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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PF 위기 속 사업시행권 분쟁 증가…귀책사유가 관건"

성주원 기자I 2024.05.01 15:20:00

책준의무 불이행 시공사, 대출금 대위변제
시행사 주식질권 실행…주주확인 가처분신청
法 "귀책사유 있는 시공사의 시행권 탈취 부당"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책임준공관리형 토지신탁개발사업에서 책임준공의무를 불이행한 시공사가 대주단에 대출금을 대신 변제한 뒤 이를 근거로 시행사의 사업시행권을 뺏으려 했지만 법원이 저지했다.

시공사 입장에서는 대출금을 대신 갚은 만큼 PF대출 계약과정에서 담보로 제공된 시행사 주식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 것인데, 법원은 귀책사유(책임준공의무 불이행)가 있는 시공사의 사업시행권 탈취를 허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부동산시장 침체 속 PF(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장 부실 우려가 커진 가운데 여러 책임준공관리형 신탁개발사업에서 이같은 사업시행권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선례로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위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함 (사진=게티이미지)
1일 법조계와 법무법인 바른에 따르면 경기도 김포시 저온물류창고 PF개발 사업의 공동시공사로 참여한 A사는 시행사인 B사를 상대로 주주지위 확인을 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1심과 2심에서 모두 기각됐다. A사가 상고를 포기해 최종 확정됐다.

B사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약 450억원을 PF대출 받으면서 대표이사 등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담보(질권)로 제공했다. 그러나 A사와 공동시공을 맡은 C사가 공사 도중 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해당 사업 공사가 중단됐다. 그 여파로 책임준공 기일까지 공사를 마치지 못해 PF대출약정의 기한이익이 상실돼 대출을 상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상대적으로 넉넉한 현금유동성을 갖고 있던 A사는 대주단에 대출원리금 약 452억원을 대위변제 했다. 이에 A사가 대주단으로부터 대출약정상 모든 권리와 담보권을 양수받으면서, B사의 주주가 됐다고 주장하며 주주지위 확인을 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했다.

B사를 대리한 법무법인 바른은 재판과정에서 “A사가 책임준공의무를 불이행함으로써 대출약정상 기한이익이 상실됐고, 대출약정 문언에 따르더라도 책임준공의무를 불이행한 A사가 주식근질권을 실행해 B사의 사업시행권을 탈취할 수 있다고 해석되지 않는다”며 “이와 달리 해석할 경우 사업이익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에서 시공사가 의도적으로 책임준공의무를 불이행해 사업시행권을 탈취할 수도 있어 신의성실 원칙 위반 및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1심은 A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책임준공의무를 불이행한 시공사 A가 대위변제를 통해 금융기관으로부터 이전받은 담보권을 실행함으로써 B사에 대한 경영권을 취득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A사에게 B사 주주의 지위를 인정할 경우, A사가 B사의 지배권을 취득하게 됨으로써 B사가 A사에 대한 책임준공의무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책임 등을 추궁할 기회를 상실하게 돼 부당하다”고도 판시했다.

2심의 판단도 같았다. 2심 재판부는 “A사가 B사의 시행권을 취득하게 된다면, 해당 사업에서 큰 수익을 얻을 것으로 판단한 시공사가 의도적으로 금융기관에 대한 책임준공의무를 불이행하고 대출금채무를 대위변제함으로써 시행사로부터 해당 사업을 탈취하는 것을 허용하게 돼 부당하다”며 항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A사가 상고를 포기함으로써 이같은 법원의 결정은 최종 확정됐다.

고경희 변호사
이 사건을 대리한 고경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PF대출약정서 및 신탁계약서의 문언만 따른다면, 책임준공의무를 불이행한 시공사는 대출금을 대위변제하고, 주식근질권 등을 실행해 시행사의 사업시행권을 탈취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었다”면서 “법원이 책임준공의무 불이행에 귀책사유가 있는 시공사가 변제자 대위에 따른 권리를 행사해 시행사의 사업시행권을 취득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해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 변호사는 이어 “최근 부동산 경기 악화 등으로 책임준공형 토지관리신탁사업 관련 분쟁이 많이 발생하고 있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은 사업시행권 분쟁 사건에서는 어느 쪽의 귀책사유가 더 크냐 여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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