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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금리 포퓰리즘 경계해야 하는 이유

조영훈 기자I 2015.09.16 16:38:16
[조영훈 부국장 겸 산업부장]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금리 트라우마가 있다. 1997년 크리스마스에 시작된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로 1998년 한국에서는 내로라하는 수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았고 중산층은 파괴됐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빈부격차는 강화돼 ‘양극화’가 고착화되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을 정도다. 당시 10% 선에 머물던 실세금리가 연체대출 최고금리를 넘어서며 30%선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채권 브로커가 떼돈을 벌 정도로 금리는 빠른 속도로 올랐다. IMF는 고금리 정책을 통한 구조조정을 강요했고, 미셸 캉드쉬 그 당시 IMF 총재는 한국민에게 저승사자나 다름이 없었을 정도였다.

정확히 10년이 흐른 2008년 9월 15일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졌다. 당시 미국 4위의 투자은행이었던 리먼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화로 인해 유동성 위기를 겪고 결국 파산했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시작이었다. 이 당시 미국정부와 IMF는 한국의 경제위기 때와 전혀 다른 처방전을 내놓았다. 이른바 ‘제로 금리’ 카드다. 파격적인 유동성 공급을 통해 한계기업과 미국 중산층 보호에 나섰고, 10년 가까운 저금리 시대가 열렸다.

이제 미국은 한국보다도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경제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자 ‘금리 인상’ 카드를 만지막거리고 있다. 문제는 올들어 벌써 3분기째 카드를 만지기만 하고 베팅은 없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실업률은 개선추세에 있지만 모두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이 틈새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을 염두에 둔 글로벌 투기자금은 ‘달러화 투자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신흥국 위기론의 진원이다. 금리 인상이 이뤄져도 연내 한 차례, 25bp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시장은 마치 250bp 정도 오를 것처럼 반응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세계의 공장 중국도 침체의 늪에 빠져 ‘위안화 약세’ 전략이 증시에 충격을 주며 후유증을 앓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은 지급준비율과 기준금리를 동시에 인하하는 극단적인 통화정책을 썼지만 증시를 살리는 데는 실패했다. 1988년 소팔아 주식을 사던 우리 증시와 너무나도 닮은 일반투자자 투기열풍에 따른 결과다.

그렇다면 현재의 우리 상황은 어떤가. 미국의 금리 인상을 겨냥한 글로벌 투기자본은 한국물을 팔고 미국 시장으로 회귀하면서 주가는 떨어지고 원화는 약세를 보이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달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일부 소수의견은 금리 인하를 주장하기도 한다.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금리에 대한 포퓰리즘이 만연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금리 인상’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선전되고 있는 느낌이다. 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인플레이션’과 부채 확대에 따른 후유증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미국 시장에서 일부 부동산 과열 조짐은 있을 지언정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심지어 곡물가격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과잉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징후가 본격화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선언적인 의미’ 정도로 봐야하지만 만연한 투기가 변동성을 높여서 위기를 과장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의 경우도 금리 포퓰리즘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가계부채 망국론’을 근거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논리가 그렇다. 가계부채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은 LTV(담보인정비율)를 보고 이뤄졌다. DTI(담보인정비율)도 최대 60~70%로 한정돼 부실화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다. 금리 인상 우려감으로 투자적격등급인 A등급 회사채가 제대로 팔리지 않는 게 최근 상황이다. 한계기업은 기준금리의 5배에 가까운 고금리를 쓰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지금은 한계 가계와 기업에 대한 합리적인 금리 지원이 이뤄져야 할 시점이지 금리를 올릴 때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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