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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K워치] 통째로 지워진 문장‥"인상도 인하도 없다"

안승찬 기자I 2019.04.18 15:32:57

금통위 통화정잭방향 결정문서 “완화정도의 추가 조정” 표현 삭제
올해 성장률·물가 전망치도 낮춰..금리인상 가능성 스스로 차단
이주열 “금리인하 전혀 검토 않는다”..통화정책 위아래 모두 막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8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통위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완화정도의 추가 조정 여부는 향후 성장과 물가의 흐름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판단해 나갈 것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통화정책을 결정한 이후 발표하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 한동안 자리를 잡고 있던 표현이다. 이 문장이 4월 결정문에서는 통째로 사라졌다.

“추가 조정 여부”라는 뜻은 기준금리를 인상할 때도, 내릴 때도 쓸 수 있는 말이다. 얼핏 보기엔 기준금리를 올리겠다는 건지 내리겠다는 건지, 그냥 뺀건지 도통 해석이 안된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도 이게 궁금했던 모양이다. 노골적으로 물었다. “통화정책 완화 정도를 조절한다는 말이 금리를 인상한다는 뜻입니까?”

이 질문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여건이 괜찮다면 금리 인상 쪽으로 가겠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답했다. 겉보기에는 중립적인 표현이지만,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넣어둔 표현이라는 뜻이다.

“완화여부의 추가 조정”이라는 표현이 처음 들어간 건 지난 2017년 11월부터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뒤에 붙어 있던 “신중히”라는 단어가 빠졌다.

애초 표현은 “완화정도의 추가 조정 여부를 신중히 판단해 나갈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문구에서 “신중히”라는 표현을 뺀 것이다.

이 총재의 설명대로 “완화정부의 추가 조정”은 사실 기준금리 인상을 의미하는 말인데, 신중하게 하겠다는 말을 뺐으니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 말이 된다. 실제로 한은은 다음달인 11월 보란듯이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지난 1월에도 또 한번의 변화가 있었다. 문장의 어순을 바꿨다. “향후 성장과 물가의 흐름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완화 정도의 추가 조정 여부를 판단해 나갈 것”이란 문장을 “완화 정도의 추가 조정 여부는 향후 성장과 물가의 흐름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판단해 나갈 것”으로 변경했다.

단어와 뜻은 거의 똑같지만 어순만 바꿨다. ‘성장과 물가’라는 변수가 문장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이는 성장과 물가라는 변수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좀 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금리 결정은 성장과 물가 변화의 종속변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금통위원들 내부에서 기준금리 인하 논의가 슬금슬금 퍼지던 때였다.

그랬다가 이번에는 아예 문장을 통째로 드러냈다. 동시에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2.6%에서 2.5%로, 물가 전망치를 1.4%에서 1.1%로 내렸다. 성장과 물가라는 변수가 더 나빠지자 “완화 정도의 추가 조정”이라는 표현 자체를 빼버린 것이다.

문구 삭제에 대해 이 총재는 “향후 통화정책방향의 방향성을 사전에 정해놓기보다는 불확실성이 어떻게 전개될지, 그것이 국내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지켜보면서 정책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글로벌 무역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반도체 경기 회복세가 우리가 봤던 대로 갈 수 있을지 이런 우려가 있다”면서 “방향성을 사전에 정하지 말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총재가 매우 우회적으로 표현했지만, 이 표현의 의도는 어차피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결국 이 표현을 뺐다는 건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사실상 차단했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매파(긴축적 통화정책 선호)’로 통하는 이 총재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아니다. 이 총재는 “문구를 삭제했다고 해서 곧바로 인하까지 검토하겠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잘 쓰지 않는 “전혀”라는 부사까지 써가며 인하 가능성을 철저히 부인했다.

당분간 한은의 통화정책 방향은 위아래가 모두 막힌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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