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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정신의 무당"…스타논객 25인 인문독설

오현주 기자I 2015.08.05 06:17:00

- 궁극의 인문학
전병근|320쪽|메디치미디어
김정운·송길영·피케티 등 9인 '인문학으로 세상 깨기'
- 생각의 모험
신기주|432쪽|인물과사상사
강신주·김혜남·장하준 등 16인 '인생의 역설 파헤치기'

빅데이터분석가 송길영(왼쪽부터), 철학자 강신주,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거리의 철학자’ 강신주에게 물었다. “철학은 왜 공부하게 된 겁니까.” “제일 어려워서요.” 그렇게 ‘어렵게’ 철학을 공부한 그는 인문학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고 상담을 한다.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그가 들이대는 잣대는 이렇다. “내가 상담을 하는 건 지뢰를 매설하는 겁니다. 그 지뢰가 5년 뒤에 터질 수도 있고 1년 뒤에 터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주 깊이 묻어놓습니다.”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등을 써 깊은 공감을 적신 정신과의사 김혜남이 남편과 다툴 때 듣는 비난은 이런 거란다. “당신이 쓴 책을 좀 읽어봐. 그렇게 좋은 말을 다 써놓고 왜 현실은 이래.” 대답은? “현실에서 내가 그랬으면 책 안 썼지. 못 그러니까 그러고 싶어서 책을 쓴 거지.”

한 사람만 더 보자. ‘21세기 자본주의’로 지구촌을 발칵 뒤집어 놓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맞다 틀리다’ ‘천재다 바보다’라며 그를 들었다 놨다 한 세기적 평가에 상처를 입었을 만한데. 40대 초반의 그는 능력도 모자라 나이답지 않은 ‘얄미운’ 여유까지 지녔다. “걱정해야 할 것은 내 책이 아니라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 책이 불평등을 낳은 원인은 아니잖아요.”

세상은 살기가 나아졌고 편해졌고 또 빨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역사와 시대, 사회와 인생의 고민은 늘 남는 법.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다. 범인인 우리의 판단이 중요하지만 그래도 ‘팔랑귀’ 치켜들고 한번쯤 들어보고 싶은 건 당대 지식인들이 내놓은 그 해결책이란 거다.

국내외 경제·정치·역사·문화·사회·심리학을 포함한 인문학자, 저널리스트와 스타강사, 예술가 등 25명을 인터뷰했다. 한 권에 묶은 건 아니다. 피케티를 비롯해 뇌과학자 김대식, 사학자 주경철,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빅데이터분석가 송길영, 한문학자 정민 등 9명은 ‘궁극의 인문학’ 안에 자리를 잡았다. 책은 이들의 입과 눈으로 본 오늘날의 사유와 통찰을 굴비 엮듯 꿰어보자는 것. 하지만 약속이나 한 듯 이들이 만난 지점은 인간마음의 탐구다. 24시간 주기도 짧다고 첨단기술이 진화하는 지금 왜 고리타분한 인문적 사고를 버리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인 셈이다.

나머지 16명은 ‘생각의 모험’으로 엮었다. 여기선 모험심이 뻗쳐 자칫 흐트러질 수 있는 흐름을 나름의 소주제로 차단했다. 인생·글·정치·자본주의·진실·사회·영화·예술이란 게 도대체 뭔가를 묻고 답한다. 강신주와 김혜남을 앞세워 경제학자 장하성과 정태인, 방송인 정관용, 프로파일러 표창원, 소설가 천명관, 사진작가 배병우 등이 그 거대한 주제에 ‘촌철살인’을 들고 나섰다.

▲“박제된 지식은 필요없다 무조건 살려내야”

‘궁극…’이 기대고 있는 건 ‘꿈틀거리는 질문, 살아 움직이는 대답’이다. 아무리 드높은 경지의 혜안이라도 병풍 속에 갇혀 있다면 한낱 유물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주경철은 그래서 역사가의 역할이 중요하단다. “그들이야말로 인간의 내밀한 심층에 대해 살피고 사회를 해석하는 우리 정신의 무당”이라고.

역사가를 무당으로 뒤바꾼 것만큼이나 당혹스러운 건 김대식에게서 나온 ‘삶의 의미론’이다. 그런 게 꼭 있어야 하느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일단 질문이 틀렸단다. ‘의미 없는 삶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가 관건이란다. 당연히 과학자에게도 인문학이 중요하다. ‘왜’라는 질문을 해주기 때문에. 다만 ‘과학 없는 인문학’은 문제가 있다고 잘라 말한다. 이젠 거의 들여다보는 이가 없다고 해도 섭섭하지 않을, 옛글에서 길을 찾는 정민의 충고는 딱 한 줄이다. ‘한 글자만 빼도 와르르 무너지는 글을 써라.’ 그렇다고 독불을 고집하진 않았다. 그저 대중의 눈높이를 끌어올리는 일이 중요하단다. 맞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그의 대표작 ‘미쳐야 미친다’가 그것 아닌가.

▲“그것을 하지 않으면 내가 아니다”

‘생각…’에 등장하는 인물들에는 좀 더 큰 가시가 박혀 있다. 늘 삶의 역설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들이 올곧은 진전을 포기하지 않는 건 생각의 모험을 쉬지 않은 덕분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15년째 파킨스병을 앓고 있다는 김혜남은 ‘악당 소굴에 들어가서도 김혜남’인데 굳이 미래를 끌어들여 현재를 망쳐서야 되겠느냐고 묻는다. 한국자본주의를 고쳐 쓰자고, ‘불평등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로잡자고 필생의 목표를 건 장하준과 정태인도 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와 흠뻑 닮은 사진작품을 내놓는 소나무작가 배병우의 키워드는 다양성이다. “사진이든 디자인이든 발전하려면 다양성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겸재의 그림 100장 중 99장에 소나무가 등장한다면서.

▲“정답은 없다 결정하는 행위가 중요할 뿐”

김정운의 지론은 인생에서 한순간은 격하게 외로워 봐야 한다는 것. 그가 그 ‘격한 외로움’ 끝에 내린 결정은 교수직을 버리고 만화공부를 하러 일본으로 떠나는 거였다. “쪽팔려도 철저하게 대중적으로 가자”는 생각에서였단다. 진리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송길영은 아무리 빅데이터라도 마음을 못 읽어내면 말짱 헛것이라고 여긴다. ‘마이닝 마인즈’(마음 캐기)를 명함에 박고 다니는 그에게 빅데이터란 건 잘 다듬어진 곡괭이 그 이상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늘 겁이 난단다. “나도 꼰대가 될까봐 무서워 죽겠다”고 털어놨다.

펜이 아닌 말로 쓴 25개의 사유. 정제되지 않고 거친 데다가 체계를 버린 분방한 행간을 따라잡는 재미가 특별하다. 물론 칼자루는 이들이 아니라 독자에게 쥐어졌다. 취하든 버리든, 챙기든 끊어내든. 한증막 더위를 다스리기에 그만 아닌가. 이철치열(以哲治熱) 혹은 이문치열(以文治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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