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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의무 모호하고 전담조직 역할도 불분명…중대재해법 시행 앞둔 기업들은 혼란

최정훈 기자I 2022.01.20 05:30:00

[전문가와 함께 쓰는 스페셜리포트]중대재해처벌법②
사업장 안전 확보 범위, 안전 예산 규모 모호해
안전조직 있어도 또 필요한 전담조직…역할 혼란
하청업체 ‘안전소홀’까지 평가…협업 관계 하청과 결별 어려움

18일 오후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에서 기울어진 타워크레인의 해체에 앞서 쇠줄로 안전성을 보강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중대재해대응센터장]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과 경영책임자에게 ‘안전 보건 확보의무’를 부여하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영책임자와 기업을 처벌하는 법이다.

그러니 건설사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기업들은 평소에 안전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하는데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이 상당히 모호하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은 기업들에게 최저 수준의 안전 관리를 요구하는 반면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에 자율적으로 적절히 대응하도록 하면서도 사고 발생 시 엄중 처벌을 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혼란이 크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문제점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봤다.

법무법인 세종 김동욱 중대재해대응센터장. 사진=법무법인 세종.
◇ 사업장 안전 확보 범위, 안전 예산 규모 모호해

기업들이 중대재해처벌법을 대응하는 방안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업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장벽은 어느 사업장까지 안전 확보 의무가 생기느냐다. 자회사가 관리하는 건설현장까지인지, 협력업체가 관리하는 건설현장까지인지 그 구분 자체가 모호하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기업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안전 확보 의무가 생긴다고 돼 있지만, 이는 관련 부처별로 해석이 다르다.

고용노동부는 ‘사업 또는 사업장’을 기업 그 자체로 보면서 하나의 기업이 다른 기업의 조직, 인력, 예산 등에 대한 결정을 총괄 행사하는 경우, 즉 다른 기업 조직을 통제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반면 국토교통부, 환경부, 소방청이 발표한 중대시민재해 해설서는 이를 특정 장소를 통제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어 차이를 보인다.

안전 보건 확보 의무는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일까. 이는 예산을 투입하여 인력과 조직을 만들고 그 조직으로 하여금 매뉴얼 작성, 안전보건 활동, 경영책임자에 대한 보고 등을 하게 하고, 보고를 받은 경영책임자는 미비한 점을 개선하는 활동으로 요약된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예산이다.

정확하게 예산의 규모를 얼마로 측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다. 해설서에 따르면 정부는 예산의 규모보다 예산이 편성되는 과정을 중시하겠다는 의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산 편성 과정 이행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현업 단위에서 안전보건에 필요한 다양한 예산 수요를 본사에 올리고 본사의 안전보건 전담조직에서 이런 수요를 검토해 반영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사업장이 많은 대기업일수록 이러한 방식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경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일주일 앞으로 닥친 현 시점에선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기업들은 궁여지책으로 안전보건비가 부족한 상황을 막기 위해 예비비를 편성하는 방식으로 타협안을 마련하고 있다.

◇ 안전조직 있어도 또 필요한 전담조직…역할 혼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은 전사 단위의 안전보건 전담조직을 구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정부는 이미 사업장 단위로 안전보건관리책임자,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 등 안전보건조직을 평가하고 있는데 이를 전사 단위로 확대하길 원하고 있다. 기존 사업장 단위의 안전보건조직이 있는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은 전사 단위의 안전보건 전담조직 신설을 요구하고 있어 기업 입장에선 그 구성과 역할에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법령에선 전사 단위의 안전보건 전담조직의 인력과 기존 사업장의 안전보건 조직 인력이 겸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근거가 없는데 고용노동부 해설서에선 안전보건 전담조직을 별도의 인력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전담조직을 판단하는 기준은 실질적으로 전사(全社)적인 안전보건활동을 하는 조직인지 여부다. 인력 구성이 별도여야 하는지, 겸임해도 되는지 등 조직의 형식을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그 조직이 실질적으로 전사적인 안전보건 활동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51개 기업 대상 설문조사한 차기 정부의 노동 관련 법·제도 개선 과제(자료=한국경영자총협회)
◇ 협력업체 ‘안전소홀’까지 평가…협업 관계와 결별 어려워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에선 하도급 계약을 맺는 협력업체의 안전 관리까지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기업에 상당한 부담이란 지적이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은 기업이 제 3자에게 업무를 위탁하는 경우 협력업체의 산재예방 조치능력, 안전·보건 관리비용 기준, 건설업의 공사기간과 조선업의 건조기간에 관한 기준·절차 마련 및 준수 여부 등을 반기 1회 이상 점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협력업체의 안전 관리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평가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러한 기준에 미달할 경우 아예 하도급 계약을 하지 말도록 하고 있다. 부적격 협력업체와 계약을 맺었다가 협력업체가 재해를 발생시킬 경우 도급업체 또한 형사책임을 질 수 있다는 취지로도 해석된다.

이에 많은 기업이 하도급비 상승, 하도급 업체 선정의 어려움, 오랫동안 협업 관계에 있었던 수급인들과의 결별 등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다만 안전 관리에 소홀하거나 기술이 떨어지는 하도급 업체를 선정했다는 이유만으로 중대재해 책임을 도급업체에게 귀속시킨다고 해석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해당 의무는 협력업체 종사자들의 안전 보건을 등한시하지 말고 관심을 기울이라는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기업들은 현실적인 고민과 함께 실질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이며 정부는 기업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을 통해 과도한 처벌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중대재해대응센터장 약력

△홍익대 사범대 부속고 △고려대 법학과 학사 △고려대 법학과 석사 △사시 46회 △고용노동부 노사관계법제과 서기관 △중앙노동위원회 소속 판례 분석 총괄 변호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고용노동부 자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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