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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상승發 인플레 현실화하나…"美 CPI 계속 압박"

방성훈 기자I 2023.09.14 14:20:03

美 8월 CPI 유가상승 영향 '뚜렷'…에너지가격 10.5%↑
감산·재고부족 유가 더 오를듯…연내 긴축 경계감 확산
9월 FOMC서 위원들 판단 및 내년 금리 중위값 ‘주목’
허리띠 졸라매는 기업·가계…"美 연착륙에 걸림돌"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몇 주에 한 번씩 식료품 지출이 작년보다 50달러 가량 오른 것을 발견하곤 한다.”

최근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투자분석가로 취업한 마이클 데이비슨(23)은 “지출 여력을 늘리기 위해 외식을 줄이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완화하고 있고 고용시장도 탄탄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기름값과 식료품 가격은 여전히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며 “모든 가격이 다 오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면초가 상황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유가 상승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금리인상에 대한 경계감도 높아지고 있다. 시장은 오는 19~20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위원들이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사진=AFP)


8월 유가상승 영향 뚜렷…“美 CPI 압박 주된 요인”

13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 노동통계국이 이날 발표한 8월 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대비 3.7%를 기록했다. 이는 7월(3.2%)보다 상승폭을 키운 데다, 시장 전망치(3.6%)도 웃돈 것이다. WSJ은 “1년여 만에 가장 빠른 속도”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CPI 상승률(전년 동월대비)은 작년 6월 9.1%로 고점을 찍은 뒤 올해 6월 3.0%까지 꾸준히 낮아졌다가 7월부터 두 달 연속 반등했다.

8월 CPI는 전월대비 0.6% 상승해 전문가 전망치에 부합했지만 7월(0.2%)과 비교하면 상승폭이 확대했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 및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CPI도 전년 동월대비 둔화했으나 전월대비로는 6개월 만에 상승해 시장 불안감을 키웠다.

8월엔 국제유가 상승 영향이 특히 두드러졌다. 에너지상품 가격이 전월보다 10.5% 올라 전체 물가 상승 원인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실물경제에서도 8월 미국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이 전월대비 10.6% 급등해 작년 6월 이후 월간 기준으로 최대폭을 기록했다. 지난달 항공료도 유가 상승 영향으로 4.9% 급등했다. 에너지와 더불어 미 소비자들의 주요 관심사인 식료품 가격은 8월 0.2% 상승해 7월과 같은 속도를 보였다.

높은 에너지 비용은 경제 전반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 고용주의 임금 삭감을 포함해 비(非)에너지 상품·서비스 가격에도 반영될 전망이다. 미 고용시장이 냉각 조짐을 보이면서 신규 채용시 급여를 낮추거나 더 이상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유가 상승에 따른 비용 증가가 인건비 감축을 상쇄할 수 있다. 소비자들의 구매력 약화도 예상된다.

WSJ는 “당분간 유가가 미 CPI 상승을 압박하는 주된 요소가 될 것”이라며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 상승은 미국인들이 인플레이션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짚었다.

연준 추가 금리인상 경계↑…내년 금리 중위값 ‘주목’

문제는 국제유가가 앞으로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현재 브렌트유는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고, 미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도 90달러에 근접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날 보고서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 및 석유 재고 부족 등으로 4분기까지 상당한 공급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앞서 사우디는 연말까지 하루 평균 100만배럴, 러시아는 하루 평균 30만배럴을 각각 자발적으로 감산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8월 세계 석유 재고량은 7630만배럴 줄어 1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재부각되며 연준의 추가 금리인상에 대한 경계감도 커지고 있다. 이달 FOMC에선 금리동결 전망이 유력하지만, 올해 11월과 12월 남은 두 차례 회의에선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불분명하다. 시장은 이달 FOMC에서 연준 위원들이 8월 CPI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또 내년 기준금리 중위값이 조정될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6월 중위값은 종전 5.1%에서 5.6%로 높아졌는데, 현행 기준금리(5.25~5.5%)와 비교하면 연내 한 차례 추가 인상 가능성은 여전하다. 내년 기준금리 중위값까지 상향 조정되면 금리인상 가능성은 한층 커진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스티븐 주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아직도 (금리인상) 엔드존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가장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WSJ은 “연준의 금리인상 여부는 앞으로 몇 달 동안 CPI 둔화 여부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면, 경기둔화 없이 물가 안정(연착륙)을 시도하는 미 경제에 잠재적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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