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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낸시 랭의 미학, 예술인가 ‘딴짓’인가

경향닷컴 기자I 2010.02.18 16:21:00

조영남- 주류 미술계 폄훼에도 40여년 자기 스타일 창조
낸시 랭- 팝 아티스트 성공적 데뷔후 기성감각 되풀이·자기 복제

[경향닷컴 제공] 조영남은 스스로를 ‘화수(畵手)’라 부른다. 화가 겸 가수라는 뜻이다. 또 책을 많이 써 저술가라는 호칭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 애비뉴엘 롯데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딴짓 예찬전’은 미술·음악·문학을 한데 모은 전시회다. 전시장에는 ‘조영남 브랜드’가 된 화투 소재 작품들이 빼곡하다. 음악 소리를 화폭에 옮긴 ‘음악과 미술’, 천재시인 이상을 그린 ‘시인 이상을 위한 최대의 장례식’ 등의 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 조영남의 ‘비광’(2009).
조영남이 첫 전시회를 연 건 1973년. 이후 수십 차례 개인전·초대전을 가졌다. 어느 화가 못지 않은 이력이다. 그렇다면 조영남은 미술가인가. 미술계에서는 그의 작업을 두고 어떤 평가를 내릴까. ‘딴짓 예찬전’ 보도자료엔 “미술의 주류에서는 그의 작품을 통속화 내지 하위미술로 폄훼하지만”이라는 구절이 눈길을 잡는다. 한 미술평론가에게 비평을 요청했더니 거부한다. 그는 “돈도 시간도 많은 연예인이 폼나게 취미 생활하는 것에 대해 언급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했다. 미술의 진정성을 찾을 수 없고, 작품이 비평의 대상이 될 만큼 수준에 오르지 않았다는 이유다.

모두가 인준과 비평에 인색한 건 아니다. 미술비평가인 정준모 국민대 초빙교수는 “작가로 대접하건 말건 꾸준히 미술 활동을 해왔고, 그동안 내공이 쌓이면서 자기 스타일이 정착된 것 같다”고 말했다.

조영남이 내세운 건 ‘펀(fun) 아트’, 또 미술을 ‘딴짓’으로 꼽는다. 미술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건 분명해 보인다. 몇몇 오류와 자의적 해석 때문에 논란이 됐지만, 그가 쓴 현대미술에 관한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은 주목을 받았다. 문화비평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미술계 바깥에서 미술 자체의 존립 근거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미술 제도 자체를 패러디한다”며 “자신이 (미술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 관념을 부정하는) 반예술 또는 반미학의 자리에 서 있다는 걸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고 조영남을 평가했다.

자신을 팝 아티스트로 소개하는 낸시 랭은 어떤가. 낸시 랭도 미술과 연예의 경계에 놓인 인물이다. 그는 서울 소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로봇 아이 전’에 ‘아담과 이브’를 출품했다. 백남준·유영운·최우람·이해민·백종기 등의 로봇 소재 작품도 나온 전시회다. 하지만 그는 최근 어느 방송에서 “뇌가 잘 생긴 남자가 좋다”는 발언으로 인터넷 연예 뉴스판을 달궜다. 미술인 중 유일하게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 순위 10위권에 오르는 인물이다. 주로 ‘4차원’으로 평가받는 발언이나 노출 수위 때문이다.

▲ 앵그르의 ‘터키탕’을 패러디한 낸시 랭의 ‘찜찔방’(2005).
미술계는 낸시 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김지연 학고재갤러리 디렉터는 2000년대 중반 낸시 랭과 함께 전시작업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낸시 랭이 처음 등장했을 때 미술을 펑키하고 가볍게 풀 사람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신선했고, 인정하는 기류가 있었다”고 말했다. 2003년 초대 받지 않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란제리 차림으로 펼친 바이올린 퍼포먼스는 관음증을 정면으로 건드린 행위 예술로 평가받기도 한다.

홍익대 서양학과 출신이라는 미술계에서는 무시 못할 ‘상징적 자본’도 가졌다. 2000년대 중반 선보인 대표작 ‘터부 요기니’ 시리즈나 명작을 차용한 작품에서 세속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거침없이 드러냈다. 앤디 워홀의 도상을 차용한 작품을 두고 카피 논란도 있었지만, 팝 아티스트의 신예로 여겨지며 미술면에도 종종 소개됐다.

하지만 대중 인지도가 높아질수록, 자기 몸의 노출 수위를 높일수록 미술계에 주는 자극은 줄어들었다. 낸시 랭은 지난해 말 한 연예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을 소재로 한 ‘호동 요기니’를 선보였다. ‘터부 요기니’를 자기 복제한 것이다. 변모의 과정이 무엇이고, 그 지향점이 어디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낸시 랭의 작품은 ‘팝 아트’인가라는 게 미술계의 주된 의문이다. 김지연 디렉터는 “대중의 눈요기를 충족시키지만 예술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며 “그의 팝 아트에는 신랄한 ‘조크’도 없고, 시대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도 안 보이며 ‘소비주의’만 눈에 띈다”고 말했다.

정준모 교수는 “팝 아트는 가볍고 하찮게 보여도 또다른 사고를 하게끔 하는 정교한 기획·장치, 미학적 실천 같은 일관성이 있는데 낸시 랭은 그 일관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스캔들을 과도하게 즐기는 경향을 보이는데, 대중적 평가가 예술적 평가를 압도하면서 팝 아트의 대표 작가인 양 소개된다”고 했다.

이택광 교수도 “팝 아트는 겉으로 미학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새로운 미학의 체제를 만들어낸 운동”이었다며 “낸시 랭은 이 미학의 체제 내에서 이미 받아들여진 기성의 감각을 되풀이 생산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낸시 랭은 예술의 본령을 조롱하고 기성의 미학을 거부하며 엘리트주의를 배격하는 ‘아방가르드’라고 할 수 있지만, 어떤 입장에서 반미학을 추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면서 “낸시 랭은 ‘신정아 해프닝’처럼 한국 미술계, 나아가 한국 사회 근대성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증상이자 자생성이 없는 근대화의 후과”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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