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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돈 유치·로고 표절·방사능 논란에 '여혐 발언'까지…위태로운 도쿄올림픽

김보겸 기자I 2021.02.10 15:52:46

"여성이 많으면 회의 길어져" 모리 발언 후폭풍
IOC 화들짝…기존 입장 뒤집고 "완전 부적절"
자민당 지도부, 전직 총리 모리 감싸기

모리 요시로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회장(사진=AFP)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코로나 국면에서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려는 일본의 야망이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다.”

개막이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도쿄올림픽을 두고 블룸버그통신은 9일(현지시간) 이렇게 평가했다. “여성이 많으면 회의가 길어진다”는 83세 모리 요시로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회장 발언의 후폭풍이 거세지면서다.

모리 발언 이후 각계에서 성토가 이어졌다. 시작은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자원봉사자 8만여명 중 390여명이 항의 표시로 봉사활동을 그만뒀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에는 항의 전화와 이메일이 빗발쳤다. 이에 조직위는 오는 12일 합동 회의를 열고 모리 발언에 대한 대응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성명을 내고 “모리 발언은 완전히 부적절하고 올림픽 개혁에 반한다”고 했다. 앞서 모리가 사과했으니 끝난 문제라던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이다.

광고주들 한숨도 커지고 있다. 도쿄올림픽 후원에 220억엔을 내놓았지만 광고 기회를 잡지 못한 후원자들은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코로나로 타격을 입은 와중에 올림픽 광고효과로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려 했지만 모리 발언에 물거품이 됐다는 분노다.

아사히맥주는 “모리 발언은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올림픽·패럴림픽 정신에 비추어 잘못된 표현이며 불행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일본생명도 “극히 유감”이라며 “여성 비하 발언으로 읽힌다”고 전했다.

도쿄올림픽 후원사 중 한 곳인 마이니치신문도 나섰다. 신문은 “사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올림픽 헌장은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한다. 이에 반하는 사람이 최고 자리에 있어선 안 된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지난주 마이니치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60%가 “모리가 조직위 회장에 부적합하다”고 답했다.

다만 정치권 속내는 복잡하다. 도쿄올림픽을 일본 경제 부흥의 계기로 삼으려는 일본 정부는 일을 크게 벌리지 않으려는 입장이다.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은 “(발언을) 철회했으니 그것으로 된 건 아닌가”라며 문제의 발언을 덮어두면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 역시 “모리의 발언은 국익에 맞지 않다”면서도 “처분은 조직위에 달려 있다”며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모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속한 자민당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를 이끌던 전직 총리 출신이다. 자민당 지도부가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선 모양새다.

벨기에 그래픽 디자이너가 제작한 극장 로고(왼쪽) 표절 논란이 제기된 도쿄올림픽 엠블럼(오른쪽)
모리 발언은 안 그래도 불투명한 도쿄올림픽의 미래에 재를 뿌리는 격이다. 코로나 팬데믹 선언 이전부터 도쿄올림픽에는 숱한 논란이 제기돼왔다. 도쿄에서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뇌물을 썼다는 의혹부터 원전 사고가 터진 후쿠시마에서의 성화 봉송으로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2015년에는 벨기에 디자이너의 극장 로고를 표절했다는 논란에 공식 엠블럼 디자인을 바꾸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도쿄올림픽을 두고 “팬데믹 이전부터 터져나온 문제들로 19세기 올림픽이 부활한 후 최초로 연기된 사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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