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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대선 투표…독재자 아들·딸 대권 유력

김윤지 기자I 2022.05.09 17:33:29

마르코스, 여론조사 지지율 56%로 압도적
부통령은 두테르테 딸 당선 유력 전망
가짜 뉴스 등 과거사 경시…"父, 정치 천재"
"강력한 가문의 결합…부패·빈곤 가져올것"

[이데일리 김윤지 기자] 필리핀 대통령 선거가 9일(현지시간) 진행 중이다.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들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전 상원의원이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꼽힌다. 부통령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필리핀 대통령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 다바오 시장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어 ‘독재자의 아들·딸’이 대권을 쥐게 됐다는 반응이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 등에 따르면 필리핀에선 대통령과 부통령, 상원의원 12명, 하원의원 300명을 포함해 1만 8000명의 지방 정부 공직자를 선출하는 선거가 이날 시작됐다. 필리핀 대선에선 대통령과 부통령이 따로 선출되고, 상원의원까지 포함해 이들의 임기는 각각 6년이다. 선거 유권자는 재외국민 170만명을 포함하는 약 6750만명이다. 현지시간 오전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투표가 진행된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전 상원의원(사진=AFP)
현지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마르코스 주니어 전 의원이 대선 후보 중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마르코스 주니어 전 의원은 현지 조사기관인 펄스 아시아가 지난달 16∼21일 2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56%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65년부터 1986년까지 21년 동안 장기 집권했다. 1972년 9월 계엄령을 선포하는 등 마르코스 전 대통령 집권기 동안 약 3000명이 살해 당하고, 7만명이 투옥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르코스 일가는 당시 약 100억 달러(12조 7000억원)를 빼돌린 것으로 추정된다. 시민들이 일으킨 1986년 민주화 운동(피플 파워)으로 축출돼 하와이에서 망명생활을 하다 3년 후 사망했다. 당시 대통령 보좌관이었던 마르코스 주니어도 함께 망명길에 올랐다가 1991년 필리핀으로 귀국했다. 가문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 지역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하다 주지사, 상원의원 등을 지냈다.

가디언에 따르면 마르코스와 그의 지지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힘을 활용해 과거의 잔혹한 행위를 경시하거나 부인하고 있다. 가디언은 마르코스 일가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통치 시기를 번영과 평화의 황금기로 묘사하는 식으로 가짜 뉴스를 퍼뜨려 마르코스 가문을 브랜드화 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마르코스 주니어 전 의원은 과거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 없이 아버지를 ‘정치 천재’로, 어머니인 아멜다 마르코스를 ‘최고의 정치인’으로 칭하고 있다.

경쟁자는 인권 변호사 출신 레니 로브레도 현 부통령이다. 로브레도 현 대통령은 동일한 여론조사에서 23% 지지율을 기록했다. 2016년 부통령에 당선된 후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을 “말도 안 되는 살인”이라고 부르는 등 두테르테 대통령과 마찰을 빚었다.

사라 두테르테 다바오 시장(왼쪽)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필리핀 대통령(사진=AFP)
부통령 후보인 사라 두테르테 시장은 여론조사에서 55% 지지율을 얻었다. 부친인 두테르테 대통령은 2016년 취임 이후 ‘마약과의 전쟁’을 명분 삼아 민간인 약 6000명을 살해한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 조사를 받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유력 후보가 마르코스 주니어 전 의원과 사라 두테르테 시장이라는 것을 두고 ‘필리핀에서 가장 강력한 두 가문의 정치적 결합’이라고 표현했다. 이들에게 있어 국가 자금이나 정책은 공공의 것이 아닌 개인적인 특혜이기 때문에 이들의 집권은 부패·빈곤과 연결된다고 내다봤다.

아시아 전문 칼럼니스트 필립 보우링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를 통해 필리핀은 인구와 자원이 풍부하지만 지리적·정치적 극심한 분열로 인해 극소수 유력 가문이 필리핀 정치를 지배하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하는 등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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