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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한광범 기자]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에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됐던 이시영 전 부장검사를 내정하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피해자인 유우성씨 측은 이 내정자에 대한 철회를 요청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은 검찰과 국가정보원의 대표적인 흑역사 사건 중 하나다. 수사단계에서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는 물론 공소유지에서의 증거조작 등이 조직적으로 이뤄진 수사권 남용의 대표적 사례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부부장 검사로서 당시 이문성 검사(현 변호사)와 함께 수사와 공소유지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국정원은 2012년 북한에서 넘어와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유우성씨에 대해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겼단 혐의가 있다며 수사에 나섰고, 검찰은 2013년 1월 유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과 국정원은 유씨에 대해 ‘보위부 직파 간첩’이라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당시 검찰과 국정원이 핵심 증거로 내세운 것은 유씨 동생 유가려씨의 국정원 조사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재북화교였던 유우성씨는 2004년 화교 신분을 밝히지 않고 탈북자 신분으로 한국에 입국했던 상태였고, 유가려씨는 2012년 10월 제주도에 무사증 입국한 후 귀순을 신청한 상태였다. 국정원은 유가려씨에 대한 신원확인 절차를 통해 2012년 11월 유씨 남매가 탈북자가 아닌 재북 화교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울러 유씨 남매에 대해 간첩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
◇李내정자, 국정원 불법감금·증거조작도 적발 못해
국정원은 중앙합동신문센터에 유가려씨를 6개월 동안 불법감금한 채 유우성씨에 대한 간첩 혐의 관련 증언을 받아냈다. 유가려씨가 탈북자가 아닌 재북화교로 드러난 이상 북한이탈주민법에 따른 합신센터 임시보호조치는 불가능했지만 국정원은 유가려씨를 합신센터에 지속적으로 수용했다. 아울러 외부와의 접촉도 차단하며 변호인 접견도 막았다.
유씨 변호인 측은 이 같은 상황을 파악해 2013년 2월부터 유가려씨에 대한 접견을 신청했으나 국정원은 유가려씨로부터 “변호인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진술서 제출을 요구해 이를 근거로 접견불허 결정했다. 아울러 임의적으로 “유가려씨가 참고인 신분이라 변호인 접견 대상이 아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유가려씨는 6개월가량이나 구금된 후인 2013년 4월에야 합신센터를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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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려씨는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을 뒤집었다. 1심은 유가려씨의 수사기관 조사가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은 만큼 원천무효라고 판단하는 동시에, 유가려씨의 수사기관 진술 자체로도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해 유우성씨에 대해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증거조작은 1심 무죄 선고 후 본격화했다. 국정원은 핵심 증거로 내세웠던 유가려씨 진술이 법정에서 인정되지 않자 추가 증거 수집에 열을 올렸다. 검찰은 항소심 공판에서 국정원이 확보한 중국 허룽시 공안국 명의 유우성씨의 ‘북한-중국 출입경기록’을 추가 증거로 제출했다.
유씨가 알려진 것보다 여러 차례 북한을 출입했다는 것을 증명해 그가 북한 보위부에 포섭됐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해당 서류는 위조된 것이었다. 국정원 대공수사처 소속 직원이 2013년 9월 조선족 협조자를 종용해 만든 위조문서인 것이다.
검찰이 해당 문서 진위 파악을 위해 주선양영사관을 통해 허룽시 공안국에 출입경기록 발급 사실을 조회하자, 국정원은 같은 해 11월 허룽시 명의 사실확인서도 위조했다. 변호인이 싼허변방검사창 명의의 정황설명 확인서를 제출하자 국정원은 또다시 ‘변호인 확인서가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의 중국 당국 위조 문서를 또다시 만들었다. 문서는 이 같은 방식으로 이후에도 지속됐다.
◇위조 증거 서류, 검찰 아닌 법원 통해 적발
이 같은 문서위조를 이 내정자 등 담당 검사들은 전혀 파악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결국 법원에 의해 발각됐다. 항소심 재판부가 2013년 12월 주한중국대사관에 직접 제출된 문서들에 대한 진위 판단을 요청했고 2014년 2월 “해당 문서는 위조된 것”이라는 회신이 온 것. 유씨는 2심과 대법원에서 연이어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증거조작이 밝혀지 이후 서울중앙지검에 진상조사팀을 꾸리고 수사에 착수해 당시 주선양대한민국총영사관 등 국정원 직원 4명과 협조자 1명을 재판에 넘겼다. 국정원 직원들 변호인은 법정에서 “검사가 증거 제출의 최종 책임자였다”고 주장했다.
‘당시 검사들이 국정원 증거조작을 몰랐을리 없다’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이 내정자 등 담당 검사들은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고 징계처분만 받았다. 이 내정자 대한 징계는 정직 1개월에 불과했다. 당시에도 검찰이 국정원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식의 제식구 감싸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셌다.
이 내정자는 징계 이후 대구고검으로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여기서 당시 국정원 댓글 공작 관련한 수사로 좌천성 인사를 당했던 윤 당선인과 함께 근무했다. 이번 인선의 배경으로는 당시 근무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았다면 간첩조작 공범이지만, 검찰 결론대로라도 간첩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리며 철저히 무능했던 것”이라면서 “이런 인물이 무슨 대통령 주변의 공직기강을 세우겠느냐”고 반문했다.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인 유우성씨도 “임명을 철회해야 한다”며 “사건의 책임자로서 정직처분까지 받았던 검사를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임명한 것이 당선인이 내세우는 ‘공정과 상식’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외부의 반발도 이어졌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고문경찰 이근안을 인권위원장에 앉히는 것과 같다”고 맹비난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간첩조작 사건은 한 개인에 대한 국가의 폭력”이라며 “거기 연루된 이를 기용한다는 것은 대국민 선전포고”라고 거세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