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저(低)유가 쇼크, 쿠바의 닫힌 빗장 열었다(종합)

이정훈 기자I 2014.12.18 15:15:33

오바마 봉쇄정책 실패 인정..교황 막후역할도 한몫
`최대 후원국` 베네수엘라 위기, 쿠바 마음 돌려놔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남아메리카의 적성국이던 쿠바와 국교 정상화를 공식 선언했다. 반세기가 넘는 대(對) 쿠바 적대정책도 마침표를 찍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봉쇄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개방외교 정책으로 전환한 결과이면서도 최근 국제유가 급락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 적대국가 봉쇄정책 실패

미국과 쿠바의 전격적인 국교 정상화 합의는 미국 스스로가 그동안 적대국가에 대한 봉쇄정책이 사실상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미국은 앞서 1959년 1월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통해 공산정부를 수립한 지 2년만인 1961년 1월부터 봉쇄정책을 펴왔다.

오바마 대통령도 1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미국-쿠바 국교 정상화 특별 성명을 발표하면서 “국교를 단절한 1961년과 마찬가지로 쿠바는 여전히 카스트로 일가와 공산당이 통치하고 있다”며 “우리는 똑같은 정책을 계속 하면서 다른 결과를 낳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 미국의 쿠바 봉쇄가 실패한 외교정책이라는 점도 공식 인정했다. 그는 “쿠바를 붕괴로 몰아가는 것은 미국 국익에도, 쿠바 국민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어떤 나라를 실패한 국가로 몰아붙이는 정책보다 개혁을 지지하고 독려하는 것이 낫다는 교훈을 어렵사리 얻었다”고 설명했다.

양국이 비밀리에 협상을 벌인 18개월동안 사상 첫 남미 출신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도 막후에서 큰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교황과 가톨릭 교회의 역할에 감사한다”고 인사했다.

교황은 지난 여름부터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편지를 보내 미국인 앨런 그로스와 쿠바인을 서로 석방하라며 대화를 촉구했다. 아울러 영국 일간 가디언지는 교황이 주선한 지난 10월 두 정상간의 만남이 그로스 석방의 물꼬를 틈으로써 양국 관계 정상화 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 低유가 쇼크가 촉매제

이처럼 표면적으로 드러난 배경 외에 실질적으로 최근 진행되고 있는 국제유가 추락으로 인한 베네수엘라 경제 혼란이 두 나라의 화해를 이끌어낸 촉매제였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은 그동안 쿠바의 핵심 후원국가였던 베네수엘라의 경제 혼란이 직접적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한 해 수출액의 95%를 원유 수출로 충당하고 있는데, 최근 유가가 급락하자 경제는 크게 위축되고 물가는 치솟고 재정적자가 커지는 등 디폴트(채무 불이행) 직전까지 내몰려 있다.

독재자라는 공통점을 가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은 그동안 반미(反美) 성향을 공유하면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의료 수준이 높은 쿠바는 우수한 치료진을 베네수엘라에 제공하는 대신 하루 평균 10만배럴의 원유를 베네수엘라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한 해 32억달러(약 3조5000억원) 어치 정도의 원유가 무상으로 쿠바에 공급돼 왔다.

크리스토퍼 사바티니 아메리카협회 정책담당 이사는 “베네수엘라가 경제적 재앙을 겪으면서 쿠바로서도 베네수엘라에만 목을 매고 있을 순 없었을 것”이라며 “하루 10만배럴이라는 원유 무상공급도 조만간 끊기고 말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지난주 미국 의회가 베네수엘라 정부의 반정부 시위대 탄압과 같은 인권 침해를 이유로 베네수엘라 정부관료들에 대한 미국 비자 발급을 금지하면서 여행을 제한하고 자산을 동결하는 제재에 나선 것도 한 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쿠바 지도자들은 이미 지난 1990년대초 강력한 경제 지원국이었던 소련연방이 붕괴되면서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데 따른 위험을 인식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쿠바는 어느 정도 개방경제를 받아들였다. 지난해초에도 카스트로 대통령은 외국인 투자에 대한 지원책을 높이고 일부 여행 제한조치를 풀면서 개방경제적 요소를 수용한 바 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