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큰 화재가 발생해 한순간에 삶의 터전이 잿더미로 변한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4지구. ‘구룡마을(4지구) 화재민 비상대책위원회’라고 적힌 현수막과 천막은 화재 현장을 한눈에 내려다보듯 4지구에서 가장 지대가 높은 곳에 마련됐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시 언덕을 내려와 타버린 마을을 지나던 60대 여성 A씨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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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복구가 일절 이뤄지지 않은 건 이재민과 강남구 간 ‘이견’ 때문이다. 강남구는 이재민들에게 임대아파트를 제공해 이주를 돕겠단 입장이지만, 이재민들은 ‘비현실적인 대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단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뒤 ‘후불제’로 지원해준단 말만 듣고 이주를 결심하기 힘들단 설명이다. 막상 이주를 하더라도 보증금 등을 부담해야 하는 탓에 장기적으로 거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당장 원래 살던 집을 되찾고 싶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40년 넘게 구룡마을 4지구에 거주한 김모(73)씨는 “구청에선 나중에 이주비용을 후(後)보상 해 줄테니 일단 구룡마을에서 나가라고 한다”며 “나이가 많거나, 지병이 있는 사람들은 일부 이주를 하기로 결정했지만 대부분은 원래 살던 집을 복구해 살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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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배낭을 메고 캡모자를 쓴 채 비대위 천막 앞 의자에 앉아 있던 A(73)씨는 “복구는 무슨,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며 “혼자 사는데 갈 데도 없고 임시숙소에서도 못 지내니까 집이 다시 지어질 때까지 천막 치고 여기서라도 지내야지”라고 한숨 쉬었다.
비대위 관계자는 “서울시가 말한 공영개발은 여기 사람들한텐 거리가 먼 얘기”라며 “당장 살 곳이 없고, 거처가 없는데 여기에 집을 지어달라는 주장이 아예 반영이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구청에선 무조건 나가라는 입장이라 복구도 아예 안 해준단 입장”이라며 “앞으로 천막에서 지낼 예정”이라고 했다.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강남구는 현재 임대아파트로 이주하는 이재민을 대상으로 한 별다른 지원정책은 없으며, 강남구는 후원금을 활용한 물품과 현금 지급만 진행 또는 계획하고 있다. 구 관계자는 “임시숙소에서 퇴소한 이후 이재민들에게 예정된 지원정책은 없다”며 “임대아파트로 이주하는 이재민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관할로 마찬가지로 구 차원의 지원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생계지원, 거주지원비 명목으로 모든 이재민에게 가구당 최소 282만원에서 382만원까지 후원금을 현금으로 지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0일 오전 구룡마을에서 큰불이 발생해 5시간 20여분 만에 모두 꺼졌다. 당시 구룡마을 4·5·6지구 거주자 500여명이 대피했으며, 이재민이 된 마을 주민 60명은 마을 자치회관으로 대피해 강남구가 마련한 임시숙소에서 지냈다. 불이 난 구룡마을 4지구는 96세대 중 약 60세대가 소실됐으며 피해소실면적은 2600㎡로 집계됐다.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떡솜’으로 불리는 단열재 등 불에 잘 타는 자재로 지어진 판잣집이 밀집한 탓에 불길이 빠르게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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