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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자 빚 상환 힘들면 은행과 직접 감면·기일유예 협상한다(종합)

이승현 기자I 2020.09.09 13:57:26

소비자신용법에 법적권리 '채무조정요청권' 도입
10억 미만 주담대·5억 미만 신용대출 등에 적용
전문추심업체 불법 추심하면 원금융사도 손해배상 책임
업계 "도덕적 해이 우려"…당국 "채권금융사도 이득"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앞으로 개인 채무자는 빚 갚는 게 어려워지면 언제든 은행이나 카드사 등 금융사에 감면이나 상환기일 유예 등 채무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 전문추심업체가 불법적인 채권추심을 하면 연체채권을 보유한 본래 채권금융사도 함께 법적책임을 져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9일 ‘제9차 개인연체채권 관리체계 개선 TF 확대회의’를 열고 이러한 내용의 ‘소비자신용법’ 제정안 입법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기존 대부업법을 전부 개정하고 신용정보법 일부를 고쳐 새로운 법을 만든 것이다.

이 법안은 금융 소비자의 보호에 철저히 초점을 맞췄다. △채무자와 금융사간 사적 채무조정 활성화 △채무자의 과도한 연체 및 추심부담 완화 △금융사의 채무자 보호책임 강화 등이 골자다. 채무자의 도적적 해이를 야기할 거란 우려가 제기되지만 금융당국은 채권자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10억 미만 주담대 등 상환 어려우면 채무조정 신청

먼저 채무자가 금융사에 대해 법적 권리인 ‘채무조정요청권’을 갖도록 했다. 채무자가 이 권리를 행사하면 금융사는 추심행위를 멈추고 10영업일 안에 채무조정안을 마련해야 한다. 채무자가 합의하면 채무조정이 성립한다. 다만 채무자는 반드시 소득·재산 현황 등 상환이 힘들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현재 금융업권별로 채무자가 개별 금융사에 채무조정을 요청할 수 있는 ‘프리워크아웃’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강제성이 없는 자율 프로그램이며 원칙적으로 연체 직전부터 90일 미만 연체까지만 신청할 수 있는 등 제한이 있다. 반면 채무조정요청권에는 이러한 제한이 없어 이른바 장기연체자도 행사할 수 있다.

금융사는 채무조정안과 관련해 감면율과 상환일정을 규정한 내부기준을 이사회 의결을 거쳐 구축해야 한다. 채무자가 내부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금융사는 채무조정 요청을 거절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개입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 내부기준 제정에 별도 가이드라인은 제시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10억원 미만 실거주 주택담보대출 채무와 5억원 미만 무담보 채무(신용대출)에 한해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두고선 채무자가 빚을 제대로 갚지 않아도 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줬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대로 금융사가 내부기준을 이유로 채무조정 요청을 쉽게 거절해 실효성이 없을 거란 지적도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상환을 포기한 채무자가 잠적하는 경우도 많다”며 “채무조정으로 갚을 수 있는만큼 갚도록 하면 오히려 도덕적 해이 우려가 낮아진다고 본다”고 했다. 금융사 역시 일부 채무조정을 통해 장기연체 문제를 해결하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또 법에서 채무자 자력상환 어려움이 입증되고 고의·중과실이 없으면 채무조정을 하도록 규정하기 때문에 금융사가 내부기준을 이유로 거절을 남발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채무자의 채무조정 협상을 돕는 채무조정교섭업도 도입한다. 전문성이 부족한 채무자를 위해 채무조정 요청서 작성 및 제출과 함께 실제 협상도 대행해주는 역할이다.

금융당국은 채무조정교섭업을 법인에 대한 등록제로 도입한다. 채무자에 대한 교섭수수료 등 총수수료는 100만원을 넘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자료=금융위원회)


전문추심업체 불법행위 시 원금융사도 책임

전문추심업체인 수탁·매입추심업자가 합법적인 추심행위를 하도록 원금융사 관리책임도 강화된다. 수탁추심업자는 원금융사에서 추심행위를 위탁받은 곳이다. 매입추심업자는 연체채권 자체를 양도받은 곳이다.

원금융사는 앞으로 채무자 처우나 위법행위 전력, 민원이력 등을 반영해 수탁·매입추심업자를 선정해야 한다. 문제가 많은 곳에는 채권추심을 맡기지 말라는 취지다.

또 이들이 채권추심법 등을 어기지 않도록 점검해야 하며 위법행위를 발견하면 즉시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이에 더해 전문추심업체의 불법행위로 채무자 손해가 발생하면 원금융사가 배상책임까지 지도록 했다. 민법에 의하면, 채권을 양도하면 권리와 의무가 함께 넘겨지기 때문에 양도인은 더 이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금융당국은 그러나 채무자 보호강화 차원에서 채권 양도인인 원금융사도 후일 불법추심 발생 때 책임을 지도록 특별법 성격인 이 법에 별도 규정을 넣기로 했다.

다만 원금융사가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다면 책임이 면제된다. 원금융사가 추심업체 감독 조직을 갖추고 실제 정기적으로 점검을 했다면 면제사유가 된다고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추심업체는 채무자에게 동일채권 추심을 위해 1주일에 최대 7번까지만 연락할 수 있도록 했다. 추심자가 채무자의 상환능력 등을 확인했다면 그로부터 7일간은 다시 연락해선 안 된다. 채무자가 ‘월요일 오후 12시부터 16시까지는 연락하지 말라’며 특정시간대 추심 자제를 요청하면 수용해야 한다.

연체채권에 대한 기한이익상실 전 연체이자 부과방식도 바뀐다. 지금은 기한이익이 상실되면 원금전체를 상환토록 하고 상환을 못하면 원금전체에 대한 약정이자와 연체가산이자를 부과한다. 앞으로는 기한이익이 상실돼도 상환기일이 미도래한 채무원금에는 연체가산이자를 부과할 수 없다.

이 법을 두고 금융업계에서 여러 우려를 제기했다는 점을 금융당국도 인정했다. 당장 금융사의 연체채권 관리비용이 늘어나 대출 문턱이 높아지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금융당국은 법안 완성 때까지 업계와 협의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금융당국은 소비자신용법 제정안에 대해 입법예고와 이해관계자 대상 설명회 및 공청회 등을 거쳐 내년 1분기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은 “예상치 못한 채무불이행 상황에 놓인 선량한 채무자가 패자부활할 수 있는 ‘금융의 사회안전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병두(맨 오른쪽) 금융위 부위원장이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9차 개인연체채권 관리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 확대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금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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