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쁨 아닌 아픔, 조현병]의식하지 않을래도 들리는 `그 목소리`

황현규 기자I 2019.05.16 06:09:00

조현병 대표 증상 `환청` 체험해 봤더니
"죽어" 협박 들으며식사하기·큰 굉음에 대화 불가능
굉음부터 사랑스런 여성의 목소리까지
전문가 "약물치료하면 환청 확 줄어…일상생활 가능"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의식하지 마. 의식하지 말라니까.”

음산한 잡음 속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 아무리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써봐도 그 목소리는 오히려 더 또렷하게 들려왔다. “아줌마한테 인사해!”라는 고함소리에 가던 길을 멈췄다. 누가 불렀던 걸까.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슈퍼에서 식당까지 가는 불과 50걸음 만큼의 거리 동안 그 목소리에 수 차례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환청 정도야 뭐` 자신감, 한 시간 만에 꺾였다

계속되는 조현병 사건을 접하면서 그들이 겪는 증상이 궁금했다. 환청 체험에 자발적으로 지원했다. 환자들은 도대체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까. `환청 정도는 내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라던 자신감도 있었다.

한 정신건강센터의 도움을 받아 환청 소음이 담긴 녹음 파일을 구했다. 정신질환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당 센터가 마련한 MP3 파일이었다. 고민없이 MP3를 귀에 꽂았다. 환청을 들으며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또 책을 읽었다.

그러나 나의 자신감은 불과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무시하려고 했다. 그래도 속삭이듯 들리는 목소리는 나를 계속 맴돌았다. 왼쪽 길로 가려는 나에게 “오른쪽으로 가”라고 소리쳤고 한 중년의 여성은 “항상 널 따라 다닐거야”라며 날 위협했다.

주변이 시끄러우면 소리가 안 들릴까 싶어 사람이 붐비는 식당에 들어섰다. 그러나 바로 귀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좀처럼 끊기지 않았다. `밥을 코로 먹는 건지, 입으로 먹는 건지`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환청은 더 크게 들렸다. “죽어”·“죽을 용기도 없지?” 낯선 남성의 목소리에 식사를 멈췄다. 유명한 뷔페 프랜차이즈 식당이어서 평소였으면 더 많은 접시를 들고 왔다 갔다 했겠지만 30분 정도가 지나니 머리가 아파 숟가락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식욕도 사라졌다. 함께 식사를 하던 일행은 새로운 음식을 담아 오며 “왜 벌써 그만 먹느냐”고 물었지만 환청에 집중하고 있어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환청 크기는 작아졌다가 이내 커졌다. 큰 소리의 환청이 들릴 때는 일행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대화는 불가능했다. 작은 환청이 들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더 목소리에 집중하게 돼 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어? 뭐라고 했어?”라고 되물은 것만 수차례였다. 글 읽기도 어려웠다. 20분 동안 읽을 수 있었던 글은 고작 2장. 가벼운 수필이었지만 환청 소리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사실 책을 읽었다기 보단 그저 봤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았다.

이 한 시간 동안 할 수 있던 일은 고작 환청에 귀를 기울이는 것뿐 밥 먹는 것도 대화하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모두 어려운 숙제였다. 그리고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퇴근을 하는 와중에도 멍한 기운은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약 먹으면 환청·환각 사라져…“초기 치료가 가장 중요”

조현병 환자는 환시(幻視), 환청(幻聽), 환촉(幻觸) 등 다양한 증상을 겪는다. 그 중 환청은 조현병의 대표 증상이다.

정신의학과 전문의에 따르면 환청은 환자마다 다르게 들린다. 그러나 허무맹랑한 환청은 거의 없다. 평소 환자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연관된 환청들이 많다. 우울한 생각을 하는 환자에게는 “죽어”라는 소리가, 이별을 당한 환자에게는 “사랑했다”는 전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들리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환자들은 환청을 쉽게 무시하지 못한다. 지난달 부산에서 흉기 난동을 부린 조현병 환자 A씨는 계속된 환청을 견디지 못해 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A씨는 환청과 실제 소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A씨는 “시끄러운 소리(=환청)를 견딜 수 없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환청 등 조현병 증상은 약물 치료를 받으면 빠르게 완화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치료 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최지영 한울정신건강센터 복지사는 “약물 치료시 환청 등의 증상은 거의 없어 대화 등의 일상 활동이 가능하다”며 “치료 의지가 있는 대다수의 조현병 환자들은 약물을 꾸준히 복용 중”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보건당국도 조현병 환자 등 정신질환자의 치료 지원에 나선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중증정신질환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의료기관 확충 △재활서비스 강화 △조기발견 지원 등의 대책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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