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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확대경]블록버스터의 몰락과 진정한 기업가치

하지나 기자I 2024.03.05 06:00:00

행동주의펀드 개입, 잘못된 경영 판단으로 파산
부실 경영 견제 등 주주행동주의 긍정적 효과에도
과도한 주주환원 요구, 단기 주가부양 초점 우려

[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제왕이 누구인지 묻는다면 단연코 넷플릭스를 꼽을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글로벌 비디오 시장은 ‘블록버스터’라는 비디오 대여점 체인 기업이 장악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집 근처 비디오 대여점에서 비디오를 대여하던 시절, 넷플릭스는 DVD를 우편으로 대여하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블록버스터도 처음에는 이런 넷플릭스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성장세에 결국 ‘블록버스터 온라인’을 출시하는 등 뒤늦게 온라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블록버스터 몰락 재촉한 아이칸의 개입

이렇게 블록버스터와 넷플릭스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던 중 행동주의 펀드매니저로 유명한 칼 아이칸이 등장한다. 그는 블록버스터 지분을 대량 매수한 뒤 경영에 적극 참여했고 CEO였던 존 안티오코에 대한 퇴출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결국 안티오코는 CEO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고 이후 새롭게 부임한 세븐일레븐의 짐 키스는 소매업계 출신답게 블록버스터의 온라인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게 된다.

미국 행동주의 펀드매니저 칼 아이칸. (사진=로이터연합뉴스)
결론적으로 블록버스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때 시가총액 규모만 5억달러에 달했던 이 기업은 2010년 파산했고 뉴욕증권거래소에서도 상장 폐지됐다. 당시 블록버스터가 온라인 사업에서 가시적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던 시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주주총회 시즌이 이달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하지만 주총을 앞둔 기업들의 근심은 커지고 있다. 주주가치 제고를 앞세운 주주행동주의 움직임이 부쩍 거세지면서다. 실제로 지난해 6월 한국ESG기준원이 발표한 ‘국내 주주제안 현황 분석’에 따르면 주주제안 안건은 2022년 142건에서 2023년 1~5월 195건으로 늘었다.

도 넘은 주주환원 요구, 성장동력 훼손

주주행동주의는 기업의 방만·부실 경영을 견제하고 지배구조의 건전성을 강화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동시에 높이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오랫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시달려 왔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국내 상장기업의 장부가 대비 주가 비율이 선진국의 52%, 신흥국의 58%에 불과하며 분석 대상 45개국 중 41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주주가치 제고 움직임은 기업들도 외면하기 어려운 흐름인 것은 분명하다. 이에 기업들의 주주환원정책도 늘어나는 추세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23년 결산 배당을 공시한 코스피 기업 287곳 중 16곳은 2012년 배당이 없었으나 지난해 새롭게 배당을 책정했다. 코스닥 기업의 경우 284곳 중 37곳이 신규로 배당을 결정했다.

다만 도를 넘어선 지나친 환원 요구는 장기적으로 기업의 체질 개선보단 단기적인 주가 상승, 차익 실현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아닌지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게 된다. 향후 투자 자금이 필요하거나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 놓여 있는 기업 입장에서는 자사주 매각 및 배당 확대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칫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차질을 빚게 되면서 기업 경쟁력 저하로도 이어질 수 있다. 보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진정한 기업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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