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공동묘지에서 역사·문화공간으로 재탄생…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서울 곳곳]

함지현 기자I 2024.08.08 05:40:00

만해 한용운, 유관순 열사 합동묘 등 근현대사 묘역 모여있어
과거 망우리 공동묘지 이미지→역사문화공원으로 변화
시민들도 자주 찾는 공간으로 변모…"너무 달라져 깜짝 놀라"

[이데일리 함지현 기자]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관순열사 분묘 합장 표시비. (사진=함지현 기자)
◇망우리 공동묘지에서 독립운동가 얼 기리는 ‘역사문화공원’으로

7일 서울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을 찾았다. 전시관을 지나 도보로 5분가량 오르니 사람 키보다 살짝 큰 태극기 옆에 놓인 비석에 3.1 운동의 상징인 유관순 열사의 유언이 새겨 있다. 이를 지나 초등학생들의 고사리손으로 적은 편지가 두루 달린 덱 길을 조금 걸어 들어가면 유관순 열사의 묘역을 찾을 수 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 뒤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됐으나 1936년 일제의 택지개발로 이태원 공동묘지가 없어지면서 무연분묘를 화장해 당시 망우리 공동묘지로 이장하고 합장비를 세웠다. ‘이태원 공동묘지 무연분묘 합장’이라고 적힌 이유는 유관순 열사뿐 아니라 당시 함께 묻혀 있던 연고가 없는 묘들을 합장한 곳이라는 뜻이다.

2018년이 돼서야 망우리 공원 내에 유관순 열사 분묘합장 표지비를 건립했다. 공동묘지의 이미지가 강했던 이전에는 이곳에 유관순 열사가 묻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공원으로 거듭나면서 산책하러 오는 누구나 가볍게 들를 수 있게 됐다. 원한다면 유관순 열사의 묘역과 같은 숨겨진 얘기를 무료로 들을 수 있는 해설 서비스도 제공한다.

오랫동안 공동묘지로 사용됐던 망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얼을 기리기 위한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독립운동가·문화예술·사회인사 등 80여 기의 묘역이 있다. 한용운, 방정환, 오기만, 문일평, 오세창, 유상규, 오재영, 서동일, 서광조 등 9기의 묘역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밖에 176만 2000㎡에 달하는 면적에 총 6500기에 가까운 분묘가 자리잡고 있다.

망우역사문화공원 중랑망우공간(사진=중랑구청)
◇전문가 해설 들으며 탐방하고 문화행사도 즐길 수 있어

그러나 묘지라는 느낌보다는 초록의 공원의 모습으로 거듭난듯 했다. 초입에는 정재헌 경희대 교수가 설계한 ‘중랑망우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22년 서울시 건축상 완공 부문에서 2관왕을 차지한 건물은 노출콘크리트 기법으로 화려함을 배제했다. 건물 옥상부터 오르막길 끄트머리까지 완만하게 이어지는 120m의 직진 덱은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신성하고 정적인 공간을 표현하고 있다. 1층에는 작은 연못처럼 물이 흐르는데 천장 없이 하늘을 직접 맞이한다.

중랑망우공간은 크게 관리동과 전시동의 두 건물로 이뤄져 있다. 관리동은 망우역사문화공원의 묘역 관리와 추모식 등을 진행하며, 전시동에서는 망우리에 잠든 문인들의 작품 등을 전시한다. 1층에는 망우동 주민 조합이 운영하는 카페도 있어 목을 축일 수도 있다.

탐방 코스도 4가지로 다양하다. 전문가의 해설을 들으면서 천천히는 3시간, 빠르면 1시간 동안 원하는 곳을 둘러볼 수 있다. 산책을 위해 찾는 이들도 있다. 평소 붐비는 곳은 아니지만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나 산에 오르기 가을철이면 사람들이 더욱 많이 찾는 편이다.

순환도로 개선, LED 공원등 설치, 중랑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중랑전망대 경관 개선, 진입로 경관 및 중랑망우공간 도로 정비 등 시설개선도 꾸준히 추진했다. 망우역사문화공원 안전보행로 조성, 유명인사 인물가벽 리모델링 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양원역을 오가는 무료 순환셔틀버스도 운행해 접근성도 높였다. 8.15 광복절 기념 한여름밤 음악회와 같은 문화행사도 다양하게 실시한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은 주민소통, 주민 체감도, 확산 가능성 등을 높게 평가받아 ‘2024년 매니페스토’ 지역문화활성화 분야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관광객들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한 50대 남성은 “부모님 묘지가 있어 1~2년에 한 번씩 들르는 곳”이라며 “공원이 몇 년전과 너무 달라져 있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또 다른 40대 여성은 “집 근처 산이라 산책하러 가끔 온다”며 “전에는 묘지 관리사무소밖에 없었는데 카페랑 전시실 등이 생겨서 너무 좋아졌다”고 했다.

중랑구 관계자는 “망우역사문화공원은 중랑구를 넘어 서울시, 대한민국의 보물이다. 온 국민이 같이 공유하고 공감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큰 보람”이라며 “망우역사문화공원을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곳이자 세계적인 유명 인사 묘역에 버금가는 근현대사 박물관으로 키워가겠다”고 말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