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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서 못 판다”, 화요공장 가보니 ‘오크통에 소주가…’

강신우 기자I 2018.06.11 05:30:00

언더락잔에 받는 ‘증류식 소주’ 인기
일품진로, 화요 등 5년 새 급성장
오크통서 숙성한 ‘원액’ 품귀 현상
“오랜 시간 필요, 수급조절 잘해야”

(사진=광주요)
[이데일리 강신우 기자] “소주잔 말고 언더락 잔으로 주세요~.”

50㎖ 소주잔이 찬밥 신세다. 대신 각지거나 둥근 얼음을 넣은 언더락 잔이 애주가들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다. 대중술 ‘소주’가 고급화 하면서 바뀐 풍경이다. 하이트진로의 ‘일품진로’, 광주요 ‘화요’, 롯데주류 ‘대장부’, 국순당 ‘려’…. 목넘김이 부드럽고 향이 풍부하며 뒷맛이 깔끔하다는 평이 줄을 이으면서 증류식 소주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주류업계가 실적 악화로 울상이지만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증류식 소주는 쌀이나 옥수수, 고구마 등 곡물을 발효, 숙성시켜 만든다. 주정(에탄올)에 물과 감미료를 넣고 알코올 도수를 일정 수준에 도달하게끔 희석시켜 만든 희석식 소주와는 제조 방법이 다르다.

국세청과 업계에 따르면 프리미엄 소주 시장은 약 200억원 규모로, 전체 소주 시장(2조원)의 1%에 불과한 수준이지만 판매량은 매년 증가 추세다.

증류식 소주 업계의 양대 축인 하이트진로와 광주요의 매출을 보면 이렇다.

[그래픽=이서윤]
먼저 하이트진로가 2013년 출시한 일품진로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2014년 102%, 2015년 192%, 2016년 37% 그리고 지난해 38.2% 신장했다. 연평균 성장률이 83%에 달한다. 광주요의 화요 역시 2014년 36%, 2015년 51%, 2016년 5%, 2017년 26%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2016년에는 화요 가격인상 이슈가 있어 전해에 미리 사놓은 수요가 많아 한자릿수 성장률을 보였다.

프리미엄 소주 시장이 지난 5년 새 급성장하다 보니 ‘숙성원액’은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쌀을 발효하고 증류한 원액을 옹기나 참나무로 만든 오크통에서 수개월에서 길게는 10년간 숙성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수급조절 실패 시 숙성원액을 구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없어서 못 파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증류식 소주 중에서도 오크통에 넣어 오랜 기간 숙성하는 최고급 소주는 숙성원액이 한정돼 있어 수요가 급증해 원액이 바닥나면 다시 숙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장기간 판매를 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의 일품진로가 딱 그런 상황이다. 숙성원액이 없어서 못 팔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1월부터 마트에서 판매하던 가정용 제품의 판매를 중단했고 작년 추석에 내놨던 명절 선물세트도 없앴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일품진로 출시 후 고급 일식집 등에서 중장년층들이 주로 마셨는데 최근에는 강남이나 홍대 등 젊은 층이 모이는 상권까지 수요가 확대되면서 물량 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점점 늘어나는 프리미엄 소주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소비자들의 요구를 파악해 제품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요그룹의 증류 소주 ‘화요’(火堯) 여주공장 내 목통주 숙성실.(사진=강신우 기자)
증류식 소주의 숙성원액은 정말 와인처럼 오크통에서 숙성할까. 지난 4일 찾아간 화요 여주 공장에서 그 궁금증을 풀었다. 여주 가남읍 은봉리, 산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330㎡(약100평) 남짓한 창고. 문을 여니 4개층 철재 분리대에 겹겹이 오크통이 놓여 있었고 참나무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230리터(L) 용량의 오크통, 330여개. 광주요의 ‘보물창고’다. ‘목통숙성조 204호’ ‘주입일 2010. 08. 27’ 등 8년째 숙성 중인 오크통도 여럿 보였다. 이곳에서 나오는 술이 바로 광주요의 최고급 브랜드 ‘화요 엑스 프리미엄(X.PREMIUM)’이다.

오크통은 미국에서 수입해온다. 새 오크통을 사용할수록 참나무에서 우러나온 바닐린 성분이 원액에 고스란히 담기기 때문에 진한 황금빛이 나고 바닐라향이 강하게 난다. 오크통은 한 번 숙성 후 내부를 가열한 뒤 재차 쓸 수 있다. 그러나 재사용한 오크통에서 숙성한 원액일수록 색이 연하고 향이 약하다.

이런 숙성원액도 처음에는 쌀을 발효시키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쌀을 씻은 후 고두밥(찐 쌀)으로 만들고 여기에 순수 배양한 미생물을 넣고 배양, 최대 15일간 발효해 감압증류하면 약 45도의 원액이 나온다. 이 원액을 다시 옹기에서 3개월 이상, 오크통에서는 5년 이상 숙성하는 식이다. 감압증류는 압력을 낮춰 낮은 온도에서 끓게하는 증류방식이다. 일반 전통주의 누룩 냄새와 술찌꺼기 탄 냄새 등을 없애고 쓴 맛을 제거해 맑고 깨끗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화요 옹기 숙성실. 옹기 뚜껑을 열면 맑은 원액이 들어있다.(사진=강신우 기자)
광주요 관계자는 “프랑스에 코냑, 영국에 싱글몰트 위스키가 있다면 한국에는 화요가 있다”며 “숙성원액을 얻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고급화를 통해 수급조절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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