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자유로움 넘치는 프랑스 르노 테크 센터

김형욱 기자I 2015.09.20 15:00:00

1만명 엔지니어 1000개 회의실에서 끊임없이 열띤 토론
창의력 개선 프로젝트·여성 엔지니어 육성 노력도 '눈길'

[파리(프랑스)=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이곳에선 62개국에서 온 9903명의 직원이 일합니다.” 르노가 자동차를 기획·디자인·개발하는 산실 ‘르노 테크 센터(테크노상트레·Technocentre)’의 홍보담당 셀린(Celine)은 말했다.

이곳은 117년 역사의 르노가 100주년이던 1998년 만든 연구소다.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20㎞, 베르사유 궁전 인근 이블린이란 지역에 있다. 이전까지 프랑스 각지 50여곳에 흩어져 있던 연구시설을 한 데 끌어모았다. 이 덕분에 신차 개발 구상기간을 60개월에서 절반인 30개월로 줄였다는 게 셀린의 설명이다.

약 20㎞ 떨어진 파리 시내의 본사와 40㎞ 거리의 시험주행장 등 총 6개 시설(sites)에서 총 1만6000여명이 일한다.

기술적인 면에서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을 듯했다. 꾸준히 최신 시설을 도입했지만 시설 자체는 20년 남짓 지났다. 더 최근 지은 연구시설보다 훨씬 낫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이곳엔 국내, 일본은 물론 독일 연구소와도 눈에 띄게 달랐다. 수치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창의에 대한 열정과 자유로움이 곳곳에 묻어나 있었다. 62개국에서 온 연구원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프랑스 특유의 ‘똘레랑스(관용)’가 느껴졌다.

르노 테크 센터 전경. 김형욱 기자
보편적(유니버셜) 디자인을 주제로 올 한해 다양한 이종(異種) 상품을 전시하는 공간. 르노의 엔지니어는 이곳에서 자동차 개발에 접목할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김형욱 기자
◇매일 붐비는 1000개 남짓 미팅 룸

이곳에는 총 972개의 미팅 룸이 있다. 직원 열 명당 한 개꼴로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예약은 늘 꽉 차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대화와 토론을 좋아하는 프랑스 사람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직원 창의력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었다. 르노 테크센터는 2008년 자동차와 전혀 무관한 최신 아이디어 용품을 한 데 모아놓은 방을 만들었다. 매년 다른 콘셉트로 제품을 전시하고 직접 아이디어 상품을 개발해보는 과정에서 자동차 개발에 접목할 만한 아이디어를 얻자는 취지다.

올해 주제는 유니버셜(Universial·보편적) 디자인으로 독특한 디자인의 키보드와 연말, 가위 등이 이곳 자동차 엔지니어·디자이너에 영감을 불어넣고 있었다.

건물 디자인에서도 프랑스 특유의 독창성을 느낄 수 있었다. 르노 테크 센터 건물은 마치 중세 유럽 진지를 연상케 했다. 연못에서 시작해 길게 뻗은 기둥은 장관이었다. 실용성만 강조한 여느 사각 연구소와는 달랐다.

공간 구성도 독특하다. 정문을 들어서면 ‘혁신(아방쎄)’라고 이름 붙여진 첫 건물이 나오고 이후 ‘벌집(루슈)’이라는 말 그대로 벌집 모양의 연구소가 나온다. 맨 뒤 마지막으로 더프로토(시제품)이란 건물이 잇달아 있다.

아방쎄에서 최초의 차를 개발하면 루슈에서 개발사가 참여해 다양한 디자인을 조합하고 더프로토에서 실제 양산제품을 만드는 3단계 과정이다.

이곳 연구원은 비단 연구실뿐 아니라 사무실, 복도 곳곳에서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직원 하나하나가 모두 자유로운 느낌이었다. 자유분방한 프랑스 자동차 특유의 색채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리라.

여성 엔지니어 인력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인상적이었다. 이곳 직원의 약 20%는 이미 여성이다. 자동차 연구소란 걸 고려하면 이미 한국·일본 등과 비교해 엄청나게 많은 비율이다. 르노 테크 센터는 이 비율을 궁극적으로는 30%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벌집(루슈)로 이름 붙은 르노 테크 센터 내 시뮬레이션 센터에서 엔지니어들이 가상 이미지로 차체 세부 디자인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형욱 기자
벌집(루슈)로 이름 붙은 르노 테크 센터 내 시뮬레이션 센터에서 엔지니어들이 가상 이미지로 차체 세부 디자인을 구현하고 있다. 김형욱 기자
◇‘1ℓ로 100㎞..’ 이오랩으로 기술력 과시

단순히 시각적이나 문화적으로만 창의적인 것은 아닌 듯했다. 이곳에는 6000개의 컴퓨터응용과학(CAE) 스테이션과 실제 차를 가상으로 보여주는 네 개의 버츄얼 이미지 월(wall)이 있다.

차를 만들기 이전에 이미 그 차의 실내외 이미지와 감성은 물론 충돌 내구성, 공기저항 값을 계산한다. 시간을 절약하는 것은 물론 정확도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미쉘 가브리엘(Michael Gabriel) 르노 모크업(Mock-Up) 디자이너는 “차를 수작업으로 만들던 10년 전보다 개발시간이 10주 줄어든 것은 물론 6배 많은 개선점을 찾아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첨단 개발 기술 도입의 최신 결과물이 휘발유 1ℓ로 100㎞를 달리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콘셉트카 ‘이오랩(EOLab)’이다. 지난해 프랑스 파리 모터쇼에서 세계 무대에 데뷔했다.

이오랩은 소형 해치백 끌리오를 기반으로 차체와 좌석을 낮춰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고 포스코의 첨단 마그네슘 소재를 차체에 적용해 동급 일반 모델보다 400㎏ 경량화했다.

르노는 이오랩에 적용한 기술 중 20~30%를 내년 중 실제 판매하는 모델에 적용한다는 목표다. 2018년에는 50~60%, 2022년까지는 80~90%를 넣을 계획이다.

지분 교환 관계인 일본 닛산자동차와 함께 전기차와 친환경차 분야의 선두주자로서 입지를 다진다는 중·장기 프로젝트다.

르노 테크 센터의 한 엔지니어가 이오랩의 디자인 특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형욱 기자
르노 테크 센터의 엔지니어가 3D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차량 주행 품질을 가상 체험하고 있다. 르노삼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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