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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미래 도박 못 걸어'…마크롱, 하원 표결없이 개혁 강행

박종화 기자I 2023.03.17 09:10:39

"연금개혁 없으면 年 13조원 연금 적자"
노동계, 연금개혁 저지 9차 총파업 예고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하원 표결을 건너뛰고 정년 연장을 위한 연금 개혁을 강행하기로 했다. 노동계는 더 강력한 대정부 투쟁과 파업을 예고했다.
16일(현지시간) 프랑스 낭트에서 일어난 연금개혁 반대시위.(사진=AFP)


“연금 미래에 도박 걸 수 없어” 하원 건너뛰고 개혁 강행

프랑스24 방송 등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국무회의를 열고 긴급법률제정권을 사용해 연금개혁을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스 헌법 49조 3항에 명시된 긴급법률제정권은 일종의 비상대권으로 하원 표결 없이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법률을 제·개정할 수 있는 권리다. 하원이 긴급법률제정권을 무력화하려면 발동 후 24시간 내에 정부 불신임 결의안을 의결해야 한다. 정치적 부담을 고려하면 하원에서 불신임 결의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마크롱 대통령은 올 1월 연금 개혁안(案)을 발표하고 이를 핵심 국정과제로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 62세인 정년을 64세로 연장하는 게 핵심이다. 연금 상한액을 수령하는 데 필요한 근로 기간도 42년 이상에서 43년 이상으로 늘어난다. 고령화와 조기 퇴직으로 인한 연금 재정 고갈을 막기 위해서다.

프랑스 연금계획위원회는 현행 연금제도를 유지한다면 앞으로 10년간 매년 100억유로(약 13조원)씩 연금 적자가 발생한다고 지난해 경고했다. 프랑스 재무부는 이번 개혁안이 시행되면 2030년 연금 재정이 135억유로(약 18조원) 적자에서 177억유로(약 24조원)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내다봤다.

프랑스 상원은 지난 11일 연금 개혁안을 통과시켰지만 하원 통과는 불투명한 상태였다. 현재 프랑스 하원에서 여권 의석수는 250석으로 과반(289석)에 못 미친다. 섣불리 연금 개혁안을 표결에 부쳤다가 부결되면 개혁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마크롱 대통령이 긴급법률제정권을 사용한 배경으로 꼽힌다. 엘리자베트 보른 프랑스 총리는 이날 긴급법률제정권 발동을 발표하며 “우리 연금의 미래에 도박을 걸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도 “지금은 (투표에 따른) 재정적·경제적 위험이 너무 크다”며 “국가 미래를 갖고 장난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경찰-시위대 물리적 충돌도…여론은 ‘연금개혁 반대’ 우세

마크롱 대통령이 비상대권까지 사용하면서 연금개혁 반대 진영의 저항도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노동계는 연금 개혁안 발표 후 지금까지 8차례 이를 저지하기 위한 총파업을 벌였다. 그때마다 100만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파업에 동참했다. 최근 들어선 청소 노동자까지 파업에 합류하면서 파리가 쓰레기에 뒤덮이기도 했다. 프랑스 최대 노조인 노동총동맹(CGT)의 대변인인 카트린 페레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조 간 연합전선은 (연금) 개혁 철회를 계속 요구하고 있으며 23일 파업과 시위를 조직했다”고 말했다. 온건파인 프랑스민주노총의 로랑 버거 위원장도 이번 결정을 “절차만 민주적인 부정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날도 연금개혁을 반대하는 시위대 7000여명이 파리 콩코르드 광장을 점거하고 연금개혁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해산을 시도하자 시위대는 돌을 던지면 맞붙었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공무원 클라라는 “그들(내각)은 일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어야 했다”며 “공무원 조직에서 일손은 계속 부족하고 퇴직자는 대체되지 않으며 우리는 예상치 못한 정신적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고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 말했다.

일반 여론도 연금개혁 반대에 쏠려 있다. 이달 초 Ifop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32%만이 연금개혁에 찬성했다. 특히 35세 미만 청년층에선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비율이 74%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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