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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우리 동네는 내가 지킨다, 멍!”…‘반려견 순찰대’ 떴다

이용성 기자I 2022.10.05 07:30:00

서울 9개구서 ‘반려견 순찰대’ 운영 …부산도 동참
소형·대형견 두루 ‘야광조끼’ 입고 순찰
꺼진 가로등 신고, 주취자 사고 예방…한 달 간 신고 700여건
“지역사회 위해 주민 스스로 동참 의미 있어”

[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서울 성동구의 인적이 드문 어두운 골목길. 성인 손의 두 뼘 정도로 작은 요크셔테리어 13살 ‘개구리’가 짧은 다리로 열심히 이곳저곳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가끔은 멈춰 섰다가 구석구석 냄새를 맡아보고, 왔던 길을 돌아가기도 했다. 줄을 잡은 반려인 최단비(29)씨 역시 개구리의 뒤를 따라서 걸었다. 개구리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걷다보니 최씨에겐 돌부리처럼 튀어나온 보도블록, 꺼진 가로등, 쓰러져 있는 주취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씨는 “개구리랑 산책하면서 동네를 더 유심히 보게 되는 것 같아요. 혹시나 위험하지 않을까.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요”라며 웃었다.

지난 달 27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골목길을 13살 요크셔테리어 ‘개구리’가 순찰 활동을 하고 있다.(사진=이용성 기자)
반려견 순찰대 ‘활동 시작’…함께 돌아보니

4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는 지난달 6일부터 반려견과 산책하면서 방범 활동을 하는 ‘서울 반려견 순찰대’를 공식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이데일리가 서울 성동구에서 만난 반려견 순찰대원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순찰대원들은 ‘반려견 순찰대’라고 적힌 야광 조끼를 입고 각자 반려견의 산책 시간에 맞춰 자율적으로 산책하며 동네 순찰을 한다고 백준호 ‘유기견 없는 도시’ 본부장이 설명했다.

반려인들은 ‘순찰’을 염두에 두고 반려견과 함께 천천히 걸으니 평소엔 잘 눈에 띄지 않는 불편 사항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평소 걸음이라면 10분 만에 돌았을 길이었지만, 반려견과 함께하니 30분이 넘게 걸렸다. 이날 밤 한 반려견 순찰대는 어두운 골목길에 꺼진 가로등이 보이자 즉시 ‘서울 스마트신고’ 앱에 ‘가로등 고장’ 민원을 냈다.

반려인들은 반려견을 주시하다보니 땅바닥도 자주, 유심히 봤다. 파손돼 돌부리처럼 튀어나온 보도블록이나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 보도블록이 깨져 있는 걸 알게 됐다. 백 본부장은 “일반적인 순찰 활동뿐만 아니라 주취자 인계부터 쓰레기 무단 적치, 파손된 보도블록 등 구민들이 생활하시는데 불편한 것까지 아울러 순찰 활동을 한다”며 “평소라면 지나쳤을 사소한 것부터 개선하면서 조금씩 구민들의 삶이 좋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성과도 있다. 2살 ‘보동이’와 함께 순찰 활동을 하는 30대 김모씨는 “얼마 전 밤에 산책하면서 동네를 도는데 술 취한 사람이 고성방가를 하고, 동네 주민을 위협하고 계셨다”며 “평소 같았으면 지나쳤을 법한데 112신고를 하고, 경찰에 인계해 드린 적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14일에는 서울 송파구에서 반려견 순찰대로 활동하는 ‘토리’가 무인점포에서 쓰러져 있던 신원미상의 인물을 발견해 119 등에 신고하기도 했다.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8월 12일~9월19일 서울 전역에서 활동하는 반려견 순찰대가 신고한 주취자 인계, 무인점포 내 범죄 의심 신고는 총 26건에 달했다. 안전시설물 고장 신고 등도 694건 접수됐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거리를 거닐며 반려견 순찰대가 순찰 활동을 하고 있다.(사진=이용성 기자)


‘신당역 사건’ 후 밤 순찰 제안도…“관심 뜨거워”

반려견 순찰대가 반려인과 비반려인 간 갈등의 골을 메우는데도 큰 역할을 한다고 순찰대원들은 말한다. 지난 6월 한국광관공사가 반려인 2006명과 비반려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반려인 10명 중 7명이 ‘비반려인의 적대적 행동 때문에 갈등을 빚게 된다’고 답했다. 순찰대원들은 ‘반려견 순찰대’가 적힌 야광 조끼가 비반려인들의 인식을 바꾸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2살 시베리안허스키 ‘위스키’와 함께 순찰 활동을 한 김승민(34)씨는 “예전에는 대형견을 산책하면 주변 시선이 곱지 않고 욕설도 들은 적이 있다”며 “반려견 순찰대 조끼를 입고 활동하니 시선이 달라지는 걸 느낀다, ‘대형견은 무조건 위험하다’는 색안경을 벗겨 드리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안내견 준비생이었던 3살 골드리트리버 ‘샤샤’와 함께 순찰한 40대 이민수씨도 “비반려인들은 대형견에 대한 선입견이 있고, 무서워하는데 조끼를 입고 나니 인식이 좋아졌다”고 했다.

반려견 순찰대에 대한 관심도 높은 편이다.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는 지난 5월부터 한 달간 서울 강동구에서 시범 운영을 한 후 반응이 좋아 서울 전역 9개 자치구로 확대하고, 심사를 거쳐 248팀의 반려견 순찰대를 선발했다. 비록 자원봉사지만, 많은 인원이 몰렸다. 특히 마포구에서는 3 대 1의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부산 자치경찰위원회도 지난 2일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반려견 순찰대 25팀을 선발했다.

반려견 순찰대는 앞으로 서울시 25개 자치구가 운영하도록 확대하고, 순찰 범위도 넓힐 방침이다. 반려견 순찰대를 제안한 서울시 자치경찰위 강민준 경위는 “신당역 사건 이후로 학생들 하교 시간이나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합동순찰하자는 의견이 나왔다”며 “주민들이 스스로 반려견 산책할 시간에 맞게 자율적으로 순찰대를 운영하는데 지역 사회의 안전을 위해 주민들 스스로 방범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달 27일 오후 반려견 순찰대 골든 리트리버 3살 ‘샤샤’가 ‘반려견 순찰대’ 야광 조끼를 입고 대기하고 있는 모습.(사진=이용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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