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6년전 오바마의 공약(空約)과 한유총 사태

이정훈 기자I 2019.03.05 12:19:00

개학연기 하루만에 접었지만 아이·학부모 상처 여전
정부 강경대응 먹혔지만 여론지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한유총 굴복시킨데 만족 않고 근본대안 마련 주력할 때
체티 교수 "유치원 교육이 대학진학률·소득 좌우"
오바마도 유치원 무상교육 추진…결국 재원탓 관철 못해

유치원 무상교육에 대해 연설하고 있는 오바마 전 대통령


[이데일리 이정훈 사회부장] 뉴욕특파원 시절이던 지난 2013년 5월 라즈 체티라는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후에 노벨경제학상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뜻에서 `젊은 노벨경제학상`이라 불리는 존 베이츠 클락상을 역대 최연소인 33세에 거머쥔 그는 꼭 만나고 싶은 인물 중 하나였다.

특히 넉 달 전인 그 해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새해 연두교서에서 그의 이름과 연구논문을 직접 거론하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던 유치원 무상교육을 약속한 덕에 체티 교수는 일약 학계나 미국 사회에서 가장 핫한 경제학자로 이름을 날리던 터였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인용했던 연구에 대해 그는 설명했다. “학생들의 시험 성적으로 유치원 교사의 역량을 매겼고 교사의 역량이 아이들의 일생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죠. 물론 지역별 격차와 같은 요소는 제외했구요. 그랬더니 흥미롭게도 유치원에서 역량이 높은 교사에게 배운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대학 진학률과 성인으로 자란 뒤 소득 수준이 눈에 띌 정도로 높았습니다. 소득 불균형을 시정하고자 한다면 정부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등 초등교육의 질부터 높여야 합니다”라고.

교육수준의 격차가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 중 하나라는 게 체티 교수의 연구 결과이고, 그 때문에 미래의 소득 불균형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양질의 초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국민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게 국가의 임무가 돼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사립유치원 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주도했던 사립유치원들의 무기한 개학 연기 사태가 정부의 강경 대응과 등 돌린 학부모들의 민심 덕에 일단 봉합됐다. 유치원생을 둔 맞벌이 부부들의 불편은 하루만에 해소됐지만 지난주부터 `우리 아이 유치원도 개학을 연기하면 어쩌나`하며 느꼈던 마음 고생과 그로 인한 불신은 쉽사리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이를 생각한다면 정부는 공정거래위원회나 검찰, 경찰 등 공권력까지 총동원한 강경 대응으로 한유총을 굴복시켰다는 만족감에 취해있을 때가 아니다. 대신 정부가 휘두른 큰 칼에 실제 정책 수요자인 유치원생과 학부모들이 입은 상처가 재발되지 않도록 방책을 만드는 엄중한 숙제를 떠안았다는 부담을 느껴야 한다. 현재 우리 아이들 중 사립유치원에 다니는 비율은 75%로, 그 숫자는 50만명에 이른다. 우리나라 유치원생 4명 가운데 3명이 사립 교육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오는 2022년까지 국공립유치원 비율을 40%까지 늘리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조기에 달성하는데 사력을 다해야 한다. 이와 병행해 병설유치원 등 다양한 틈새 보육시설 확충도 선결돼야 할 과제다.

지금으로부터 6년전 오바마 대통령의 거창한 공약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의 유치원 무상교육은 여전히 요원하다. 물론 그 뜻을 공감한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 등 몇몇 지방자치단체장의 노력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무상교육이 시행되고 있지만 말이다.

결국 재원 마련없는 정책은 공허할 뿐이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총대를 멘 고교 무상교육도 안정적인 재원 조달 대책없이 시행에 들어가는 상황이다. 청와대와 집권여당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을 찾는데 앞장서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학부모들의 분노를 이 정부가 얼마나 엄중하게 받아들이는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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