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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끊은 황석영, 전인권과 페북 친구 되다

김성곤 기자I 2015.11.23 07:18:52

황석영&전인권 북콘서트
"신작 '해질무렵' 젊은세대 위해 쓴 것”
"전인권 '‘사랑한 후에' 듣고 소설과 같은 이야기 느껴"
황석영 입담·전인권 울림…관객들 환호
“문학교육 정답 없다…객관식 아닌 주관식 맞아”

소설가 황석영(왼쪽)과 가수 전인권(가운데)이 18일 서울 서초구 흰물결아트센터에서 열린 소설 ‘해질 무렵’ 출간 기념 ‘황석영&전인권 북콘서트’에 참석해 시인 김민정(오른쪽)의 사회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문학동네).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1943년생으로 올해 일흔셋의 소설가 황석영과 1954년생으로 예순둘의 가수 전인권이 페이스북 친구가 되기로 했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흰물결아트센터에서 열린 ‘황석영&전인권 북콘서트’에서 만나 의기투합한 것이다. 황석영의 신작 ‘해질 무렵’을 기념해 열린 이날 콘서트는 문학과 음악의 거장이 만나 황홀한 가을밤을 선사했다. 운동화에 편안한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난 두 사람은 2시간여 독자들과 교감을 나눴다. ‘황구라’로 불릴 정도로 청산유수에 달변을 자랑하는 황석영과 느릿하지만 어눌한 말투로 다가온 전인권은 묘한 하모니를 연출했다.

◇황석영 “압축성장의 한계 되돌아봐야”

시인 김민정의 사회로 열린 이날 북콘서트에서 황석영은 ‘해질 무렵’의 집필 배경에 대해 상세히 털어놨다. 그동안 담배를 끊었는데 최근 금단현상으로 약간 초조하고 불안하다면서도 말을 이어나갔다.

소설은 성공한 건축가 박민우와 젊은 연극연출가 정우희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의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젊은 세대의 고단한 현실을 되돌아본다. 황석영은 지난해 세월호 사태와 1970년대 전태일 분신사건 등을 이야기하며 “압축성장의 한계에 대해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소설은 나이 든 사람의 회상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젊은 세대를 향해 쓴 것”이라며 “요즘 젊은 세대는 대리석같이 견고하고 내면화된 고독이 모든 사회시스템 속에 녹아들면서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이어 “젊은이에게 닥친 지옥 같은 어려움을 과거와 연결해서 생각해보자. 우리가 변화하고 노력했으면 훨씬 나아졌을 텐데 방치했던 부분이 많다”고 위로했다.

또 소설 집필 중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황석영은 “소설을 중간 정도 쓸 때 어느 카페에 갔다가 점원이 틀어준 전인권의 ‘사랑한 후에’를 들었는데 내가 쓰는 소설과 같은 이이기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아울러 “편의점에서 우연히 잃어버린 지갑을 한 알바생이 찾아줬는데 이를 인연으로 청년들과 충분히 대화를 나눴고 그들의 가슴아픈 현실에 대해 공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황석영 달변에 웃고 전인권 등장에 환호

“또 한 분의 손님은 노래하는 전인권 선생입니다.” 분위기가 고조될 무렵 전인권이 등장했다. 황석영 등장 때보다 더 큰 환호가 극장을 메웠다. 음반작업으로 바쁜 와중이지만 황석영의 초대에 기꺼이 응한 것이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의 인연은 꽤 오래 전부터다. 1990년대 방북으로 투옥생활을 겪었던 황석영은 교도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들국화’와 전인권의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받았다. 석방 이후에는 주변 지인의 소개로 인연을 이어갔다. 전인권은 몇해 전 황석영의 칠순잔치는 물론 최근 한국작가회의 50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했다.

전인권은 이날 비틀즈의 ‘예스터데이’와 자신의 노래 ‘사랑한 후에’ ‘걱정말아요 그대’ ‘걷고 걷고’를 열창했다. 특히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삽입곡이었던 ‘걱정말아요 그대’를 부를 때 환호성은 절정에 달했다. 황석영은 전인권의 노래가 끝날 때마다 터지는 열광에 “역시 직업을 잘못 선택했다. 가수가 될 걸”하며 부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가수 전인권(왼쪽)이 18일 서울 서초동 흰물결아트센터에서 열린 소설가 황석영의 신작 ‘해질 무렵’ 출간기념 ‘황석영&전인권 북콘서트’에 참석해 ‘걱정말아요 그대’를 열창하고 있다(사진=문학동네).


전인권은 연말공연 계획을 묻는 질문에 “페이스북을 보면 나온다”며 “요즘 페이스북을 하고 있다. 트위터는 재미없어서 안 했는데 페이스북은 해보니 재밌더라. 한달쯤 됐다”고 소개했다. 이에 황석영은 “페이스북이 트위터보다 재미있느냐”고 물으며 “트위터를 하다가 잘랐다. 한달 만에 팔로워가 20만명에 달했는데 머리에 태극기를 두르고 멸공을 외치며 욕하는 사람이 많아 매번 싸울 수도 없어 관뒀다. 나도 페이스북을 해봐야겠다”고 화답했다. 아울러 떠나는 전인권을 향해서는 “와줘서 고마웠다. 팔순 때 다시 또 뭘 해봐야겠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황석영 “스페인에서 6개월간 자전소설 쓸 것”

황석영은 북콘서트 말미에 앞으로의 집필계획을 밝혔다. “본인의 중장년 이후 이야기를 쓸 생각이 없느냐”는 한 독자의 질문에 “자전이라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면서 “쑥스럽기도 하고 객관적으로 쓸 사회적 여건도 안 됐다. 광주항쟁과 방북의 경험은 우리사회에서 가장 미묘하고 다루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 후배가 ‘한국전, 베트남전, 광주, 6월항쟁, 방북, 망명, 투옥 등을 겪은 작가는 많지 않다’며 정리를 권유한 적이 있다”며 “앞으로 스페인으로 가서 6개월 정도 틀어박혀 자전을 정리해 내년 이맘때 선을 보이겠다. 다만 그걸 쓰고 다시 돌아올지 그곳에 주저앉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현행 문학교육 풍토에도 일침을 가했다. 황석영은 “언젠가 국어교사모임에 신경림 시인과 초청받아 갔다가 뒷풀이자리에서 소설 ‘삼포가는 길’과 시 ‘농무’에 대해 각각 10문제씩 풀었던 적이 있다”면서 “나는 6개 틀려 40점을 받았고 신 선생은 30점을 받았다. 객관식이라 나도 틀렸다. 하지만 문학교육에 정답이 어디 있느냐. 차라리 나는 이렇게 느꼈다고 설명하는 주관식이 맞다”고 토로했다.

소설가 황석영(왼쪽)이 18일 서울 서초동 흰물결아트센터에서 열린 ‘해질 무렵’ 출간 기념 ‘황석영&전인권 북콘서트’에 참석해 집필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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