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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②]‘박열’과 ‘동주’는 이란성 쌍둥이

박미애 기자I 2017.06.27 07:00:00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 이란성 쌍둥이 같다. ‘동주’와 ‘박열’ 얘기다. 대상(주인공)은 다른데 대상과 관계하는 특정 시대를 비추고 특정 인물을 조명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다. 어찌 보면 낯설지도 모를 ‘박열’을 ‘동주’로 예습한 것 같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후기와 중기

‘동주’와 ‘박열’은 일제강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기는 차이가 있다. ‘동주’는 1930~40년대 후기, ‘박열’은 1920년대 중기의 이야기다. 문화통치 이후 독립운동가가 소멸돼간 후기는 저항운동의 기세가 꺾였던 시기였다. 윤동주가 송몽규처럼 총을 들고 나서지 못한 자신을 탓했던 시기다. 3.1운동 직후인 중기는 행동성이 강했던 때였다. 암살과 폭파 등 과격한 방식으로 투쟁한 의열단이 이 시기에 활동했다. 그 시기 독립 운동가 중에서도 박열은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는 행동에 머물지 않은 점이 감독의 호감을 샀다. 이준익 감독은 “항일 운동이 정점에 달했던 가장 뜨거웠던 시기지만 박열은 논리적인 이론을 가지고 일제의 사법체계 안에서 싸운 점이 다른 독립운동가와 다른 차별점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법정 신(scene)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법정 신에서 박열은 문명국을 자처하는 일제의 야만성을 고스란히 꼬집는다. ‘동주’의 법정 신에서도 일제의 치부가 드러난다. 두 영화의 법정 신은 철저한 고증 작업을 거쳐 완성된 ‘팩트’다. 그렇지만 ‘박열’은 일제의 만행을 드러내는 게 목적인 영화가 아니다. “일본 권력에 대한 반감은 있지만 민중한테는 오히려 친밀감이 들지”라는 박열의 대사도 있듯이 기존의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와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동지이자 라이벌이었던 송몽규와 동지이자 연인이었던 가네코 후미코

‘동주’와 ‘박열’은 관계성이 중요한 영화다. 영화의 대상, 주인공과 깊게 관계하는 인물은 작품의 숨겨진 또 다른 주인공이다. ‘동주’의 송몽규와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이하 후미코)가 그렇다. 송몽규는 윤동주의 사촌이자 동지였고 또 라이벌이었다. 후미코는 박열의 동지면서 연인이있다. 윤동주는 행동파였던 송몽규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비극적 시대에 대한 아픔과 방황을 시라는 예술적 성취로 승화시켰고, 박열은 후미코의 절대적인 신뢰와지지를 받으며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었다. 윤동주와 박열이 송몽규와 후미코와의 관계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문학과 신념을 발전시킨 것을 보면 감독이 이들을 조명하는데 특별히 정성을 쏟은 이유가 짐작되고도 남는다.

◇시인과 아나키스트

“‘동주’가 일제강점기 찬란히 빛났던 미완의 청춘을 그렸다면 ‘박열’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던 또 다른 청춘을 이야기한다.” 감독의 얘기다. 윤동주는 시로 박열은 행동으로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였다. 감독은 2000년 개봉한 ‘아나키스트’를 제작하면서 박열이란 인물에 매료돼, 20년만에 영화로 내놓을 수 있었다. 이준익 감독은 “윤동주는 팬이 많은데 박열은 그렇지 않았다. ‘동주’가 없었다면 ‘박열’을 내놓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주’와 ‘박열’, 작품의 우선순위를 매길 수는 없지만 이번 영화에는 누구보다 자유롭고 또 치열하게 산 한 인간에 대한 감독의 동경과 애정이 묻어난다. 그는 “그 시절의 인물들을 통해서 지금의 우리가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살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얘기했다. 윤동주와 박열은 방법은 달랐지만 일제라는 부당한 권력에 맞섰던 깨어 있는 시대정신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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