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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키우니 '삶의 속살' 보이더라

김용운 기자I 2015.11.17 06:16:00

유선태 '말과 글: 풍경 속에 풍경' 전
그림 속 오브제 밖으로 끌어낸
회화·설치·조각 등 50여점 선보여
하늘나는 책, 소나무, 자전거 타는 남자 등
동서양 감성 공존하는 화법 '이색'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서 29일까지

유선태 ‘말과 글: 나의 정원’. 숲과 계곡 등 동양적인 풍경과 기하학적인 흑백무늬로 채운 공간에 책과 소나무, 축음기 등 작가의 삶을 은유하는 이질적인 소품을 배치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사진=가나아트센터).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녹음으로 우거진 숲 사이로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시원하게 냇물이 흐른다. 기암괴석 사이에 소나무가 우거져 있다. 그 풍경 앞에는 흑백의 체크무늬 바닥이 보인다. 바닥 가운데 교묘히 균형을 잡은 나무 한 그루가 요염하게 서 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새의 날개처럼 책장을 펼친 책은 하늘 위로 떠다니고 축음기와 이젤은 허공에 걸려 있다. 자전거를 탄 신사의 그림자도 보인다. 양옆으론 마치 영화관의 출구처럼 보이는 문이 보이고 그 밖으로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이처럼 이질적인 소품과 풍경이 초현실적이지만 묘하게 어울리는 그림의 제목은 ‘말과 글: 나의 정원’.

오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서양화가 유선태(58)의 개인전 ‘말과 글: 풍경 속에 풍경’은 작가가 동서양의 감성을 절묘하게 혼합한 화법으로 그린 회화 30여점과 ‘회화 속 오브제’ ‘오브제 속의 회화’를 모티브로 한 설치와 조각 20여점을 볼 수 있는 전시다.

유 작가는 대학에서 응용미술(공예)을 전공한 후 1980년대 초 유학을 떠난 프랑스 파리에서 조형예술학을 했다. 이때부터 회화를 병행한 독특한 작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정형화된 회화나 설치에서 벗어나 장르 간 교류와 융합을 통해 전에 없는 새로운 이미지와 조형물을 만들어낸 작업이다.

유 작가는 “서로 다른 것만이 서로를 밀고 잡아당기며 움직여 간다”며 “회화는 조각을, 조각은 설치를 자극하고 설치는 다시 회화를 자극해 예술이란 커다란 바다를 움직이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시도는 마흔 중반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벨기에 재정경제부와 스위스 로잔의 독일재단, 파리의 퐁피두센터 등 유럽의 공공기관에서 유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기 시작했다. 국내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선재미술관을 비롯해 주로 특급호텔과 대형건설사에서 유 작가의 작품을 사들였다.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 마요르카, 미국 뉴욕과 싱가포르 등지에서 40여회의 개인전도 열었다.

유선태 ‘말과 글-나의 아뜰리에’(사진=가나아트센터)


이번에 내놓은 전시작의 특징은 회화와 조각, 오브제 간의 구분이 거의 무의미해졌다는 것이다. ‘말과 글: 서 있는 사람들’은 작가가 골동품가게에서 구한 구형타자기 위에 모두 다른 행동을 하고 있는 흰색 인형을 놓았다. ‘말과 글: 115년의 기다림’은 오래된 축음기의 스피커에 회화를 입힌 작품이다. 스피커의 표면에 입힌 회화에는 유 작가가 그린 그림에서 흔히 오브제로 등장하는 축음기와 날아다니는 책, 자전거를 탄 사람, 이젤 등이 푸른 산과 어우러져 있다. 아예 허공에 나무로 만든 커다란 책을 걸어놓고 표면은 자신이 그린 회화로 덮기도 했다.

유선태 ‘말과 글: 서있는 사람들’(사진=가나아트센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말과 글: 30년의 이야기’는 유 작가 자신의 30년 작업을 되돌아본 작품. 책장처럼 보이는 공간마다 배치한 작은 그림을 통해 그동안 자신이 작업한 작품을 담아냈다. 큰 바위를 짊어진 사람이나 중력을 거부한 채 공중에 떠 있기 위해 날갯짓을 하는 듯 보이는 책, 끊임없이 폐달을 밟아 나아가는 자전거 타는 사람의 뒷모습 등은 모두 작가의 삶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전시를 기획한 가나아트센터의 박혜리 큐레이터는 “유 작가의 작품에는 동양과 서양, 자연과 건축, 외부와 내부, 순간과 영원, 말과 글, 오브제와 자연물 등 이원적 개념이 동시에 등장한다”며 “여기에 작가의 자화상이기도 한 자전거 타는 사람을 등장시켜 일상과 예술의 서로 다른 질서를 조율하면서 자신이 빚어낸 내면의 시공간을 여행하고 아울러 삶의 순환과 예술의 균형까지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유선태 ‘말과 글: 30년의 이야기’(사진=가나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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