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가장 비싼 화가' 김환기, 표지화 그리던 시절

오현주 기자I 2017.07.03 00:15:00

환기미술관 '김환기, 책 그림 책 속 그림' 전
1939년부터 33년 그린 표지·삽화
자유로운 조형실험 기회 마련해
한국미술품 1∼6위 '점화' 원천
1993년 '현대문학' 표지화된 '무제'
서울옥션서 5억6000만원 팔려

김환기의 ‘무제’(1966). 김환기가 본격적인 점화로 나서는 신호탄이 된 이 그림은 지난달 28일 서울옥션 미술품경매에서 5억 6000만원에 팔렸다. ‘무제’는 ‘현대문학’ 1993년 9월호에 표지화로 쓰였다(사진=서울옥션).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수화 김환기(1913∼1974)가 1966년에 그린 ‘무제’가 지난달 28일 서울옥션에서 진행한 ‘144회 미술품경매’에서 5억 6000만원에 팔렸다. 4억 8000만원의 시작가가 훌쩍 5억원을 넘기더니 이내 ‘무제’는 5억 6000만원을 부른 현장응찰자의 차지가 됐다. 30호(90×60㎝) 크기의 흰 캔버스 안에 해와 달의 상징을 반으로 자른 듯한 색원을 세로로 줄지은 그림. 화면의 상단과 중간쯤 푸르고 붉은 작은 색점을 가로로 길게 박아 뒀고.

‘무제’가 의미를 가지는 건 김환기가 본격적인 점화로 나서는 신호탄이 됐기 때문이다. 뉴욕에 머물던 당시 그는 예전 산이니 달이니 구름이니 하는 구체적인 형상을 해체하기 시작한다. 대신 점·선·면의 순수 조형요소로 꾸민 극도로 간략한 구성을 박아넣었다. 완전한 추상으로 접어든 것이다. 하지만 거대한 변환기의 암시와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화면은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

‘무제’를 표지화로 쓴 ‘현대문학’ 1993년 9월호. 원화가 거꾸로 뒤집혀 인쇄됐다(사진=서울옥션).
또 다른 ‘무제’의 의미는 표지화의 정점이란 것. ‘무제’는 이후 문학잡지 ‘현대문학’의 1993년 9월호 표지에 등장한다. 27년 전 김환기가 그린 작품을 잡지의 표지화로 옮겨온 것이다. 특별할 건 없다 싶긴 하지만 문학잡지와 김환기의 관계를 되짚어보면 그리 단순치가 않다. 김환기는 이미 1939년 ‘문장’의 권두화를 시작으로 타계 두 해 전인 1972년까지 70여권의 표지화를 그렸던 거다. 표지화뿐만 아니다. 내지에 들인 삽화까지 포함해 김환기는 족히 100여권의 책의 제작에 관여해왔다. 문학에 기울인 그의 남다른 애정을 엿볼 수 있는 흔적이다.

△1939∼1972년까지 표지화 70여점 그려

“나는 신문잡지에 컷 같은 것을 그리는 데 땀을 뻘뻘 흘린다. 번번이 약속기일을 넘기는 것도 성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재미난 생각이 안 나고 잘 되지가 않아서이다”(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중 ‘표지화여담’).

65억 5000만원짜리 푸른색 전면점화를 최고가로 한국 미술품 경매가 1∼6위를 휩쓸고 있는 대가. 소품·대작을 가리지 않고 내놓는 족족 팔려나가는 블루칩. 그런 김환기가 사소하다면 사소하다고 할 책의 표지화·삽화에 마음을 뺏긴 적이 있다. 1950∼1960년대였다. 이후 간간이 파리·뉴욕시절에까지 이어지기도 했고.

때마침 열리고 있는 기획전이 김환기의 문학에 대한 관심, 삽화에 대한 열정 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에 펼친 ‘김환기, 책 그림 책 속 그림’ 전이다. 유화·드로잉·인쇄물로 가득 채운 전시는 실제 구상·추상·전면점화 등 김환기의 광활한 작품세계에 근간이 된 표지화와 삽화의 거의 모든 것을 꺼내놨다.

김환기 ‘매화와 달항아리’(1957). 캔버스에 유채. 55×37㎝(사진=환기미술관).
‘매화와 달항아리’를 모티브로 삼은 ‘현대문학’ 1961년 3월호의 표지화(사진=환기미술관).


사실 초기의 표지화는 ‘현대문학’ 1993년 9월호와는 좀 다르다. 이전 그림을 축소해 앉힌 것이 아니라 책 사이즈에 맞춰 직접 그려냈기 때문. 책의 치수를 재고 같은 크기의 비율로 구도를 잡고 채색하는 정교한 작업이었다. 결코 녹록지 않은 작업이었던 듯하다. 김환기는 1963년 쓴 에세이 ‘표지화여담’에 그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표지화에 있어 한 가지 어려운 것이 있다. 책의 크기와 똑같은 원형대로 그리는 일이다. 치수를 재서 그 속에다 그리는 것도 귀찮을뿐더러 쬐그만 바닥에 모필을 쓰고 채색을 쓰고 하자니 항상 오밀조밀해지고 만다.”

김환기의 ‘산월’(1959). 캔버스에 유채. 100×80㎝(사진=-환기미술관)
‘산월’을 모티브로 삼은 ‘현대문학’ 1961년 10월호의 표지화(사진=환기미술관).


김환기가 책과 인연을 맺은 건 문인과의 활발한 교류 덕분으로 알려졌다. 그중 근원 김용준(1904∼1967)과 각별했는데 그는 당시 신문인화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1939년 ‘문장’의 권두화 이후 김환기는 특히 ‘현대문학’과의 관계가 돈독했다. 1955년부터 1972년까지 창간호 표지부터 삽화까지 모든 그림을 도맡았으니.

표지화·삽화를 그리는 작업은 김환기에게 화단서 한 걸음 떨어져 자유로운 조형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으로 보인다. 표지화나 삽화가 책의 내용과는 동떨어질 수 없는 일. 문학을 이해하고 행간을 읽어내는 작업은 그만큼 김환기가 시도했던 실험의 새로운 가능성이기도 했던 거다. 그 결정적인 예가 ‘전면점화’다. 말년에 이룬 거대한 추상작업의 원천을 따라가 보면 이미 오래전 책 그림 곳곳에 떨궈놓은 단초가 눈에 띈다.

김환기가 표지화를 그린 ‘현대문학’ 창간호(1955년 1월호)(사진=환기미술관).


△원화를 뒤집어 인쇄한 표지화

그런데 여기서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 앞서 본 ‘현대문학’ 1993년 9월호에 표지화로 쓴 김환기의 그림 ‘무제’가 원화와는 달리 거꾸로 뒤집혀 인쇄됐다는 것이다. 단순히 잡지 편집부의 실수인지 의도한 배치인지 지금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만약 실수라면 ‘설마 그랬을까’ 싶지만 김환기의 글 ‘표지화여담’을 보면 전혀 일어나지 못할 일은 아닌 듯싶다.

“하찮은 거라도 이렇게 만들어서 편집자에게 보내는데 가다가는 그것이 거꾸로 실리는 수가 있다. 이런 염려가 있어 안 넣어도 좋을 사인을 똑바로 넣어 보내는데도 역시 그러는 수가 있다. 허허 웃고 넘겨 버리지만 화고를 보낸 사람으로선 개운치 않다.” 하지만 이미 작고한 지 20여년 뒤. 허허로이 웃어넘길 화가도 세상에 없던 때의 일이다.

표지화 제작과 관련해 김환기는 불만도 없지 않았나 보다. 무엇보다 크기 제한. “적어도 갑절 이상의 바닥에 활달한 생각으로 그리면 그것을 축소인쇄한다고 해도 효과가 더 좋을 것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그래 맞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 그의 지적은 책 제작방식에 주류가 됐다.

김환기가 그린 ‘문예’ 1953년 9월호의 표지화(가운데). 오른쪽 화보집에 모티브가 된 김환기의 1950년대 그림 ‘부다’가 보인다(사진=환기미술관).


모두가 아쉽고 통탄해 할 내용도 있다. 특히나 그림값이 천정부지로 뛴 요즘이라면. “화고를 공장에 내려보내면 그만인 것 같다. 하찮은 것이지만 그 화고를 간직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손바닥만한 것이긴 하지만 나로서는 소홀히 날림으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환기에게도 자신의 글을 엮어 출간한 책이 있다. 부인 김향안(1916∼2004) 여사가 1989년 만든 환기재단과 환기미술관에서 펴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정작 자신의 책에 든 삽화는 색도 없는 흑백의 거친 스케치·드로잉이 전부다. 다른 이들의 책과 글에 마음을 다해 씌운 단정한 색감, 단단한 조형이 눈에 더 밟히는 까닭이다. 전시는 올해 말까지다.

환기미술관서 열고 있는 ‘김환기, 책 그림 책 속 그림’ 전의 전경. 1939년 ‘문장’의 권두화를 시작으로 1972년까지 김환기가 그린 표지화·삽화의 거의 모든 것을 꺼내놨다(사진=환기미술관).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