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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블랙리스트 개입 의혹' 김은경 영장 기각…檢, 수사 차질 불가피

최정훈 기자I 2019.03.26 13:05:38

자유한국당이 고발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法 “탄핵정국 정상화 과정”
靑개입한 환경부 채용비리 혐의…法 “공공기관 임원 내정은 오랜 관행”
靑"영장전담판사의 결정 존중" …“공공기관 장 등 임명절차 더 투명하게 할 것”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5일 오전 서울 동부지방법원에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법원은 김 전 장관의 혐의에 대해 탄핵정국의 특수성을 고려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청와대의 인사 개입이 관행이었던 만큼 위법성 인식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김 전 장관의 구속기각으로 청와대를 향하던 검찰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法 “증거 인멸이나 도주 염려 소명 부족”

26일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직권남용 권리방해·업무방해 등 혐의로 청구된 김 전 장관의 사전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박 부장판사는 “객관적인 물증이 다수 확보돼 있고 피의자가 이미 퇴직해 관련자들과 접촉하기가 쉽지 않은 점을 비춰볼 때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염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기각사유를 밝혔다.

김 전 장관의 구속 여부를 두고 논란이 된 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사임과 신규 임용 등 인사에 불합리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점과 이러한 일련의 행동에 대한 청와대의 개입 여부다. 법원은 이번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두 가지 혐의 모두 다툴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12월 자유한국당은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등 관련 동향 문건을 공개하고 이른바 ‘문재인 정부판 블랙리스트’라고 주장했다. 환경부가 지난해 1월 작성한 해당 문건에는 한국환경공단 등 환경부 산하기관 8곳 임원 24명의 임기와 사표 제출 또는 제출 예정 여부 등이 담겼다. 이후 자유한국당은 김은경 환경부 장관을 비롯해 △박천규 차관 △주대형 감사관 △김지연 운영지원과장 △이인걸 전 특감반장 5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지난 1월 환경부 감사관실과 한국환경공단을 압수수색했고 환경공단 임원의 사퇴 계획을 다룬 문건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지난해 3월 김현민 전 한국환경공단 감사는 환경부에서 10일가량 감사를 받다가 사표를 제출했다. 이에 검찰은 김 전 장관이 환경부가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환경부·한국환경공단 임직원들을 내보내기 위해 사표를 종용하고 이를 거부하자 표적 감사 진행한 것에 개입한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박 부장판사는 김 전 장관의 일괄사직서 청구와 표적감사 혐의에 대해 “탄핵으로 인한 공공기간의 정상화 과정으로 볼 가능성이 있고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박 부장판사는 △최순실 일파(학문이나 종교, 예술·무술 따위에서 한 갈래)의 국정농단과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와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해 방만한 운영과 기강 해이가 문제 됐던 사정 △새로 조직된 정부가 해당 공공기관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인사수요파악 등을 목적으로 사직의사를 확인했다고 볼 여지도 있는 사정 △해당 임원에 대한 복무감사 결과 비위사실이 드러나기도 한 사정을 근거로 들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5일 오전 서울 동부지방법원에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 法 “채용비리 혐의, 고의와 위법성 인식 희박”

법원은 김 전 장관이 받고 있는 채용비리 혐의에 대해서도 고의와 위법성 인식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사퇴와 새 임원 선발에 청와대 인사수석실이 개입한 정황을 확인하면서 수사를 확대했다. 김 전 환경공단 상임감사의 후임 선발 당시 청와대가 추천한 인사인 모 언론사 출신 박모씨가 서류점수 미달로 탈락하자 전원 불합격 처리한 뒤 다시 채용 전형을 진행해 친정부 인사인 유모씨를 임명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환경부가 박씨와 유씨에게 사전에 면접과 관련된 정보도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박 부장 판사는 “공공기관의 장이나 임원들의 임명에 관한 관련 법령의 해당 규정과 달리 그들에 관한 최종 임명권, 제청권을 가진 대통령 또는 관련 부처의 장을 보좌하기 위해 청와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임원추천위원회 단계에서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내정했던 관행이 법령 제정 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있던 것으로 보인다”며 김 전 장관의 직권 남용에 대한 고의나 위법성 인식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 靑 “法에 장관의 인사·감찰권 적법하게 행사할 수 있는 기준 정리 기대”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검찰은 향후 수사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보강조사를 거쳐 인사수석실을 중심으로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와 소환 여부도 구체적으로 검토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의 기각 사유가 많아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 등은 확인 절차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결정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처음 폭로한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의 변호인이었던 석동현 변호사는 “사실 적폐수사 당시 정부 인사들에 대한 구속이 상식 밖이었던 터라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이해가 된다”면서도 “구속 여부가 수사 진행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만일 검찰에서 불구속 기소를 하더라도 의혹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영장전담판사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앞으로 장관의 인사권과 감찰권이 어디까지 적법하게 행사될 수 있는지 법원이 그 기준을 정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동시에 이번 검찰수사를 계기로 청와대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공공기관의 장과 임원에 대한 임명절차를 보다 투명하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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