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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세밑 낙조, 묵은 해를 보내다

강경록 기자I 2018.12.28 00:00:01

철새부터 낙조까지…일석삼조 순천 여행
갈대 우거진 철새 낙원 '순천만습지'
와온해변 뜨겁게 적시는 일몰 맞이
수백년 낙안읍성 일출 보며 새해 맞아

와온마을 해변 앞 솔섬 뒤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이 모습에 지금껏 많은 문인들이 앞다퉈 와온에 찬사를 바친 바 있다.


[전남 순천= 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이제 한 해도 고작 며칠 남짓이다. 지난 한 해 돌이켜보면 많은 일이 있었다. 저마다 사정으로 한 해를 건너온 이야기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며칠 남지 않은 한 해를 떠나보내고자 한다면 전남 순천을 권한다. 저무는 시간의 아름다움을 가장 화려하게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어서다. 순천의 해안을 끼고 이어지는 순천만과 여자만은 저무는 하루를 가장 아름다운 노을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갈대밭이 너울거리는 순천만의 감동과 훈훈한 내음을 풍기는 낙안읍성의 따스함. 힘껏 해를 그러안고 물드는 와온 바다의 격동, 그리고 김승옥부터 곽재구까지 순천의 매력에 젖은 문인들과 작품까지…. 저무는 것들의 시간 속으로 올해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순천만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흑두루미(사진=순천시청)
◇노을·갈대·철새에 한 해를 떠나보내다

순천만의 겨울은 단아하다. 고흥반도와 여수반도가 만들어 낸 순천만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모습을 바꾸며 마음을 뒤흔든다. 시인 곽재구는 그의 책 ‘포구기행’에서 순천만 노을에 감동해 무릎을 꿇었다고 했고, 김승옥은 소설 ‘무진기행’에서 순천만의 새벽 물안개를 소재로 신기루 같은 상상의 공간을 써 내려가기도 했다.

순천만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하는 게 겨울 철새들이다. 세계 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은 철새들에게는 천혜의 아지트인 셈. 이 일대에는 흑두루미와 재두루미 등 천연기념물을 비롯해 큰고니, 황새 등 150여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순천을 ‘생태관광 1번지’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순천만의 넓은 갈대 군락은 새들에게 훌륭한 은신처가 되고, 주변의 때 묻지 않은 논과 칠면초, 갯벌은 철새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터전이다. 겨울이면 갈대밭을 탐방하는 길목이 철새를 보는 코스로 이어진다. 물길 따라 와온해변까지 다녀오는 선상투어와 나무데크·갈대숲을 지나 용산 전망대까지 다녀오는 도보투어를 할 때에도 철새의 화려한 날갯짓은 덤으로 감상할 수 있다. 대대들판 전망대에서는 천연기념물 흑두루미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순천만 생태관 인근의 음식점을 개조해 만들었다. 늦은 오후 무렵이면 넓은 들녘에 수천마리의 흑두루미와 고방오리가 모여들어 삼삼오오 짝을 이룬다.

순천만 갈대숲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고방오리


순천만의 갈대밭과 용산전망대의 낙조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순천만 갈대밭은 순천의 동천과 이사천이 합류하는 지점부터 갯벌 앞부분까지 5.4㎞에 이른다. 순천만의 갈대는 햇살의 농도나 바람의 세기에 따라 다르게 누워, 본디 색깔을 짐작하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햇살에 따라 은빛이었다가 때로는 잿빛으로, 금색으로 색을 바꿔 가며 마음을 위무한다. 순천만 갈대밭을 서정적이라고 표현한 이유다. 대대포구의 ‘무진교’를 건너 갈대밭 사이 지그재그로 난 목제 데크를 따라 걸으면 그 느낌을 온전히 체득할 수 있다.

서걱대는 갈대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용이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해 ‘용산’이라 이름 붙은 용산전망대에 이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S자 수로는 사진깨나 찍는다는 이들에게 출사욕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다. 특히 낙조로 물든 S자 수로는 비애감마저 불러일으킨다.

와온마을 해변 앞 솔섬 뒤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이 모습에 지금껏 많은 문인들이 앞다퉈 와온에 찬사를 바친 바 있다.


◇ 내로라하는 문인들도 찬사를 바친 ‘와온마을 일몰’

와온마을 해변 앞으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이 모습에 지금껏 많은 문인들이 앞다퉈 와온에 찬사를 바친 바 있다.
순천의 또 다른 일몰 명소는 해룡면 와온마을이다. 용산전망대의 낙조가 화려하다면, 와온마을의 일몰은 처연하지만 따뜻하다. ‘따뜻하게 엎드리다’ 혹은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는 뜻에서 ‘와온’(臥溫)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마도 붉은빛으로 물드는 갯벌의 온기가, 이 풍경이 옛사람들도 참 좋았나 보다. 사실, 와온의 특별한 볼거리는 이 갯벌이 전부다. 비어있는 듯 보이지만 짱뚱어ㆍ새꼬막ㆍ숭어ㆍ맛조개 등이 풍부한 ‘생명의 마당’이다. 아침저녁엔 해와 달을, 낮에는 꼬막을 캐며 살아가는 와온 사람들을 품는다

와온해변은 순천만의 동쪽 끄트머리인 해룡면 상내리 와온마을 앞바다를 일컫는다. 동쪽으로는 여수시 율촌면의 가장리와 남쪽으로는 고흥반도 및 순천만과 접했다. 해변 앞바다에는 솔섬이라는 작은 무인도가 있는데, 학이 납작 엎드린 모양이라 해 ‘학섬’이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섬 안에 주막이 있어 펄 배를 타고 조업을 나갔던 어부들이 목을 축이고 돌아왔다고 한다. 지금은 누구의 출입도 허락하지 않는 무인도지만, 솔섬 품은 와온의 낙조를 담으려는 사진가들에게는 의미 있는 섬이다.

해가 떨어지면서 와온 바다가 석양에 물드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아마도 솔섬 너머로 지는 와온의 일몰이 그리움을 가득 품어서 일 게다. 은은하게 하늘과 바다를 적시는 황금빛이 마음을 훔쳤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지금껏 많은 문인이 앞다퉈 와온에 찬사를 바쳤다. 시인 나희덕은 “와온 사람들아, 저 해를 오늘은 내가 훔쳐 간다”고 와온 일몰에 대해 한껏 소유욕을 드러냈다. 또 소설가 박완서는 와온 갯벌에서 일하는 아낙들을 보며 “봄날의 꽃보다도 와온 바다의 갯벌이 더 아름답다”며 꼭 한번 살아 보고 싶은 곳이라고 했다. 여기에 시인 송상욱은 와온의 갯벌을 보고 “속옷 갈아입은 듯 맨살 드러낸 뻘밭에 바닷물이 든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그러나 와온 바다에 대한 애정을 가장 격하게 고백한 이를 꼽으라면 단연 시인 곽재구다. ‘사평역에서’를 발표하며 일명 ‘사평역 시인’이라 불리던 그가 2012년, 13년 만에 시집을 펴낸 것이 ‘와온 바다’다. 와온에 대한 그의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지금도 그 멋진 풍경에 이끌려 겨울철이면 많은 사진작가가 이곳을 찾는다.

낙안읍성 마을 앞산 너머로 붉게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과거의 모습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마을 ‘낙안읍성’

낙안읍성 마을 앞산 너머로 붉게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전남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충민길 30)의 낙안읍성. 수백년 동안 같은 집, 같은 골목, 같은 마당에서 주민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전통마을이다. 조선시대 읍성들 가운데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한 곳으로 꼽힌다. 아마도 수백년을 거스르는 시간여행을 한다면 조상들은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았을까. 낙안읍성은 과거의 모습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마을이다. 조선 중기 만들어진 석성 내부로 행정구역상 세 개의 마을 100여가구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어둠이 짙게 내린 이른 새벽, 낙안읍성은 안개가 가득하다. 발을 옮기자 안개가 걷는 이의 발을 따라 마을로 걸음을 옮긴다. 자욱한 안개와 더불어 아득하게 보이는 초가집들 사이 골목길을 따라 조선을 시간여행한다. 서둘러 남문 성곽에 올랐다. 마을 너머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기 위해서다. 여명이 밝아오면서 마을을 감싸 안고 자욱하던 안개가 점점 물러나기 시작하자 하나씩 펼쳐진 초가집들이 눈에 가득하다.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고택들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성곽을 따라 마을을 둘러본다. 원래는 토성으로 담장을 둘렀지만, 조선 중기 북벌운동으로 유명한 임경업이 군수로 부임해 석성으로 개축했다. 현재까지도 허술한 담장 하나 보이지 않는 이 석성은 1.4㎞를 이어가며 마을을 감싸고 있다. 인위적으로 옛 모습을 갖춘 민속촌이나 명망 있는 양반들의 기와 가옥이 남아 있는 경우는 전국적으로 여러 곳이 있지만, 초가집 노란 지붕으로 마을을 이룬 일반 백성들 삶의 터전을 지금까지 유지하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마을은 물레방아가 마을 공동의 물길을 따라 움직이고 장독보다 더 낮은 돌담만이 남방식 초가집 사이로 경계를 짓고 있다. 민속장터와 기념품점, 짚풀 공예와 길쌈, 대장간 등 옛 모습을 추억하는 체험코스 등이 찾는 사람들을 더욱 즐겁게 한다. 동헌, 객사 등 성안의 옛 행정기관들이 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초가집들은 남방 특유의 툇마루가 발달한 형태를 그대로여서 민속학 자료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겨울을 나기 위해 이엉작업을 하고 있는 낙안읍성 주민들


◇여행메모

△가는길= 수도권에서 출발하자면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장성분기점에서 고창~담양간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다시 담양분기점에서 호남고속도로에 올라 서순천 나들목으로 나오면 순천만이다.

△먹을곳= 순천만국가정원 인근의 청해한정식은 꼬막정식이, 순천역 인근의 신화정은 한정식이 유명하다.

△잠잘곳= 순천만국가정원 인근에 자리한 ‘순천만에코촌유스호스텔’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형 유스호스텔이다. 2013년 5월 개관했다. 순천시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한옥형 숙박시설이다. 2013년 5월 개관했다. 총 4개동 43실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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