이 포함된 ‘동서울변전소 증설반대 5자협의체’와 비공개 2차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이현재 하남시장을 비롯해 한국전력(015760) 임원도 참석한다.
 | |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1일 기자간담회에서 경기도 하남시 감일동에 위치한 동서울변전소에 변환소를 신설하는 공사를 추진할 것임을 예고했다.(사진=기후에너지환경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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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김성환 장관은 지난달 22일 하남시 감일동을 방문해 ‘동서울변전소 증설반대 5자협의체’와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동서울변전소 증설 논란이 지난해 여름에 본격적으로 불거진 이후 소관 부처 장관이 감일동 현장을 찾아 대화에 나선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당시 간담회에는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 하남갑 의원)도 참석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동서울변전소 증설 사업은 한전이 추진 중인 국책사업이다. 공식 사업명은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및 초고압직류송전(HVDC)변환소 증설’ 사업(한전 100%·송전선로 비용 포함하지 않은 총사업비 6996억원)이다. 이는 기존 변전소(345kV)를 실내에 설치하는 옥내화 공사와 함께 초고압 설비인 50만볼트(500kV) 변환소를 신설하는 것이다. 500kV 변환소가 주거밀집지역에 설치되는 것은 전국 최초다.
 | | 한전은 당초 2026년까지 변환소 증설을 종료하기로 했으나 공사가 지연되면서 완공 시기를 2027년 12월로 수정했다. 변환소는 직류로 오는 전기를 교류로 변환하는 곳이다. 에너지 고속도로를 타고 오는 전기가 통과하는 톨게이트 같은 곳으로 중요 전력 시설이다. 밀양 송전탑 시위 이후로 765kV 전력망 건설 계획은 백지화 됐다. 500kV 설치 계획이 현재 가장 높은 전압 수준이다.(자료=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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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쟁점 사안인 ‘500kV 변환소’는 총길이 280km 동해안~수도권 HVDC 송전선로의 2단계 종착지다. 경기도 하남시 감일동 동서울변전소의 변환소 신설과 관련한 동서울·수도권 송전선로는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고속도로’ 국정과제 순위에서 가장 이른 ‘0단계’로 표시돼 있다. 엔비디아 젠슨 황 CEO의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대 우선 공급 약속, 인공지능(AI) 시대 수도권 전력 수요 증가와 맞물려 전력망 신설이 시급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정부는 지난 10월2일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제1차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위원회를 열고 전국 99개의 송전선로와 변전소 구축 사업이 국가기간 전력망 설비로 지정했다. 하남시 감일동의 동서울변전소도 이같은 패스트트랙에 지정·포함됐다. 이는 지난달 5일 관보에 게재됐다.
전력망 특별법에 따르면 앞으로는 전력망 구축을 위해 지자체로부터 받아야 하는 인허가는 지자체가 60일 내 허가 여부를 회신하지 않으면 허가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지정고시대로 추진될 경우 60일 이후인 내달 5일 이후 동서울변전소 증설이 강행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참조 이데일리 11월9일자 <“아이들은 ‘전력망 마루타’ 아닙니다”…추미애 하남 무슨 일?>)
 | | 변환소 신설 예정 부지(사진 오른쪽)와 제일 가까운 아파트 단지(한라비발디 2차) 간 이격거리가 직선거리로 150m에 불과했다. (사진=최훈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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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장관은 주민들과의 첫 간담회에서 “(대체 부지 등) 다른 대안이 있는지 살펴보겠다”며 “갈등위원회 등 다른 중재위원회를 만들 수 있는지 여부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열흘 뒤인 지난 1일 김 장관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재검토를 발언한 적은 없다”며 “향후 절차도 전력망 특별법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참조 11월23일자 <정부, 동서울변전소 재검토 시사…김성환 장관 “대안 살펴보겠다”>, 12월2일자 <김성환 장관 “하남 변환소 신설”…주민 반발 “국가폭력”>)
한전은 시급히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수도권 전력 수급을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는 국책사업으로서 명분이 있으며, 전원개발촉진법(전원법)에 따라 위법한 절차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대체 부지 추진을 하면 새로운 송전망을 깔아야 해 공사비 부담, 실시계획 수립 등 각종 절차로 인한 시간 지연, 부지 협소, 추가 민원이 우려된다며 기존 부지를 증설하는 방식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관련해 하남시 정치권과 주민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추미애 위원장은 지난달 간담회 직후 이데일리와 만나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추진해 절차상 문제가 많은 점, 전국 최초로 주거밀집지역에 전자파 우려가 심한 초고압 전력 설비를 설치하는 문제, 과거 개발 독재 밀어붙이기식 강행하는 문제 등을 공유했다”며 “지금도 충분히 대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만나 소통하면서 증설 반대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 |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한 엄마가 지난달 22일 감일동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감일동은 영유아, 청소년, 다자녀, 신혼부부 등이 주로 사는 4만명(1만4000가구) 주거밀집지역이다. (사진=최훈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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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동서울변전소 증설 관련 △지정고시 해제(철회) △부지 이전 등을 대안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은경 동서울전력소 증설반대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김 장관이 ‘초고압 설비인 50만볼트 변환소가 전국 최초로 주거밀집지역인 하남 감일동에 설치된다’는 사실을 지난달 첫 간담회에서 처음으로 인지했다”며 “주민들과 소통하기로 한 상황에서 지정고시대로 강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규석 동서울전력소 증설반대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변환소가 신설되는 부지에서 가장 가까운 아파트 단지는 노약자, 장애인 등 초고압 시설에 취약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라며 “이런 상황에서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국가폭력이자 해도 해도 너무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4만명이 사는 감일단지는 2010년대 신혼부부 보금자리주택으로 추진됐기 때문에 지금은 아이들이 1만명이나 살고 있는 곳”이라며 “취임 첫 날에 ‘함께 사는 세상, 국민이 주인이고 행복한 나라를 국민과 함께 만들겠다’고 했던 이 대통령의 말씀처럼, 인권과 사람을 우선하는 정책을 생각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