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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통토크]"상품만 파는 시대는 갔다.. 이젠 문화를 파는 시대"

김형욱 기자I 2013.09.17 08:53:16

가죽재킷 입은 사장님.. 김효준 BMW코리아 대표

[정선=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지난 9일 오후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 크고 작은 BMW 바이크가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BMW 바이크인의 축제 ‘BMW 모토라드 데이즈 2013’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오후 3시 이미 700여대의 바이크가 한자리에 모였다. 한쪽에서는 바이크 묘기 시연이 펼쳐지고 한쪽에서는 자선 장터가 열렸다.

그때 행사를 기획한 주인공이 도착했다. BMW코리아 대표 겸 BMW코리아 문화재단 이사장인 김효준 사장(56). 평소와 느낌이 조금 달랐다. 그는 늘 깔끔한 정장에 흰머리를 단정하게 빗어넘긴 신사였지만 오늘은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라이딩 재킷에 청바지를 입었다.
라이딩 재킷을 입고 포즈를 취하는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
복장이 갖춰 입은 만큼 일 얘기는 다음으로 미뤘다. 대신 그의 철학과 사생활, 속내를 들어봤다.

김효준 사장은 속된 말로 ‘잘 나가는 남자’다. 그가 14년째 이끌어 온 BMW코리아는 최근 수년 새 가장 주목받는 자동차 브랜드다. 연간 자동차 판매량이 3만대를 넘었고, 연 매출도 2조원이다. 압도적인 수입차 1위 브랜드다. 게다가 고용창출 인원도 3500여명이다. 어느덧 외국계 기업의 틀을 벗어나 국내 중견기업의 면모를 갖췄다.

올해는 김효준 사장 개인적으로도 겹경사가 있었다. 그는 올 7월 BMW그룹 본사 수석부사장으로 승진했다. BMW그룹 해외법인장 중 가장 높은 직급이다.

◇독서광에 일벌레 “시에서 CEO 덕목 배운다”

김효준 사장은 최근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란 책을 읽었다. 미국 MIT대 경제학과 교수 대런 애쓰모글루가 쓴 이 책은 세계 역사 속 실패한 국가와 성공한 국가 경험을 비추어 보면 결국 ‘제도’가 국가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내용이다. 유행하듯 지나가는 단순 경영서적이 아니다.

“한국은 지난 30~40년 동안 큰 경제적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그런데 성장에만 치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고찰이 부족했죠. 이제는 사회가 성숙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부터 더 고민하고 사회의 변화에 맞춰 나가려고 해요. 무게감을 느낍니다.”

책 주제가 무거운 만큼 감상평도 거창하다.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일벌레지만 책은 꼭 경영에 치중해 있지 않다. 중국 고서부터 자동차, 시집을 아우른다. 류시화의 시를 즐긴다. 시는 최고경영자(CEO)의 덕목인 간결한 의사소통에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물론 14년차 장수 최고경영자(CEO)로서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꼽히는 피터 드러커의 책도 섭렵했다. 마지막 저서 ‘마지막 통찰’은 수십 번 반복해서 읽었다.

그의 학구열은 끊임없다. BMW코리아 최고재무책임자(CFO) 시절 연세대 경영대학원 국제경영학 석사과정을 밟았고, 2000년 대표이사가 된 이후에도 공부를 계속해 2007년 한양대 경영학 박사가 됐다.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
일도 공부처럼 한다. 김효준 사장은 CEO의 역할을 두 마디로 ‘구체적인 담화’와 ‘늘 배우는 자세’라고 말한다. 실제 자동차 문외한이던 그가 BMW코리아 CEO가 된 이후 주말마다 고객 300여명을 만났고, 이들의 말을 메모했다. 지금도 아침과 점심, 저녁마다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이 끊이지 않는다. 수년 전부터는 강연도 시작했다. 강연도 그에게는 만남과 배움이다.

“(경영의) 답은 간단하다. 시장이 바라는 것,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그는 지금 이륜차 면허를 공부한다. 새벽부터 이어진 일정 때문에 만만치 않지만 의욕은 넘친다. 그는 “오늘 아침에도 연습하고 왔다. 본사와도 약속한 만큼 꼭 딸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런 인문학적 관심과 소양 때문일까. 그는 어떤 강연, 스피치 때도 ‘원고’를 쓰지 않는다. 그런데도 웬만한 원고보다 낫다. 능변이다. 농담 반 진담 반 주변에서 ‘나중에 정치인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는 “학창시절 방송반 반장을 하면서 아나운서와 PD 일을 경험한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부재단 만들고 대중서킷 착공.. 돈 안되는 사업 왜 하냐고?

BMW코리아가 최근 가장 관심을 쏟는 것은 사회·문화사업이다.

BMW코리아는 2011년 초 BMW코리아 미래재단을 설립했다. 고객이 차를 살 때 3만원을 기부하면 BMW코리아가 9만원을 기부하는 독특한 재원 확보 계획도 밝혔다. BMW 운전자 모두가 기부하게 되는 획기적인 제도였다. 이 아이디어는 오히려 본사가 벤치마킹한다.

이후 사회공헌 기부액은 연 30억원으로 늘었다. 이 돈은 ‘주니어 캠퍼스’ 등 어린이 인재양성 등 활동에 쓰여 연 5000명의 어린이가 혜택을 받고 있다. 사회공헌에 관심이 낮다고 비판해 온 사람들의 목소리가 쏙 들어갔다.

또 지난해는 동아시아 최초로 인천 영종도에 서킷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이 서킷은 올해 착공해 내년 7월쯤 문을 연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첫 ‘대중 서킷’이다.

매년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발표하다 보니 ‘올해는 또 무슨 아이디어를 낼까’ 기대감도 든다. 김효준 사장은 “다음 프로젝트도 기획 중이지만 아직 밝힐 순 없죠”라며 웃음 지었다.

왜 끊임없이 돈도 안 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기획할까. 판매를 염두에 둔 전략으로 봐야 할까.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닙니다. 기업의 철학과 구성원 개개인의 가치, 사회적 추구 방향이 서로 같다면 엄청난 시너지를 냅니다. 자연스레 성공으로 이어지죠.”

그는 늘 1995년 BMW가 수입차 최초로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는 1등으로서의 사명감을 의식한다. 누군가를 뒤쫓을 수 없다.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 2년차를 맞은 BMW 모토라드 데이즈 행사 취지도 비슷하다. 이륜차도 부정적 인식을 없애고 선진 문화를 도입하자 것이다. 이날 행사는 라이딩에 초점을 맞춘 경쟁사 행사와 달리 가족적이었다. 가족 중심의 프로그램이 많았고 많은 참석자가 부인, 자녀와 함께 왔다. 김효준 사장을 비롯한 BMW코리아 임직원도 가족과 동반했다.

“오늘 행사도 BMW의 철학 ‘자동차와 바이크를 통해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지난해 열기 시작했습니다. 700여명의 고객이 한자리에 모여 BMW라는 하나의 문화를 매개로 함께하고 있는 것은 감동적이죠. 21세기 마지막 경제 화두는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바이크로는 휴식을 그란투리스모로는 멋진 여행을 드립니다

그는 일과 책에 파묻혀 이렇다 할 취미가 없다. 일과 공부에 빠져 산다. 답답하진 않을까.

“시간이 허락하면 산책과 사색을 합니다. 독일을 18년 동안 오가면서 현지 기업들은 수많은 고찰과 반성을 통해 의제를 추구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전부터 철학과 사색이 발달해 왔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도 바뀔 시기입니다.”

한국 기업도 단순히 상품(자동차)를 판매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가치와 역할, 문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 그에게 청년실업과 취업난에 직면한 젊은이에게 힘이 될 만한 한 마디를 부탁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시작해 각종 경제위기 속 14년째 외국계 기업 대표에 몸담은 그의 말은 본보기가 될 터였다. 답은 명쾌했다.

“마음속 장래 모습에 BMW라는 단어를 하나 넣어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힘든 현실에 직면해 있더라도 10년, 20년 후 꿈을 이룬다는 목표를 가지면 다시 힘낼 수 있다는 것, BMW가 그 매개체 중 하나가 돼주겠다는 얘기다.

“BMW는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문화적인 동기를 제공할 것입니다. 바이크로는 휴식을, 그란투리스모(GT, 여행을 위한 차)로는 멋진 여행을, (내년 출시 예정인) 전기차 i3로는 친환경이란 가치를 만들며 사회와 호흡하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려울지 모르지만 훗날 BMW가 함께 여러분의 ‘힐링’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9일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린 ‘BMW 모토라드 데이즈 2013’ 참가자들의 바이크 모습.
전문 라이더의 묘기 시연 모습.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 약력

▲1957년 서울생 ▲1975년 삼보증권 입사 ▲1994년 한국신텍스 대표이사 부사장 ▲1995년 BMW코리아 최고재무책임자(CFO)▲2000년 BMW코리아 대표이사 ▲2003년 독일 BMW 본사 부사장 ▲2007년 한양대 경영학박사 ▲2013년 BMW 본사 수석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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