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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주택의 덫]4000만원이면 내 집…달콤한 '지역조합의 유혹'

박종오 기자I 2015.10.12 06:00:00

파격 분양가에 시세차익 내세워
동·호수 추첨도 유리, 가입 쇄도
군소시행사 난립 업무비 챙기고
사업먹튀 책임, 조합원이 떠안아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상도스타리움’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모델하우스. 실내에 들어서자 가랑비가 뿌리는 궂은 날씨에도 조합원 가입 상담을 받으러 온 젊은 부부 여러 쌍이 눈에 띄었다. 분양 상담사는 “이미 아파트 건설 부지 96%, 조합원 1400여 명을 모집한 상태”라며 “업무 대행비 2300만원을 포함한 계약금 3300만원만 내면 전용면적 84㎡ 새 아파트를 주변보다 20% 이상 싼 6억 800여만원에 분양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조합설립 추진위원회가 아파트 2300가구 건설을 추진 중인 동작구 상도동에는 이곳 외에도 다른 추진위가 2곳이나 더 있었다. ‘동작 하이팰리스’, ‘동작 센트럴 서희스타힐스’ 등도 조합원을 모집 중이다. 동작구로 범위를 넓히면 이런 조합설립인가 전 사업장은 모두 5곳이나 된다.

요즘 전국 곳곳에서 지역주택조합 사업 광풍이 불고 있다. 분양 아파트 당첨 기회를 잡기 어려운 무주택자와 웃돈을 기대하는 투자 수요가 몰려 주택시장의 ‘빅 마켓’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규제 풀고 시장 살아나자…모델하우스 ‘줄값’ 받아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전국 33개 사업장(2만 1431가구)이 지역주택조합 설립 인가를 받았다. 12년 만에 최대치다.

신규 사업장도 급증했다. 현재 충남지역에만 19개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가 아파트 1만 6084가구를 짓겠다며 조합원을 모집하고 있다. 17개 시·도 중 최대 규모다. 부산에서도 15곳(1만 2849가구), 서울은 14곳(1만 396가구)이 활동 중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부터 아파트 분양권에 웃돈을 붙여 사고파는 전매시장이 살아나고 청약시장에도 가수요가 들어오자 조합들이 아파트를 싸게 분양받고 싶은 수요자들을 유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주택조합 활성화에는 제도도 한몫했다. 정부는 2007년과 2009년 지역주택조합의 조합설립인가와 사업승인을 위한 토지 확보 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2013년에는 조합원 자격을 같은 시·군 내 6개월 이상 거주자에서 인접 시·도 단위 광역 생활권 거주자로 넓혔고, 지난해부터는 전용면적 85㎡ 이하 1주택 보유자도 조합 가입을 허용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작년부터 전용 85㎡ 초과 중대형까지 지을 수 있게 되는 등 정부 규제 완화 영향으로 1000가구가 넘는 대단지 조합 아파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며 “집 없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내 집을 짓는다는 정책 취지와 크게 멀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조합 아파트에 대한 높은 관심은 보기 드문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국민은행 전산망이 두 시간가량 마비되는 사고가 났다. 경기도 평택시 지제역 인근에서 ‘평택 지제 센토피아’ 아파트 건설을 추진 중인 지역주택조합이 문제였다. 이날 예비 조합원에게 은행 계좌 입금 순서대로 아파트 동·호수 선택권을 주기로 하자 한꺼번에 접속이 밀려든 것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줄값 거래’까지 이뤄지고 있다. 지난 7월 말 대구시 수성구 ‘메트로폴리스 중산’ 아파트 모델하우스 앞에는 느닷없이 텐트족이 등장했다. 경북 경산시 중산동에 짓는 이 조합 아파트 로열층을 선점하기 위해 모델하우스 개관 전부터 1㎞ 가까운 줄이 늘어선 것이다. 앞줄 번호표에는 웃돈이 1000만원 이상 붙기까지 했다.

불법 전매 거래도 흔하다. 대구 달서구의 한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 관계자는 “이 동네 ‘신월성 코오롱 하늘채 S’ 아파트는 조합원이 선점한 로열층 입주권에 웃돈이 1000만원 이상 붙었다”고 귀띔했다. 지역주택조합의 조합원 지위는 사업계획승인 이후에만 양도(전매)할 수 있다. 그러나 사업 승인은커녕 조합인가조차 받지 않은 ‘물딱지’(가짜 입주권)가 공공연히 거래되는 것이다.

◇불확실성 큰데 위험은 조합원 몫

부동산 전문가들은 조합 아파트 전성기를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본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의 경우 불확실성이 크지만, 그에 따른 위험은 고스란히 조합원이 떠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난립하는 지역주택조합의 경우 사업을 이끄는 진짜 주인은 군소 업무 대행사다. 이들이 일부 토지주를 앞세워 조합설립 추진위를 꾸린 후 업무 대행비를 받고 조합원을 모집하는 경우가 많다.

현행법상 지역주택조합 설립 인가를 받으려면 조합원 수가 아파트 건설 예정 가구 수의 절반을 넘고, 사업 부지의 80%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사업 계획 승인의 경우 토지 95% 이상을 확보하게 돼 있다. 하지만 대다수 업무 대행사가 정확한 정보 제공 없이 무분별하게 조합원을 모집하고 있다. 영업사원에게 조합원 모집 수당을 떼주는 ‘벌떼 분양’(조직 분양)을 하는 등 허위·과장 광고도 판치는 실정이다. 대행사 설립에 별도의 법적 자격 요건이 없고, 향후 사업에 문제가 생겨도 투자자에게 받은 돈을 돌려주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조합원들이 투자금을 떼이거나 조합 탈퇴를 못 해 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등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토지 매입 및 인허가 문제, 조합 업무 비리 등으로 인해 추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최근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에서는 같은 땅을 놓고 3개 사업자가 아파트를 짓겠다고 나서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기존에 개발 사업을 추진하던 시행자가 있는데도 ‘센텀마루’와 ‘센텀타워 애비뉴’ 지역주택조합 추진위가 해당 부지에 아파트를 짓겠다며 조합원을 모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을 빚자 사업 추진에 부담을 느낀 센텀마루 추진위원장 김모씨가 지난 2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조합설립 인가 신청 역시 지난 3월 반려되기에 이르렀다. 센텀마루와 타워 애비뉴 예비 조합원 1000여 명이 발만 동동 구르는 처지가 된 것이다.

조합 추진위가 우후죽순 등장한 서울 동작구의 ‘노량진 본동 지역주택조합’은 하자가 있는 조합 사업의 ‘완결판’이라 할 만하다. 2008년 조합설립 인가를 받았지만, 지자체 인허가 등에 발목이 잡혀 사업이 지연되면서 금융이자 등이 불어나 2012년 사업이 전면 중단됐다. 여기에 전 조합장이 저지른 각종 횡령·비리까지 드러나면서 조합원들은 7년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 “못 살겠다, 제도 바꿔라”

지자체 입장에서도 지역주택조합은 애물단지다. 불법 홍보 행위가 도를 넘어섰고, 피해를 봤다는 투자자들의 민원도 밀려들어서다. 대구 수성구 도시디자인과 관계자는 “하루에 적발하는 불법 조합원 모집 현수막이 많게는 150~200장 정도”라며 “조합원을 가입시키면 건당 수백만 원의 수익을 올리니 과태료를 감수하더라도 홍보를 한다”고 전했다.

△전국이 지역주택조합 사업 열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 동작구 현충로 도로변에 조합원 모집 불법 현수막이 버젓이 내걸려 있다. [사진=박종오 기자]
그러나 해당 정책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는 대안 마련에 소극적이다. 이미 제도가 크게 변질했지만, 주민 자율로 추진하는 사업이라는 ‘명분’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최진환 법무법인 최강 대표 변호사는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아파트를 지을 땅조차 확정되지 않은 선(先)분양 중의 선분양”이라며 “사업 추진의 모든 위험 부담을 조합원에게 떠넘기는 구조인 만큼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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