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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경보기 설치규정도, 안전점검도 없었다…강릉참사 `완벽한 사각지대`

송이라 기자I 2018.12.19 17:12:30

가스보일러 사고, 일반사고보다 사망률 6배↑…드물지만 치명적
일산화탄소 경보기 설치기준 無…안전점검 '무용지물'
농식품부, 뒤늦게 대책 내놔…"범부처 맞대 효율적 방법 찾아야"

19일 오전 강원 강릉시 경포 아라레이크 펜션이 이틀째 통제되고 있다. 이 펜션에서는 전날 수능시험을 끝낸 서울 대성고 3학년 남학생 10명 중 3명이 숨지고 7명이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수능시험을 마치고 강릉으로 추억여행을 떠난 고3 학생 10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추정되는 참변을 당한 가운데 강릉 펜션의 가스보일러에는 일산화탄소 감지기가 설치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1만원대의 저렴한 감지기만 달려 있었어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완벽한 인재(人災)였지만 국내 법 어디에도 감지기 설치 기준과 법령은 없었다. 뒤늦게 농림축산식품부는 가스시설 등 민박시설 안전관리에 관한 제도적 미비점을 검토하고 일산화탄소 감지기 설치도 시설기준에 포함키로 했다.

전문가들은 도시가스가 보편화된 이후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는 현저히 줄었지만 일단 발생하면 치명적인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연통 불량·감지기 없어

경찰은 지난 18일 강릉의 한 펜션에서 단체로 숙박을 하던 중 숨진 고등학교 3학년 학생 3명의 사망 원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확인됐다고 19일 밝혔다.

이날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가스안전공사 등과 합동으로 시행한 1차 현장 감식 결과 학생들이 묵었던 강릉 펜션 내 LPG보일러와 배기구인 연통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어긋난 사이로 다량의 연기가 새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지난 18일 사고 직후 소방당국이 측정한 현장의 일산화탄소 농도는 150~159ppm으로 정상수치대비 8배 가까이 높았다. 경찰 관계자는 “연소 시험을 몇 차례 더 할 것”이라며 “시험 과정에서 발생한 연기 성분 등을 정밀 분석하는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원인을 조사중”이라고 말했다.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일산화탄소는 무색ㆍ무취로 사람이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겨울철 살인자라고 불릴 만큼 인체에 치명적이다. 일반적으로 일산화탄소 농도가 200ppm을 넘어가면 2~3시간 안에 가벼운 두통이 일어나고 800ppm 이상일 때는 2시간 안에 실신한다. 1600ppm을 넘어가는 순간에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농도가 1만2800ppm까지 치솟을 때에는 1~3분 내에도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장에는 일산화탄소 감지기가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누구나 쉽게 구매해 설치 가능하지만 감지기 설치는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일산화탄소(CO) 중독 보일러사고 VS 폭발, 화재 등 보일러사고 현황(단위=건, 명 표=2017 가스사고연감)
◇가스보일러 사고 사망률, 전체 가스사고 6배…안전점검 ‘무용지물’

과거 연탄가스 중독이라 불리던 일산화탄소 중독사고는 도시가스가 널리 보급되면서 현저히 줄었다. 가스사고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가스보일러로 인한 사고는 전체 가스사고(고압가스 제외)의 4.5%로 미미한 수준이다. 가스보일러 사고 10건 중 7건 이상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고건수는 2015년 6건, 2016년 7건, 2017년 9건이다. 전체 가스사고 중 가장 낮은 수준의 빈도다.

문제는 아무리 드물게 발생해도 한 번 발생하면 바로 인명피해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실제 최근 5년간 일산화탄소 중독 보일러사고로 14명이 사망한 반면 폭발이나 화재에 따른 보일러사고 사망자는 1명에 그쳤다. 가스안전공사 관계자는 “가스보일러 사고는 전체 사고에 비해 사망률이 6.1배 정도로 높아 심각한 위험성을 보인다”며 “특히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는 폭발이나 화재 등 다른 형태의 사고보다 인명피해율이 높아 특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이유로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는 주택에 일산화탄소 경보기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주택 등 실내에 일산화탄소 경보기 설치의무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만이 지난 9월 야영시설에 일산화탄소 경보기를 설치하도록 관련 법규를 마련했을 뿐이다.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펜션은 농어촌민박으로 등록돼 지방자치단체에서 소방관련 안전점검을 실시하지만 점검대상에 가스 안전은 없다. 가스는 지자체가 아닌 공급자가 별도로 하게 돼있기 때문이다. 대형 도시가스업체들이 점검하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과는 달리 LPG보일러를 사용하는 개별 펜션은 이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재난총괄인 행정안전부, 가스안전 담당 산업통상자원부, 농어촌민박시설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 누구도 `내 일`이라고 선뜻 나서지 않다가 이날 오후 늦게서야 농식품부가 대책을 내놨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가스시설 등 민박시설 안전관리 등에 관한 제도적 미비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제도개선을 할 계획”이라며 “특히 일산화탄소 감지기 설치를 시설기준에 포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산화탄소(CO)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표=2017 가스사고연감)
◇“경보기 설치 의무화해야…소방점검대상 적용 효과적”

전문가들은 일산화탄소 감지기 비용이 개당 1만5000원 정도로 큰 비용이 들지 않는 만큼 설치를 의무화해야한다고 조언한다. 가스안전도 소방점검대상에 포함해 지자체 점검시 같이 이뤄지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이다.

윤명오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공동주택은 과거 중앙집중형 난방방식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엔 세대별 난방으로 분리하는 추세라 가스 경보기에 대한 필요성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며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가 드물게 일어나지만 인명사고로 직결되는 만큼 큰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감지기 부착을 의무화하는게 맞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주무부처가 여럿인데다 관련 법이 없어서 애매한 측면이 있는데 소방법 적용대상에 포함해 지자체 점검시 가스 안전도 같이 이뤄지도록 하는 편이 효율적일 수 있다”며 “부처간 영역을 나누고 밥그릇 싸움이나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기보다는 범부처간 가장 효율적 방법이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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