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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봉이 김선달? 상수도 팔아먹은 현직 구의원

노컷뉴스 기자I 2007.02.08 10:37:00

상수도 관리비 명목 수십년간 수억원어치 물장사 정황…경찰 수사 착수

[노컷뉴스 제공] 서울의 한 현직 구의원이 무허가촌의 상수도를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주민들로부터 수십 년 동안 수억 원을 받아 가로챈 정황이 드러나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 서초동 구룡마을과 더불어 서울의 대표적인 무허가 판잣집촌인 신림동의 아카시아 마을. 난곡 인근 3천여 평 크기의 이곳에는 현재 97가구 200여 명이 살고 있다.

이상한 것은 이곳 주민들이 구 의회 의원인 주모(여, 48)씨에게 상수도 사용 요금을 내고 있다는 사실. 수도 계량기가 한 대다보니 주 씨가 임의로 수도 요금을 산정해 세대별로 부과하면 주민들은 그대로 내는 것이다.

이는 주씨가 79년부터 이 마을 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부터 고착된 관행이다. 주씨는 더 나아가 '상수도 관리비'라는 해괴한 항목의 금액까지 걷고 있다.

수도 요금의 경우 한 가구당 6천 원에서 5만 원까지 들쭉날쭉이지만 관리비의 경우 2만5천 원씩 일괄 징수한다는 것이 주민들의 증언이다.

이러다보니 마을 주민들과의 마찰도 끊이질 않고 있다. 강 모(55)씨의 경우 6년간 주씨의 요구에 불복해 오고 있지만 주씨 측이 가끔 수도관을 자르는 바람에 인근 약수터에서 물을 길러먹는 일이 허다하다. 김 모(60)씨의 경우는 최근 보름 넘게 물없이 버텨야 했다.

주씨는 수도요금에 대해서는 "수도를 사용한 만큼 받고 있을 뿐"이며 관리비에 대해서도 "2만5천 원은 아니더라도 관리를 하다보니 필요한 만큼만 받고 있다"고 말했다.

주씨는 단수조치에 대해서도 "돈을 내지 않아서 주민 동의에 의해 끊은 것일 뿐 일방적으로 끊은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주민들의 말을 종합할 때 주씨가 두 달에 한 번씩 걷는 금액은 수도 요금 300여만 원과 관리비 250만 원 등 모두 550만 원.

이 가운데 상수도 사업소에 일괄 납부되는 금액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여 주씨는 그 동안 이 같은 물장사로 수억 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주민들은 보고 있다.

서울 관악경찰서도 최근 주씨의 이 같은 해묵은 물장사에 대해 수사에 나섰지만 모두 현금으로만 거래돼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은 특히 주 의원이 주민들이 집을 매매하는 과정에도 개입해 이권을 챙긴 혐의를 잡고 이 부분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주씨가 이처럼 수십 년간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식 행세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행정당국의 묵인 때문으로 보인다. 관할 관악구청 측은 주 의원에 대한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한데도 최근까지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청 측은 이 마을에 무허가 판잣집이 늘어날 때마다 105번의 고발 조치를 취했을 정도로 지역 사정에 밝았던 사정을 고려할 때 구청 측은 마을의 불법 건축물은 적극 막으면서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눈감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이남형 서울시의원은 "관악구청이 사유지라는 이유로 무허가촌을 관리할 의지도 여력도 없으니까 공동관리자로 나선 주 의원 등에 사실상 마을 행정을 맡긴 셈"이라며 "공공기관으로서 창피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관악구 의회 역시 주 의원을 감싸고 돌긴 마찬가지였다. 관악구 의회는 주 의원이 수돗물을 끊어 생활이 어렵다는 민원에 대해 '상수도 문제는 개인간의 사적인 사안이라 의회가 나설 일이 아니다'라며 사실상 주 의원에게 면죄부를 줬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는 지난 1일 부터 이 지역에 이미 개별적으로 설치된 전기와 가스처럼 상수도도 개별 사용이 가능하도록 세대별 계량기 설치 작업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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