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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친척보다 이웃이 낫다…초고령사회 돌봄의 미래[상속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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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원 기자I 2025.12.07 09:12:34

조용주 변호사의 상속 비법(91)
전문가 후견 넘어 ''이웃 후견인'' 시대 온다
고립 완화·비용 절감·공동체 회복 ''일석삼조''
교육·감독·책임 체계 갖춰야 안전하게 작동

[조용주 법무법인 안다 대표변호사·안다상속연구소장]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은 다양한 돌봄 체계를 요구받고 있다. 가족 중심의 부양 구조는 이미 빠르게 약화되고 있고, 1인 가구와 무연고 노인의 증가는 후견 제도의 적용 대상을 급격히 확대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는 일본의 시민후견제(市民後見制度)라는 제도를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앞으로 우리 사회는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 노인들을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일본에서 시민후견이 실제로 적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상황은, 치매 초기 단계의 독거노인, 발달장애 성인, 지적장애를 가진 고령자, 혼자 살다 건강 악화로 시설 입소가 필요한 노인 등이다. 이들은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있더라도 실질적인 돌봄을 제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전문가 후견을 의뢰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후견인은 가까운 곳에 사는 지역 주민으로서 병원 진료에 동행하여 의료 동의 절차를 돕고, 요양시설 입·퇴소 계약에 참여하며, 기초생활수급·돌봄서비스 신청을 대리한다. 때로는 금융기관을 방문하여 생활비 인출을 도와 전기료 등 필수 비용을 납부하도록 돕고, 노인들이 살고 있는 주거도 정비하고, 필요한 행정절차가 있다면 이를 도와준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즉시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믿고 맡길 수 있다.

다른 후견인들과 다른 것은 시민후견인이 재산 관리에 집중하기보다는 생활밀착형 보호자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전문가인 변호사나 법무사는 법률·재무 중심의 업무를 맡고, 가족인 후견인은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을지 신상에 관하여 결정하지만, 시민후견인은 일상의 의사결정과 정서적 돌봄을 맡는다. 이로써 일본에서는 “먼 친척보다 옆집 이웃이 낫다”는 말이 실제 제도로 구현되고 있다. 아직 일본도 시민후견제가 잘 정착된 것은 아니지만, 이웃을 후견인으로 한다는 참신한 제도를 도입한 것은 그만큼 가까운 곳의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우리 나라가 시민후견제를 도입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효과를 몇 가지 제시할 수 있다. 첫째, 고령자의 사회적 고립을 근본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 현재 전문후견인 제도만으로는 피후견인의 정서 돌봄까지 충족시키기 어렵다. 반면에 시민후견인은 주기적 방문과 동행을 통해 실질적 관계 돌봄을 가능하게 한다. 둘째, 후견 서비스의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법률 전문가 중심 구조에서는 비용 장벽이 높다. 시민후견제는 무연고·저소득 노인들도 실질적으로 후견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한다. 셋째, 지역 공동체 회복의 계기가 된다. 돌봄이 제도 서비스가 아니라, 시민 참여 기반의 공공 활동으로 전환됨으로써 돌봄이 다시 마을의 역할로 돌아온다. 대가족의 장점이었던 것들이 사라졌는데 시민후견제는 이를 부활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시민후견제는 준비되지 않은 채 도입해서는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전제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선 시민후견인에 대한 철저한 교육·검증 시스템의 구축되어야 한다. 일본은 시민후견인이 되기 위해 수십 시간 이상의 법률·의료·복지 교육을 이수하게 하고, 자격 심사를 거쳐 단계적으로 업무를 제한한다. 우리도 도입한다면 시민후견인에 대하여 표준 교육과 자격 인증제, 지속적인 평가와 재교육 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공공의 감독과 지원 구조 확립이다. 시민후견인의 활동은 법원 단독 감시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자체와 사회복지기관, 지역 네트워크가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형성하고, 위법·부적절 행위 발생 시 신속한 교체와 징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시민후견인들이 함부로 잘못된 행동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 다음으로 시민후견인의 법적 책임 구조와 안전망 정비이다. 시민후견인의 책임 범위와 국가 보장 한계를 명확히 하고, 사고 발생 시 피해 회복을 위한 보험 제도와 국가 배상 시스템이 준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 돌봄 인프라 복원이다. 시민후견제는 단독 제도가 아니라 지역 복지관, 주민센터, 사회복지협의회, 의료기관 등이 촘촘히 연결된 지역 시스템 속에서만 작동한다. 후견인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돌봄 네트워크의 한 축이 되어야 한다.

시민후견제는 단순한 후견 제도의 확장이 아니다. 이것은 초고령사회가 스스로를 지탱하는 방식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다. 가족도 국가도 단독으로 감당할 수 없는 돌봄의 영역을, 시민 공동체의 참여로 메워 나가는 모델이다.

“먼 친척보다 이웃이 낫다”는 말은 옛말이 아니다. 그것은 돌봄의 현장에서 이미 검증된 실천의 지혜다. 우리 사회도 이제 개인의 노후를 개인에게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이웃과 지역, 시민이 함께 책임지는 새로운 돌봄 체계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이 시민후견제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조용주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사법연수원 26기 △대전지법·인천지법·서울남부지법 판사 △대한변협 인가 부동산법·조세법 전문변호사 △안다상속연구소장 △법무법인 안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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