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th SRE][Cover]②전성시대 언제까지…울리는 경고음들

이후섭 기자I 2019.05.15 06:36:56

"기초자산 '고인물' 벗어나야…BBB급 활성화 필요"

[이데일리 이후섭 기자] 올해 크레딧 시장은 유례없는 강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태평성대’를 즐기는 여유는 보이지 않는다. 시장참가자들은 시장분위기에 쫓기듯 투자에 나서면서도 어쩐지 불안하다. 시장을 뒤흔들 뚜렷한 크레딧 위기는 딱히 없지만, 강세가 장기화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이 커지고 있다. 올 들어 아시아나항공과 두산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고, 롯데쇼핑 등 주요 기업의 신용등급 하향이 이어지면서 시장의 우려를 자극했다. 국내 기업의 이익 둔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시장에 울리는 ‘경고음’을 주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국내 크레딧에만 국한된 시야를 넓혀야 할 시점이라는 조언이다.

크레딧물 랠리 지속 전망…그래도 시장은 불안하다

시장에서는 이례적인 크레딧물 강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29회 SRE 설문에서 크레딧물 강세 지속 여부를 묻는 질문에 ‘상반기 이후 조정될 것’이라는 답변이 58표(32.2%)로 ‘강한 연중랠리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58표· 32.2%)과 동수를 이뤘다. 다만 ‘내년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답변(11표·6.1%)을 감안하면 시장은 올해 혹은 내년까지 크레딧물 강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데 우위를 두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완만한 금리 인하기로 들어선 가운데 크레딧물에 대한 수요 기반이 지지를 받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금리인하 기대감이 반영되며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최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2.25~2.50%로 동결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현재 금리인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지만, 시장에서는 금리인하 기대가 재차 확대되는 양상이다. 지난 1분기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경기 우려가 커졌고, 저물가가 이어지면서 증권가에서는 올 하반기 금리인하론이 대두하고 있다.

한 SRE 자문위원은 “금리는 올라갈 것 같지 않고, 크레딧물에 대한 과열 수요도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며 “국고채 3년물 금리가 기준금리보다 하락한 상황에서 국채를 담을 수는 없고, 마땅한 대안이 없다 보니 그나마 조금이라도 금리가 높은 회사채에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현재 상황을 ‘폭풍전야’로 보고 있다. 유동성의 힘으로 시장이 과열되면서 금리도 왜곡되고 있다는 것. 지난달 신용등급 BBB+의 폴라리스쉬핑이 발행하는 600억원 규모 회사채에 두배가 넘는 1570억원의 자금이 몰리면서 발행액을 700억원으로 증액했다. 발행금리는 2년물의 경우 개별민평금리보다 121bp(1bp=0.01%포인트) 낮은 수준에서 결정됐다. 최근 공모채 수요예측 경쟁률이 10대 1을 넘는 것은 다반사인 상황에서 2순위로 밀린 자산운용사들 사이에서는 2주째 물량을 배정받지 못한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그러나 계속해서 회사채 ‘사자’를 이어왔던 시장도 저항선에 부딪힐 날이 머지않았다는 평가다. SRE 자문단회의에서는 하락세를 이어온 채권금리 스프레드가 역사적 저점에 근접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한 SRE 자문위원은 “현재 회사채 시장은 마치 집을 안 사면 큰일날 것 같던 지난해 부동산 청약시장과 비슷한 분위기”라며 “지난해 청약시장 경쟁률이 100대 1을 넘긴 경우도 많았는데, 최근 서울에서도 미분양이 나온 것처럼 회사채 시장 분위기도 갑자기 바뀔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회사채 발행금리가 계속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시장 분위기에 편승해 어쩔 수 없이 회사채를 담고 있는 곳들이 많다”며 “시장 강세에도 일말의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채 조금이라도 계기만 주어지면 바로 ‘팔자’로 돌아서려는 참여자들이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하나둘 터지는 크레딧 리스크…펀더멘털 악화 우려

시장에서는 국내 기업들의 펀더멘털 악화로 인한 신용도 위기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 29회 SRE에서 크레딧물 강세 제동 요인을 묻는 질문에 ‘국내 크레딧물 펀더멘털 악화’가 가장 많은 117표(32.5%)를 받았다. 수급적 요인이 89표(24.7%)로 뒤를 이어 현재 시장을 이끌고 있는 수급이 장기간 지속되지 못하고 꺾일 것을 경계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국내 크레딧물 펀더멘털 악화(28표)와 수급적 요인(26표)에 차이를 크게 두지 않았지만, 채권매니저와 브로커 등은 크레딧물 펀더멘털 악화에 89표를 던져 수급적 요인(63표) 보다 우려를 크게 나타냈다.

실제로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반도체를 필두로 국내 기업이익이 감소 추세에 접어들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올해 1분기 ‘어닝 쇼크’를 기록하는 등 반도체 부진에 한국 수출은 지난 4월까지 5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이에 지난해 정점을 찍었던 기업 신용등급 개선세가 올들어 꺾이는 모습이다. 신용평가사 3사의 1분기말 기준 업다운 레이쇼(등급 하향대비 상향 배율)는 모두 1배를 밑돈다. 올해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된 기업이 상향된 곳보다 많다는 의미다.

시장에 파급을 미칠 크레딧 이벤트도 하나둘씩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감사보고서에 대한 감사의견 ‘한정’으로 시작된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도 위기는 결국 매각 수순까지 이어졌다.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자본시장 신뢰가 무너졌고, 1조1000억원을 웃도는 과도한 자산유동화증권(ABS)은 시장에 경고음을 울렸다. 채권단의 매각 추진으로 일단 아시아나항공은 시간을 벌었지만, 유동성 위기는 여전히 계속되며 기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에 놀란 가슴을 한차례 쓸어내린 시장참가자들은 증권사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 리스크, 현대차·기아차·롯데쇼핑 등 주요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향 현실화 등에 시선을 옮기고 있다. 이번 SRE 중 향후 시장에 영향을 미칠 크레딧 이벤트를 묻는 설문에서는 아시아나항공 ABS 조기상환에 따른 유동성 리스크가 110표(30.6%)로 1위를 차지했다.

증권사 PF 우발채무 리스크가 98표(27.2%)로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15년부터 불거진 이슈이지만, 최근 증권사들의 IB 확대와 맞물려 자기자본 대비 PF 우발채무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며 다시금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신평사들도 증권사 PF 우발채무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연구보고서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경고하고 나섰다. SRE 자문단회의에서도 전체적으로 규모나 비중을 보면 증권사가 PF 우발채무 리스크를 상당부분 안고 있으며, 관련 정보를 시장에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 불안감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만 일각에서는 부동산 PF 자체의 리스크가 다른 사업보다 크다고 단정하는 것은 시장의 왜곡이라는 반론도 제기됐다. 한 증권사 리스크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저축은행 사태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 부동산 PF는 절대 리스크가 큰 사업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오해”라며 “론 비즈니스 중에 부동산을 담보로 하는 게 가장 안전할 수 있다”고 항변했다.

현대·기아차의 등급하향 현실화(73표·20.3%)가 3위에 올랐으며, 두산그룹 유동성 리스크(43표·11.9%)와 롯데쇼핑 등급하향 현실화(35표·9.7%) 순으로 뒤를 이었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수익성 둔화가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연내 현대자동차(AAA)와 기아자동차(AA+)의 신용등급 하락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올해 1분기 ‘신차 효과’에 힘입어 단기 실적 개선에 나섰지만, 중국 시장 부진과 미·중 무역전쟁 여파 등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다.

롯데쇼핑의 신용등급 하향은 이번 SRE조사기간 이후 단행됐다. NICE신용평가는 이달 초 롯데쇼핑의 장기 신용등급을 기존 ‘AA+’에서 ‘AA’로 하향 조정했으며, 등급전망은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변경했다. 롯데쇼핑의 등급하향으로 인해 롯데글로벌로지스, 롯데칠성음료, 롯데제과, 롯데푸드 등이 발행한 롯데지주 연대보증채권 등급도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로 무더기 강등됐다. 롯데쇼핑은 국내 백화점, 대형마트, SSM 부문 등의 부진이 지속되면서 지난해 465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온·오프라인 유통업 경쟁 확대, 대규모 유통시설에 대한 정부규제 부담 등으로 인해 중단기적으로 뚜렷한 수익성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기초자산 ‘고인물’ 벗어나야…BBB급 활성화 필요”

크레딧 시장 강세는 이어지고 있지만, 시장 정체에 대한 돌파구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수익률 곡선(일드 커브)이 누워버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금리를 더 준다면 AA급 뿐 아니라 A급도 담고 있다.

해외에선 글로벌 금융위기이후 BBB급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한 반면 국내의 경우 BBB급에서 채권 발행에 나서는 기업들은 20여개에 불과하다. 지난해 BBB급 회사채 발행규모가 1조9000억원으로 2014년(9000억원) 대비 2배 이상 늘어났고 최근 BBB급도 흥행에 성공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기관에서 직접 소화하지 않고 리테일로 넘기는 물량이라는 지적이다. 기관들은 별다른 운용 전략 없이 우량등급 위주의 물량만 담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일본에서는 매번 똑같은 기업들이 금리 차별화 없이 회사채 발행에 나서고, 기관들도 이를 형식적으로 담는 행태가 반복되는 시장으로 전락했다”며 “국내 회사채 시장이 흘러가는 분위기를 감안하면 일본 시장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를 표했다.

특히 풍부한 유동성이 채권시장의 허리라 할 수 있는 BBB급으로 흘러가지 못하는 게 시장 정체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한 SRE 자문위원은 “국민연금 등 수익자를 비롯해 증권사, 운용사들이 내부적으로 A급 이하의 회사채 투자에 제한을 두면서 BBB급에 대한 수요가 나오지 않고 있다”며 “신평사들도 괜히 부도율이 높아질까 염려해 무리하게 BBB급 평가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회사채 시장의 성장을 위해서는 BBB급 등 기초자산 확대가 수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SRE에서 크레딧 강세에 제동을 걸만한 요인을 묻는 설문에 기초자산 투자대상 확대가 가장 적은 표를 받았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가장 시장에 필요한 요인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SRE 자문위원은 “BBB는 원래 투자등급인데, 시장에서는 하이일드 채권으로 인식하는 엉망인 상황이 됐다. 투자인식 변경이 시급하다”며 “현재 BBB급에 대한 리테일 수요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를 활성화해서 성과를 내면 기관에서도 BBB급에 들어오지 않을까 싶다”고 판단했다.

또다른 자문위원은 “공급 측면의 경우 BBB급으로 올라오는 기업들에게 은행들이 대출을 해주다 보니 자금조달 수요가 많지 않아 채권시장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며 “직접금융을 통한 자금조달에 나설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크레딧 시장만 보면 마치 경주마처럼 주변을 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리게 되는데, 시야를 좀 넓힐 필요가 있다”며 “해외 채권투자로 눈을 돌리고, 공모채 이외 시장도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시니어론 펀드(금융사가 투자등급(BBB-) 이하 기업에 담보를 받고 자금을 빌려주는 변동금리 대출로 뱅크론이라고도 불린다)가 활성화되고 있는데,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29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 책자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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